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과목을 가지고 교단에 선지 2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동아시아사'라는 새로운 과목이 학교에 개설되었다. 동아시아사를 담당하는 모든 역사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 '일본사' 부분과 '어떤 관점'으로 수업을 진행해야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20년 동안 문제없이 역사(국사, 세계사, 한국 근·현대사) 수업을 진행 하였지만 막상 동아시아사를 강의하려고 하니 일본사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일본사는 고등학교에서도, 대학 학부과정에서도, 대학원에서도 구체적으로 배워보지도 못한 생소한 과목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지만 의식적으로는 너무도 먼 일본역사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우리 교사들도 너무 모르고, 학생들도 모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동아시아사를 강의하니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동아시아사 수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실시하는 제12기 '역사 아카데미'(5월 9일~6월 27일)를 수강하게 되었다.
여러 강사께서 강의 주제뿐만 아니라 강의 내용과 관련된 일본 개설사를 많이 강의해주신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의 기억 속에 간간이 점으로 찍혀있던 일본사를 선으로 연결시켜 정리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학생들에게 동아시아사 수업 진행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중국과 일본은 어쩌면 심리적으로는 먼 나라일 것이나 우리는 그들 나라를 외면하고 살 수 없다. 더불어 사는 지혜는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도 적용되는 상생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멀고도 가까운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이며, 내 삶의 미래를 고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동아시아사 수업의 전개 방향으로 설정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역사아카데미에서 실시한 현장 답사에서는 근현대사의 현장인 서울시 중구 '정동'을 중심으로 많은 역사유적을 찾아보고, 이제까지 바라보지 못했던 역사적 시각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역사의 격동기에 만들어졌던 신문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을 둘러보면서 다른 데서는 듣기 어려운 '변천과 변절'에 관한 내용을 접할 수가 있었다. 또한 경운궁(덕수궁)에 들러서 대한제국 말기의 상황과 제 1, 2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열렸던 석조전을 둘러보면서 분단과 통일을 생각하는 의미 있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교회인 '정동교회'를 보면서 대한제국 말기부터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을 알아보고, 구러시아 공사관 터에 들러 대한제국과 러시아의 관계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경교장에 들려 김구 선생님과 경교장에 관련된 일화 등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현장 답사였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도발' 등으로 매스컴에서는 역사교육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교단에서 20여 년간 지켜 본 내 눈에는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주관한 동아시아사 교원현장연수(2013년 2월)에서 중국 현지 고등학교 교사와 대화를 해본 결과, 중국의 수능(高考, gaokao)에서 역사과목의 비중은 전체의 20%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문·이과 공통 필수과목이고, 문과는 심화 과목 한개를 더 선택해야 한다고 들었다. 중국은 이렇게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국의 역사에 큰 비중을 두고 학생들에게 학습시키는데 비하여,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은 제 6~7차 교육과정에서 필수 과목이었던 국사는 개정 7차 교육과정에서는 선택과목이 되었다(개정7차 교육과정에서 국사는 한국사로 교과목이 변경되었으며, 여론의 지탄을 받아 2012년에 선택과목에서 필수과목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한국사 과목의 경우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서울대만 필수로 지정하고 나머지 대학은 선택과목으로 하였다. 서울대학을 지원하려는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고 1학년 때 집중이수제로 한국사 수업을 마친 뒤로는 아예 책을 덮는다. 그나마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많이 선택을 하였던 한국 근·현대사 과목은 2012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고, 한국사를 선택하는 학생의 수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으로 역사 교육은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아카데미를 수강하기 위해 처음 강의실에 들어선 순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강의실에는 어르신들과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많았다. 또한 너무 일찍이 찾아온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장 답사를 준비하고, 진행하여 주신 강사님들과 직원들 그리고 쉬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열의를 가지고 찾아온 많은 수강생들의 뜨거운 열기를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직업 때문에 역사 아카데미를 찾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를 생생히 피부로 느끼기 위해 자발적 관심을 가지고 역사 아카데미에 참가하신 많은 어르신과 고등학생, 대학생들을 바라보며 우리 역사에 대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