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제안한 진정한 '동양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한·중·일 동양 3국은 궁극적으로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올해, 갑오년(甲午年)에 맞는 제95주년 3·1절은 여러모로 우리의 감회를 새롭게 한다. 올해는 바로 120년 전 동학농민운동(일명 갑오농민전쟁)으로 야기된 청일전쟁 120주년,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1904년의 러일전쟁 발발 110주년,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2014년의 동아시아는 한(중)·일 역사갈등과 중·일 영토분쟁 등으로 마치 120년 전의 국제관계를 연상케 하는 유사한 면이 있다. 120년 전의 '역사의 수레바퀴'는 현재도 과거와 같은 궤적을 그릴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3월은 각별히 동아시아의 역사, 나아가 세계 역사의 거시적 흐름을 파악하고, 우리의 현재 위치를 점검하는 한편, 다가오는 100년에 철저히 대비할 각오를 다지는 중요한 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엄중한 오늘날의 현실과 우리의 자세
올해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4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당국이 주도한 '안중근의사 기념관' 개관이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고, 오늘날 격동의 국제정세를 목도하면서 우리는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일련의 재판투쟁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의 불법성을 별로 주목하지 못했다. 현재 시점에서 안중근이 제창한 '동양평화론'의 의미와 정신을 다시 한번 주목하고자 한다.
지난 2014년 1월 19일 문을 연 중국 하얼빈의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많은 중국인과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들까지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안중근의사 기념관 개관과 관련하여 일본 정부 고위관료(관방장관)는 안중근에 대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하며 한·중 양국 정부에 항의하였다. 특히 2월 4일 일본 내각회의는 아베총리 명의로 "안중근은 내각 총리대신이자 한국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살해해 사형판결을 받은 인물로 알고 있다"는 답변을 중의원에 제출했으며,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건설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의견으로서 안의사는 물론, 근대 한일 관계사 전반에 대한 인식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중국 외교 당국이 안중근에 대해 "저명한 항일 의사"라고 응수한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안중근 의사 재판 간섭과 그 불법성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사살한 직후부터 이듬해 3월 26일 순국할 때까지의 일련의 재판과정을 보면 참으로 서글픈 약소민족의 비애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 보복행위가 아닌 '독립전쟁'을 주장한 안중근 의사에 대해 일본정부는 불법재판을 강행하여 부당한 판결을 내리고 사형을 집행한 후, 안의사의 시신마저 유족에게 넘기지 않고 공동묘지에 몰래 매장하고 말았던 것이다.
1910년 2월 14일 관동도독부 법원의 사형선고 판결은 물론, 안중근 재판과정 자체가 불법이며 무효인 사실을 일본 당국자들은 깊이 인식하고 최근의 언동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소재불명인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안중근 재판은 러시아의 협조와 일본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일본 당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한 총체적 불법재판이었다. 즉 러시아는 안중근 의거가 관할지인 하얼빈에서 일어났음에도 이토 사망에 대한 경호책임을 회피하고,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하여 안중근을 일본에 인도하였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외교권과 사법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안중근에 대한 재판을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였다. 당시 일본은 비밀리에 추진하던 '한국병합'과 열강과의 교섭에 안중근 의거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여 한국인 안중근에게 일본 법률을 무리하게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특히 그 과정에서 일본 외무당국은 자신들의 근대법률에서 규정한 사법권의 독립까지 침해하여 관동도독부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극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법원장에게 지시하였다.
일본의 대표적 국민설화이자 문학으로 널리 알려진 '주신구라(忠臣藏)'는 47인 사무라이들의 주군에 대한 복수극을 미화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주군에 대한 복수 살인극의 주인공들을 '아코의사(赤穗義士)'라고 부르며 그들의 충의(忠義)를 상찬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대의명분이 있는 복수나 살인은 그 의의를 인정하며, 심지어 도쿄에서는 매년 '주신구라'의 주인공들을 위한 성대한 축제 행사까지 벌인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안중근을 과연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지금이야말로 참다운 동양평화 구현을 모색할 때
중국의 국부로 알려진 쑨원(孫文)은 물론, 저명한 정치가·사상가요 지성인 량치차오(梁啓超)도 안중근 의거를 찬양하였다. 량치차오는 '추풍단등곡(秋風斷藤曲, 가을 바람에 이토를 처단하는 노래)'이란 시에서 "다섯 발자국에 피 솟구치게 하여 대사를 이루었으니, 웃음소리 대지를 진감(震撼)하누나. 장하다 그 모습, 영원히 빛나리라!"하고 안중근 경모의 뜻을 표하였다. 또 중국 5·4운동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덩잉차오(鄧潁超)는 안중근 연극 연출과 안중근 역할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교수형으로 순국하기 직전에도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므로, 일·한 양국인이 서로 일치협력해서 동양평화 유지를 도모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중 양국과 일본은 역사인식과 일부 도서문제를 둘러싸고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제안한 진정한 '동양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한·중·일 동양 3국은 궁극적으로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현실은 어렵지만, 진솔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소통하며 상리공생(相利共生)을 도모할 때가 아닌가 한다. 안중근 의사가 힘써 제창한 '동양평화론'의 이상과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상기하며 오늘의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 때이다. 동양평화론의 핵심은 한·중·일 3국이 대등하게 독립 공존하면서, 동양(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공동체적 이상을 진솔하게 구현, 협력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