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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역사민족 고고학연구소 브라디 세르게이 교수 인터뷰 한러 학술 교류 증진을 위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와 재단의 협력
  • 진행·정리 ┃ 설원태 재단 수석행정원

재단은 최근 초빙학자로 두 달간 체한했다가 귀국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역사민족 고고학연구소의 브라디 세르게이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책기획실의 우성민 연구위원이 e-메일을 통해 그와 심층좌담을 가졌다. 세르게이 교수는 체한 중 재단에서 연구위원들을 상대로 '아국여지도'를 주제로 특강을 갖기도 했다. _ 편집자 주

브라디 세르게이(Vradiy Sergey) 교수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역사, 고고학, 민족 연구소 선임연구원
(Russia Academy of Sciences Far Eastern Branch Institute of History, Archeology and Ethnography of Peoples of the Far East)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동방학과에서 19세기 중국 사회사상사를 연구주제로 박사학위 취득. 최근 '아국여지도(俄國輿地圖)'의 한인 이주와 관련된 19세기 연해주 지역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사를 연구중.

우성민 정책기획실 연구위원

중국 북경대학 역사학과 중국고대사 박사. 『唐律에 보이는 '化外人'에 대하여』(2010) 『올바른 한중 소통문화 형성과 한중 언론의 역할』(2013) 등.

우성민 지난 2012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된 이후 양국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발전을 점검하는 한편 인적·문화적 교류증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강화에 대한 의견이 교환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작년 푸틴 대통령의 방한 이후 소원했던 한·러 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가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한 학자로서 이와 관련한 움직임(추진 현황)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세르게이 한국 정부가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추구하고자 하는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러시아를 통해 유럽시장으로 산업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 정부는 한반도가 향후 평화통일을 이룩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발생하는 기회를 활용하고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유지시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은 한국의 수송 인프라, 건설업, 농업, 경공업, 식품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며 러시아와 계획한 협력 프로젝트를 실행하면 전반적인 에너지 시스템에 단일화된 물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게 됩니다.

러시아와 한국은 긴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계획한 바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바이칼-아무르 철도의 잠재적 이점을 활용하여 한반도와 공동 전력망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박근혜 대통령이 천명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기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자간 협력을 필요로 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공간 통합으로 이어져야 하며 통합적 물류 및 에너지 시스템의 구축을 포함합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한국의 첨단기술 기업이 아태지역 시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편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의 경제발전과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 러시아가 새로이 수립한 경제정책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지역개발 프로그램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극동지역의 개발을 포함하는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북동부로의 산업확장을 향한 한국의 열망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성민 한·러 관계는 미국과 중국,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원했지만 사실 러시아의 한국학 발전의 역사는 상당히 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교수님이 재임중인 블라디보스톡 과학아카데미에서 한국학이 발전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세르게이 블라디보스톡은 동양학 및 한국학과 관련하여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시베리아와 러시아 극동지역 고등교육은 1899년 10월 21일에 동방의 산업/ 상업활동, 행정분야 전문가에 대한 러시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립된 'Oriental Institute'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문을 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걸쳐 서구 강대국의 외교정책 우선순위가 극동지역에 유리한 방향으로 크게 변화했고, 중국, 일본, 한국 및 기타 태평양 국가들은 유럽 국가들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종속국, 서구의 교역, 군사, 정치적 확장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영국, 독일은 태평양 식민제국을 수립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러시아 또한 극동지역에 대한 영향력 다툼에 동참했습니다. 극동 프로세스가 가동되면서 자연스럽게 배운 내용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동양학자 (아시아 국가의 역사와 경제발전에 통달한 전문가)가 시급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러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명문대학교) 동양어 학부는 동방 국가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지닌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정부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이에 블라디보스토크 짜르 정부의 칙령에 따라 '실용적인 목표와 교육관을 지닌 러시아 최초의 동양학 고등 교육기관'인 'Oriental Institute'가 설립된 것입니다.

19세기 말 톰스크에서 사할린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인 러시아 극동지역에 오랜 시간 필요하다고 여겨져 온 최초의 공립 연구기관이 세워진 것이죠. Oriental Institute는 이 분야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의 지리적 인접성, 원어민과 접촉하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 현지 행정부와 대중의 지지와 관심에 힘입어 설립되었습니다.

