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과 몽골이 수교한 지 꼭 25주년인 해다. 고구려, 부여 등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동몽골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았을 만큼 몽골과 한국은 다양한 층위에서 역사·문화가 중첩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의 뿌리를 연구하는 데 양국의 학술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 재단은 지난 2011년, 몽골 과학아카데미와 협약을 체결하고 '한·몽 역사가협의회'를 발족해 몽골과 역사·문화 분야의 학술교류를 지속해오고 있다. 이번 호에는 몽골 과학아카데미 역사·고고학연구소의 S. 촐론 소장을 만나 지금 동북아시아에서 주목하고 있는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문화와 주변 국가의 역사왜곡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_ 편집자 주
S.촐론(S. Chuluun) 소장
1999년 몽골국립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러시아 국립사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몽골국립대학교 전임강사, 몽골국립무역대학 부학장을 지냈으며, 2010년부터 현재까지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고고학연구소 소장을 맡고있다. 중세 몽·러 관계사를 전공하였으며, 몽골 민속학 등에 관한 저서를 포함하여 약 100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Q. Jang Seog-ho 2015년은 한국과 몽골이 수교한지 25주년이다. 또 2016년은 우리 재단과 몽골 과학아카데미가 협약을 체결한 지 10년째가 된다. 여러 가지 감회가 있을 것 같다.
A. S. Chuluun 몽골은 1990년 사회주의 체제를 벗어난 후 아시아 여러 국가 중에서 제일 먼저 한국과 수교했다. 두 나라가 활발하게 협력하고 있는 분야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가 역사학 분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몽 국민이 아시아 다른 나라보다 서로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언어, 문화, 역사라는 무대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친근함이 양국의 관계 발전으로 이어진 것은 공식 기관들 사이 끊임없는 교류와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재단과 몽골 과학아카데미가 체결한 포괄적 학술교류 협정도 그중 하나다. 두 기관은 이 협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2011년 '한·몽 역사가협의회'를 공식 발족하였다. 몽골의 역사학자들은 제일 먼저 한국의 역사학자들과 공동으로 협의회를 발족한 것이다. 이 협의회는 양국 학자들의 교류 협력 지도, 각종 행사 정기화, 연구 논저 간행 지원, 주변국의 역사 왜곡 공동 대응, 인적 교류 등을 목표로 한다.
지난 시간 역사·고고학자들의 협력과 교류 성과는 상호 이해하는 폭을 넓히고, 연구 경험을 쌓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관계를 한 단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시점에 이르렀다. 몽골과 한국이 수교한 25년간 역사·문화 분야의 교류가 주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역사문화 분야의 교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Q. Jang Seog-ho 중국은 '북강항목'과 '초원공정' 등을 통해서 몽골사 등 북방 수렵·유목 민족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중국 외에 몽골사를 왜곡하는 주변 국가들이 또 있나? 몽골사 왜곡의 주요 내용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S. Chuluun 일반적으로 유목민의 역사, 정착민의 역사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다. 유목국가로는 최초인 흉노 시대부터 사료에 "(만리)장성 안쪽에 있는 의관을 갖춘 나라는 중국이고, 장성 북쪽에 있는 활 쏘는 사람들의 나라는 유목민이다"라고 아주 자세하게 기록했다. 지금도 중국과 유목민 사이에는 상대방을 인식하는 정도나 평가에 큰 차이가 있다. 중국에서 북방 유목민 역사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도 그들의 연구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를 부인하고 왜곡하는 방법으로 역사를 해석하면 학문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또 과학적이어야 할 학문 영역에서 스스로 후진국임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최근에는 중국뿐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도 몽골 역사를 왜곡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칭기즈칸이 카자흐스탄의 '칸'이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카자흐인들은 17세기까지 몽골 세력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골국 영토가 카자흐인들의 요람이었다는 식으로 서술하면서, 칭기즈칸이 카자흐 사람인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역사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수백 년 동안 유목민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유목민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흡수하였다. 물론 반대로 수백 년 동안 이웃하여 살아왔기에 중국의 정착민 문화 요소가 몽골로 전파되어 흡수된 것들도 많다. 이것은 문명이 발전하는 자연스러운 이치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몽골 역사학계에서도 몽골 역사를 왜곡하는 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학술적 근거들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단순히 다른 나라 역사를 왜곡하는 방식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Q. Jang Seog-ho 중국은 요하 유역과 내몽골 지역의 고고학 조사를 통해 '중원' 지역과는 다른 양상의 유적들을 발굴하고, 그 문화들을 이른바 '요하문명'과 '홍산문화'라고 포장하여 중국사 속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몽골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 문화와 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이고, 그 귀속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A. S. Chuluun 이 문제에 대해서 몽골 내 많은 전문가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관련 학술 서적도 나와 있다. 중국이 유목민이 사는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지와 유물을 통해 중국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역사 연구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몽골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은 몽골인이라는 사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내몽골 지역은 비록 현재 중국에 속해 있지만 그 땅에 살고 있는 유목민들은 유목민의 문화 유산과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중국의 홍산문화 연구는 아직까지 다른 나라 역사학계에게서 완전한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논쟁이 많기 때문에 몽골에서는 중국의 홍산문화 연구 결과물이 나오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의 양심 있는 학자들도 역사를 정치적으로 남용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학자들의 훌륭한 연구를 정치에 이용하거나 사사로운 욕심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지난 역사와 역사 연구 자체를 후퇴시킨 원인 중 하나다.
