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기고
"현실성 있는 정책 대안 개발 기능 강화를"
  • 글 김낭기 (조선일보 논설위원·재단 자문위원)

동북아역사재단이 내년이면 출범 1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재단은 한·일 간 일본군'위안부'와 독도 영유권 문제, 동해 표기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 왜곡, 상고사 문제 등 실로 다양하고 넓은 범위에서 자료를 발굴·조사하고 연구해 왔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으로 재단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독도가 우리 땅임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자료를 수집해 체계적으로 관리·전시하고 있는 일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과문(寡聞)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단이 과거 역사 가운데 특정 분야 연구와 분석에 치중해 온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동북아역사재단설립에 관한 법률'에 나와 있듯 재단의 목적은 동북아 역사 및 독도 문제와 관련한 '장기적·종합적 연구·분석'과 '체계적·전략적 정책 개발'이다. 후자와 관련해 동법 제5조는 '전략·정책 대안 개발 및 대정부 건의'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재단이 이같은 설립 취지에 더욱 부응하려면 그간 했던 조사와 연구 결과를 토대로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개발하고 제시하는 기능이 좀 더 활성화돼야 할 것으로 본다.

갈수록 커지는 동북아 전략 연구와 개발의 필요성

그런 측면에서 이제 재단이 동북아 정책 관련 국내 최고 싱크탱크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싱크탱크는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이 대표적이다. 전세계 170여 개 국가에 5,500여 개 싱크탱크가 있는데 그 중 2,000여 개가 미국에 있고 그 가운데 400여 개가 워싱턴에 몰려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유독 싱크탱크가 발전한 이유로는 정부 밖 전문가들의 의견을 중시하고 신뢰하는 행정부,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는 다원주의 문화, 개인과 기업의 활발한 기부 전통, 풍부한 인력 자원등이 꼽힌다.

우리나라는 문화와 전통이 미국과 달라 싱크탱크가 발전하는 일이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재단이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장기적으로 추진하면 불가능하지만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동북아 역사 문제에 관해 축적한 풍부한 연구 자료와 업적을 정책 개발의 밑바탕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중국·일본을 축으로 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면서 한국의 동북아 전략 연구와 개발의 필요성이 그 언제보다 커졌다.

세계 G2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동북아에서 미국과 패권을 겨루고 있다. 일본은 한국·중국과 과거사 문제로 대립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중국을 겨냥해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일본과 연대해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경제 분야에서는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은 이를 이용해 한국에 미국 일변도인 안보 정책을 바꾸라고 은근히 압박하고 있다.

우리가 지난 오천년 역사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힘에서 벗어난 시기는 해방 후 지금까지 수십 년간 뿐이다. 그 이유는 오로지 미국의 한반도 개입 때문이다. 한·미 안보동맹체제가 형성되면서 중국 또는 일본 어느 쪽도 한국에서 지배적 지위를 잃게 됐다. 그런데 중국이 미국과 동북아 패권을 다투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한·미 동맹체제가 위협받게 된 것이다. 앞으로 중국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우리 사회는 '미국 중시론'과 '중국 중시론'을 놓고 여러 정파와 세력 사이에 대립과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제2 '조선책략'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도 우리는 한·미동맹 측면에서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침략 행위를 비판하는 것에서는 같은 처지에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이문제로 일본과 지나치게 대립하거나 중국과 자주 보조를 맞추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한·미·일 연대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전략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도 한·일 갈등이 한·미·일 연대에 나쁜 영향을 줄 정도로 악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동북아 역학 관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우리의 생존을 좌우할 중대한 문제다. 구한말에 비유하면 제2 '조선책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 책략의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재단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연구 대상, 방법론, 인력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면 원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중국 역대 정권의 한반도 정책, 임진왜란 전후 조선·명·일본 관계, 구한말 조선을 둘러싼 외세 간 각축과 조선의 대응 문제 같은 것들이다. 방법론도 과거 역사에 관한 순수 학문적 조사연구에서 더 나아가 국제정치학적 시각과 분석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인력을 역사학자 외에 정치학, 국제정치학, 경제학, 군사학 전문가 등으로 보강할 필요가 있다. 현장 경험을 쌓은 해당 분야 전직 관료들을 초빙 연구원 식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재단은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 민감한 문제를 내놓고 거론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 목표 아래 단계적으로 모색해 나가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동북아 국제정세에 관한 재단의 연구와 정책 개발 역량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역량을 인정받게 되면 활동 범위와 분야도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친명파와 친청파로 갈려 싸우다 병자호란을 맞았고, 일본 정세에 깜깜한 채 당쟁만 일삼다 임진왜란을 당했다. 구한말에는 열강의 다툼 속에 우왕좌왕하다가 나라를 빼앗겼다. 과거의 어리석음을 더 이상 되풀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