우성민 일반적으로 서구학계의 동아시아 전공자를 양적으로 비교해 본다면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순이 될 겁니다. 기관의 경우 중국, 일본, 한국 전공자의 비율은 어떻게 됩니까? 또한 동아시아를 폭넓게 이해하는 차원에서, 교수님과 같이 중국사 혹은 일본사를 전공한 다음 한국사에 관한 연구를 하는 분은 얼마나 되는지요? 서구학계에 알려진 한국사가 많이 왜곡돼 있고, 국내학계의 최근 성과에 대한 소개가 미흡하기 때문에 저는 한국사에 대한 이해를 확산한다는 차원에서 중국사 및 일본사를 전공하는 러시아 학자들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르게이 극동 역사, 고고학, 민족학연구소는 1971년에 세워졌습니다. 이 연구소의 이름은 소속 학자들의 핵심 연구분야를 드러내며 동북아시아의 지역관계, 동시대적 흐름, 역사학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극동 역사, 고고학, 민족학 연구소에서 동북아 문제를 다루는 연구원의 비율은 서구국가의 경우와 거의 동일합니다. 중국 문제에 대한 연구가 지배적이고 일본과 한국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지역협력, 동시대 중·일 관계, 한·중 관계, 한·중·러 관계의 발전을 연구합니다. 이러한 국가들 사이의 관계와 현대 국제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교류의 세계화 과정을 고려하면 상당히 합리적인 연구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성민 재단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는 지난 5년간 MOU를 체결한 이래 우호적인 학술교류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런 교류는 한러 상호이해 증진에도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고 믿습니다. (동아시아의 역사 갈등과 영토 분쟁에 대한 공동의 관심사와 그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동아시아 역사화해와 공동발전을 주제로 여러 연구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면서 지적 공감대를 형성하게된 것 같습니다.) 재단의 경우 러시아 전공자 외에도 한국,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동북아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블라디보스톡과의 학술 교류 및 협력 확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단과 귀 기관은 크라스키노 발해 염주성 유적을 공동으로 발굴하여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향후 재단과 귀 기관과의 지속적인 협력 발전을 위한 제언을 주시기 바랍니다.

브라디 세르게이(Vradiy Sergey) 교수

세르게이 현재 극동 역사, 고고학, 민족학연구소는 유럽, 북미, 아시아, 호주의 연구기관과 협력하고 있으며 주로 동북아, 중국, 일본, 한국, 몽골의 기관들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다양한 주요 기관이 극동 역사, 고고학, 민족학연구소와 다양한 종류의 학술적 교류를 이어왔습니다. 극동 역사, 고고학, 민족학연구소는 고등 교육계와 국가 당국의 대표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강력한 지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극동 역사, 고고학, 민족학연구소가 추구하는 정책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양 기관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두 기관의 협력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극동지역 주민의 전통, 관습, 문화에 대한 이해는 불완전했으며 오해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는 국가들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자국민들이 이웃국가와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해를 제고하는 것은 학자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이해를 개선할 수 있을까? 극동지역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연구와 이해를 목표로 하는 공동연구와 공동 학술회의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우리가 몸담고 있는 학술기관의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성민 교수님은 2013년 12월 재단의 해외 초빙학자로서 당시 간담회에서 "Russia-Korea-China borderland and Korean migrations: a case study of the XIX century "Map of Russia" (俄國輿地圖)를 주제로 발표해 주셨습니다. 아국여지도는 북중, 중러 접경지역을 아우르고 있으며 역사 문화적 의미뿐만 아니라 군사적 의미로도 중요합니다. 아국여지도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세르게이 필자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인 '초기 한-러 관계에 대한 새로운 자료 분석'의 목표는 한국, 러시아, 중국의 19세기 국경 교류나 연해주의 한국인 지역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희귀한 문헌인 「아국여지도 (俄國與地圖)」를 번역 및 분석하는 것입니다. 「아국여지도」는 단순한 지도가 아닌 군사적 목적으로 제작된 지리 기록의 일종으로 보이며 1860년대에 빈곤, 기근, 관료들의 횡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꾸며 러시아로 이주한 한국인들의 생활과 관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국여지도」는 지리적 정보 외에도 식물, 동물, 연해주 지역의 중요한 자연현상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경계선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국가 간의 문제를 분석할 때에도 「아국여지도」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국여지도」는 군사시설, 방위군의 특성, 국경에 설치된 요새를 보여주며, 지금까지 강하게 유지되고 잇는 이웃국가 러시아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는 한국의 시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아국여지도」는 그 자체로 특별한 문서로서 한국에서는 깊이 연구되지 않았고 한국 외부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19세기 극동 러시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아국여지도」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의 대부분은 러시아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이 지도의 내용을 현재의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및 기타 도시에 대한 설명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울 것입니다. 19세기 말에 한국인들이 그려낸 러시아의 이미지를 확인하고 현재 한국이 러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의 차이점이나 공통점을 밝히며 러시아와 러시아인에 대한 한국의 이해가 지닌 근원을 추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희귀한 자료를 러시아어로 번역함으로써 앞으로 향후 한·중·러 관계의 초기 역사에 대한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성민 정책기획실 연구위원