Q. Jang Seog-ho 서로 다른 민족들의 역사와 문화가 겹쳐 있는 접경지역 문명사 연구의 경우, 특정 국가와 민족의 편향된 시각이 개입되면 인접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가 왜곡될 수 있다. 몽골과 한국이 속한 동북아시아도 접경지역 중 하나다. 이른바 '동북아시아사'의 정립을 위하여 몽골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A. S. Chuluun 바람직한 '동북아시아사' 정립을 위해서는 역사와 문화가 중첩한 국가와 민족 간 공동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 또 동북아시아에서 몽골의 지리적인 특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어느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몽골이 속하는 지역이 어디까지냐를 두고 의견이 다르다. 주로 영국 등 유럽인들은 몽골이 내륙아시아에 속한다고 보고, 일본과 한국 학자들은 동북아시아에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몽골을 중앙유라시아 지역에 포함하기도 한다. 역사와 문화 분류법에 따르면 몽골은 현재 아시아와 유럽이 접하는 접경지역에 속하며 과거 시베리아에서 티베트 고원까지, 한반도에서 유라시아 초원까지 펼쳐진 광활한 지역에 걸쳐 있다. 이 때문에 몽골은 동북아 지역의 여러 민족, 국가와 역사·문화가 겹친다. 동북아시아사에서 몽골이 중요한 이유이고, 몽골이 동북아시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Q. Jang Seog-ho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러시아의 '신유라시아 정책',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같은 정책은 중앙유라시아가 새로운 변화와 발전의 무대로 부상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몽골은 여러 나라들의 중앙유라시아 정책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A. S. Chuluun 몽골은 이웃 지역이나 국가들과 정치·경제적으로 활발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유라시아, 유라시아 지역 인식에서 정치·경제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문화 문제다. 우리 조상들은 수천 년 동안 이 지역에서 역사와 문화를 끊임없이 새로 창조하면서 중앙유라시아 역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왔다. 때문에 공존 공영하는 미래를 계획한다면 과거를 함께 돌아보고, 그 경험을 고려해야 한다.
주변 국가들이 중앙유라시아에 관심이 큰 만큼 이 지역 국가들의 역사, 현대 문제를 공동으로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우리 연구소 산하에 '중앙아시아·유라시아 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학자를 포함해 유럽, 일본, 미국 학자들도 함께 참여한 학술회의를 독일에서 개최하였다. 9월에 이 연구센터가 공식 발족한다. 앞으로 이 연구센터와 몽골과학아카데미 내에 새로 '지역 연구 분과'를 만들고, 여기에서 중앙아시아·유라시아에 관한 연구를 활발하게 추진할 것이다.
Q. Jang Seog-ho 지난 6월 재단에서 개최한 학술행사에서 '17세기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와 몽골'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중앙유라시아 지역에서 몽골이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A. S. Chuluun 현재 17세기 유라시아 지역에 진출한 러시아인들의 역사를 연구하는 중이라 당시 학술행사에서 관련 연구를 발표했다. 주로 러시아 국립고대문서보관소, 중국 베이징문서보관소에서 발행한 만주어와 몽골어 문서를 주 사료로 삼아 연구하고 있다. 대체로 17세기에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점유하면서 몽골 초원에도 진입하여 만주에 있는 청나라와 교류하였는데 그 후부터는 이 지역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대 중국과 러시아 관계에는 몽골이 기초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길은 3개인데, 모두 몽골인들이 러시아인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17세기에는 러시아, 청나라 양국이 공식 언어로 몽골어를 사용하였다. 몽골인들이 처음으로 러시아에 차(茶)를 소개했고, 그 뒤 '찻길(Tea Road)'이라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길이 열렸다. 지금은 '초원 길'이라는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는데, 그 기초는 바로 이러한 역사 전통과 관련이 있다. 이처럼 당시 러시아 - 중국 관계에서 몽골의 역할은 아주 컸다. 그 역사를 잘 연구하면 몽골이 미래에 어떤 정책과 원칙을 세워 주변 국가와 교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앙유라시아 지역에서 몽골이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하였던 시기를 모두 5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 시기는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제2기는 돌궐시대, 제3기는 몽골제국시대, 제4기는 17세기, 제5기는 오늘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를 연구하여 올바르게 평가하는 작업은 중앙유라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Q. Jang Seog-ho 한·몽 양국이 향후 주안점을 두고 협력해야 할 분야와 과제가 있다면?
A. S. Chuluun 그동안 몽골 초원에서는 주로 공동 연구를 실시하였고, 한국의 여러 기관과 개인들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유럽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다 보니 연구 자체가 종합적이지 못하고 체계도 미흡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연구 주제 대부분이 임시 주제였기 때문에 프로젝트들이 산발적으로 실시되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도 있다.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이 지적된 만큼 앞으로는 종합적으로 연구하면서 장기적인 공동 연구 비중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몽 양국은 언어, 문화, 전통, 역사 분야에서 서로 관련성이 많은데도 다른 동북아시아 나라들 사이에서 쟁점이 되는 영토, 역사·문화 분쟁이 없기 때문에 역사·고고학 분야에서도 안정된 교류가 가능하다. 한·몽 사이에는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주제가 많다. 앞으로 역사와 고고학 분야에서 더욱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작업에 '한·몽 역사가협의회'의 활동이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한·몽 역사가협의회' 활동은 홍보, 양측의 연구현황 파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제는 본격적인 공동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동북아 지역의 유목민들이 남긴 유산을 함께 연구하면서 역사 왜곡에 실질적으로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 모든 활동에 동북아역사재단이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이에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