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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
종로구 내자동 한성임시정부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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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7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표지석

3·1운동으로 독립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열망이 분출된 후, 일제의 탄압과 감시는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3·1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지도자들의 투옥은, 향후 더욱 체계적인 독립운동 조직의 결성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갖게 했다.

1919년 3월 1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를 필두로, 4월 13일에는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국내에서는 한남수, 홍면희 등이 뜻을 모아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에서 13도 대표 및 종교계 지도자들과 정부수립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당시 현직 검사였던 한성오 집에 모여 국민대회취지서와 임시정부 약법을 만들고 서울에서 임시정부 수립 선포식을 거행하기로 하였다.

마침내 1919년 4월 23일. 종로구 서린동의 봉춘관에서 13도 대표 24명이 국민회의를 개최하여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서울 곳곳에서 유인물을 배포하며 이를 알렸다. 한성임시정부는 민주제와 대의제를 기초로 한 약법(約法)을 공포하고, 집정관 총재 이승만을 필두로 12명의 정부 각료를 임명했으며, '국민대회취지서'를 통해 일본 정부의 통치권 철거와 군비 철퇴, 일본관청 납세 거부 등을 결의했다. 이를 당시 미국 최대 통신사인 UP통신이 보도하면서 국외에도 한성임시정부의 수립이 알려졌다.

국민대회 취지서(이미지 제공 : 독립기념관)

이후 1919년 9월 6일, 각지에 흩어져 수립된 임시정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한성임시정부는 절차적 정당성과 탄탄하게 구성된 조직을 인정받아 통합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직과 각료로 계승되었다. 비록 4개월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임시정부의 근간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하고 일제 치하 서울 한복판에서 정부수립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의 의미는 커보인다.

올해는 한성임시정부 수립 96주년이 되는 해다. 경복궁역 7번 출구 인근에는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준비하던 한성오 집터에 '한성정부 유적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현재 도로로 편입되어 사라진 이 곳은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 거점'으로 부르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는 지적도 있다.

참고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 - 한성정부, 대한민국임시정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6317&cid=46623&categoryId=46623
독립기념관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 - 한성오 집터
http://sajeok.i815.or.kr/ebook/ebookh01/book.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