우성민 러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영토를 지닌 국가로서 역사지리에 대한 연구가 매우 발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의 역사지리학은 언제부터 연구되기 시작했습니까?

세르게이 학문분야로서의 러시아 역사지리학은 러시아 역사학으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지리학의 첫 번째 통합과 점진적인 분리는 18 세기에 시작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저명한 역사가, 지리학자, 경제학자이며 정치인이었던 바실리 타티셰프 (1686-1750)는 대표작인 「러시아 역사 (History of Russia)」에서 현대 생활에서 지리의 사용에 대한 내용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러시아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인 니콜라이 카람진 (1766-1826)은 과거의 지리가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저서 「러시아의 역사 (History of the Russian State)」는 역사지리적 에세이와 함께 시작되며 카람진은 작품을 통해 사료에서 언급된 여러 지역과 지점의 위치를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1830년대와 1840년대에 걸쳐 러시아 학자 니콜라이 나데즈딘 (1804-1856)이 다수의 역사지리서를 남겼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작품이 중세 초기 동유럽의 민족 지리학과 슬라브인들의 초기 정착 문제를 다룬 「러시아의 세계 역사지리학 시도 (An attempt of Russian world historical geography)」 입니다.

우성민 올해는 고려인 이주 150주년이 되는해로서 국내학계와 사회에서는 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발족 및 심포지움'이 이미 개최됐습니다. 한러 관계의 발전에 러시아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고려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이에 대해 연구하는 러시아 학자들의 연구 동향을 소개해 주신다면?

세르게이 186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극동 러시아 남부지역 전반에 걸쳐 고려인들이 정착하였고 이들은 모든 계층의 동슬라브족과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고려인들이 특히 강력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은 상대는 코사크 사람들이었고, 이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코사크인들의 사회/경제적 및 문화적 특성에 때문이었습니다. Anton A. Kireev는 「러시아 극동지역의 한국인 이민자와 코사크 사람들: 교류의 요인과 역학 (Korean immigrants and the Cossacks in the Russian Far East: the factors and dynamics of the interaction)」에서 이와 같은 교류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German N. Kim은 「한국인 이주의 역사 (History of Korean Immigration)」 라는 논문에서 러시아 연해주, 만주, 미국, 일본에 정착한 고려인들의 이민 초기단계를 논했습니다. 저자는 이주의 원인, 이민 급증의 역학관계, 연령과 성별, 수용국의 이민자 정착 지역의 사회적 구성을 분석했으며 19-20세기 초에 한국이 처했던 국내 정치적 상황과 국제적 정황에 대해 기술하고 한반도를 벗어난 대규모 이주의 원인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Karaman V. N.은 「러시아 극동지역의 한국인 이민자와 러시아 당국: 교류의 역학 (1850-1930)」라는 논문에서 러시아 당국과 한국인 이주자들 간의 관계, 러시아 극동지역으로의 한국인 이주가 지닌 특성을 연구했습니다. 2013년 동북아 연구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시설과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동북아역사재단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앞으로도 21세기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 화해, 경제적 번영과 웰빙이라는 목표의 달성에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