키르기스스탄! 내륙아시아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중국의 타림분지, 서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 남쪽으로는 타지키스탄 그리고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 국토의 동북쪽에는 천산산맥의 대부분이, 남서쪽에는 파미로-알라이 산맥이 각각 차지하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은 해발 평균 고도 2,750m의 고원 산악 국가이다. 해발 7,439m의 '파베드'나 6,995m의 '한 텡그리' 등 천산 산맥의 고봉들과 평균고도 6,000m에 이르는 '총 알라이' 산맥 등 파미르 고원의 산등성이들에는 국토의 약 4.2%에 해당하는 거대한 빙하들이 뒤덮여 있으며, 그것들이 녹은 물들은 방울방울 모여서 실개천과 강이 되어 이 나라와 그 주변 국가들의 구석구석을 살찌우는 실핏줄과 젖줄이 되고 있다. 이렇듯 풍부한 수자원은 온갖 동식물의 훌륭한 서식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며, 그에 따라서 비록 고원 산악국가임에도 이른 석기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민족과 국가들이 차례로 교체되면서 특색이 있는 문화와 역사를 창출해 놓았다.
'스탄' 국가들 불과 2천년전 중국인 세계관에 각인
그러나 키르기스스탄을 비롯한 오늘날의 '스탄' 국가들이 중국인의 세계관 속에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천 년 전인 기원전 126년의 일이었다. 그것은 한 무제가 대월지와 수교를 맺기 위하여 기원전 139년에 장건(張騫)을 '서역(西域)'으로 파견한 일로부터 비롯되었다. 장건은 흉노에서 포로로 보낸 10년 간의 억류 생활을 포함하여 13년간의 여행 끝에 마침내 귀국할 수 있었고, 그는 이 기간 중에 직접 보고 또 겪었던 서역의 여러 나라와 사람들의 생업 그리고 풍습 등을 소상하게 그 무렵의 중국 사회에 알릴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곧 사마천의 『사기』 중 「대완열전」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니까 장건이 귀국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한 나라에는 서역이라 통칭되던 '스탄'국가들에 대해 무엇 하나 신뢰할만한 정보가 없었던 셈이다. 그에 비한다면, 흉노는 이들 지역의 크고 작은 나라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를 하고 있었으며, 또 이 지역 각 민족들의 생활 패턴 및 풍습 등이 흉노를 비롯한 유목민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였음을 『사기』「대완열전」은 알려준다. 장건이 다녀온 서역은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그리고 키르기스스탄 등지에 해당하며, 이후 한나라는 이들 나라들과 지속적인 사신 왕래를 비롯한 교류를 하였다. 중국은 이들 나라로부터 '한혈마(汗血馬)'로 불리던 천산의 명마를 수입할 수 있었으며, 비단 등 한 나라의 문물은 사신의 길을 따라서 서역으로 전파되었다.
물론, 키르기스스탄은 이른 석기 시대부터 중앙유라시아의 문화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지역 문화를 꽃피웠다. 현재 20여개에 이르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키르기스스탄 내에서 확인되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셀운구르(Sel'ungur) 동굴과 같은 몇몇 유적에서는 아슐리안기(전기 구석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기들이 발견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제작된 무궁무진한 암각화들은 이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민족과 그 문화주인공들의 장엄한 서사시를 조형언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스탄' 국가들에 고구려 신라 등 우리 조상 발자취 선명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는 고구려와 신라 등 우리의 직계 조상들의 발자취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드에 소재하는 아프라시압(Afrasiab) 궁전 벽화 가운데는 고구려의 사신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으며, 그것은 고구려의 대외관계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도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신라의 고승 혜초(慧超)가 남긴 『왕오천축국전』(727년)은, 그가 쿠시나가라를 비롯한 동인도와 캬슈미르와 간다라 등 북인도를 거쳐 페르시아의 니샤푸르에 이르고, 다시 북동진하여 키르기스스탄의 파미르와 카슈가르 등을 거치면서 수행한 4년간의 대장정 끝에 만들어진 역작이다. 그 밖에도 고구려 유민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당(唐)나라 군대가 아랍연합군과 벌인 일대회전 '탈라스' 전투의 무대 또한 키르기스스탄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천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후인 20세기 전반기에는 수많은 조선족들이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이주되어 통한의 세월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소위 '코레이스키(스탄 국가들에 강제로 이주된 한국인)'로 불리는 이들은 이제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또 여러 방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한국인의 기질과 우리 민족 문화의 독창성 등을 이들 세계 속에 전파시키는 전령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발라사긴 국립대 등과 학술교류협정 체결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학준)은 바로 이 나라, 키르기스스탄의 주요 학술 기관인 발라사긴(Balasagin) 기념 국립대학교(총장 I.이사미디노프), 아라바에프(Arabaev) 기념 국립대학교(총장T.아브드이라흐마노프), 국립 역사 박물관(관장 A. 이시라일로바)등과 지난 7월 2일에 비쉬케크 시내의 국립역사박물관에서 학술교류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하였다.
그와 함께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2010년과 2011년 여름에 키르기스스탄 발라사긴 기념 국립대학교 역사 지역학부 및 동 대학 박물관 연구센터(소장 T.차르기노프)와 공동으로 키르기스스탄 내에 분포하는 선사 및 고대 암각화 유적을 조사하고 만든 『키르기스스탄 중·동부 지역의 암각화』(2011년도, 동북아역사재단)와『키르기스스탄 남부 지역의 암각화』(2012년도, 동북아역사재단)등 두 책의 출판 기념회도 동시에 개최하였다. 이로써 동북아역사재단은 키르기스스탄의 국립학술기관과 공동 조사 및 연구 그리고 출판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또 협정서 체결이라는 상시적 협력 연구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동북아역사재단과 키르기스스탄의 학술기관들이 체결한 협정서는 목적, 사업, 귀속, 방법 그리고 유효기간 등 모두 다섯 개의 조로 구성되어 있다. 협정서는 공동 학술 연구 및 교류를 목적으로 하여 체결하고, 수행 사업은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동 조사와 연구, 공동학술회의 개최 및 전문가 교환 연구, 자료 교환 및 공동 전시 등이다. 공동으로 수행한 결과물은 쌍방이 공유하고 또 그 결과물을 공동 명의로 발간·전시하기로 하였다. 이의 수행을 위한 행정적 조치는 접수기관이 맡고 또 소요 경비는 파견자 측과 접수자 측이 각각 일정 부분을 서로 분담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또한 이 협정서의 유효기간은 5년간이며, 이의가 없을 경우 3년씩 자동 연장한다는 내용이 명기되어 있다.
재단, 중앙유라시아 선사 · 고대 문화연구 교두보 확보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번의 협정서 체결을 통해 비단 이 지역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더 나아가 터키 등을 아우르는 중앙유라시아 선사 및 고대 문화 연구의 새로운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은 키르기스스탄의 이들 학술기관들과 공동으로 중앙유라시아의 문화와 역사 연구는 물론이고 이를 기반으로 한 한국민족문화의 형성 과정 및 계통성, 고대 및 근현대 한민족과 중앙유라시아 지역과의 관계사, 강제이주 코레이스키 및 디아스포라 등의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고자 하며, 그것은 곧 한국민족문화사의 연구 지평을 더욱 넓혀나가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