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7월 13일부터 18일까지 국사편찬위원회와 공동으로 한국 상고·고대사와 관련된 역사 현장인 산해관과 갈석산, 요녕성내몽골자치구 일대의 신석기~청동기시대 여러 유적을 답사하였다. 조사지역은 중국 하북성(河北省) 진황도(秦皇島), 요녕성(遼寧省) 능원(凌源)과 조양(朝陽), 내몽골자치구(內蒙古自治區) 적봉(赤峰) 일원이었으며, 재단 김학준 이사장과 국사편찬위원회 김정배 위원장을 공동 대표로, 재단의 고광의 역사연구실 2팀장, 필자, 강정미 홍보팀장, 윤지훈 행정원과 국사편찬위원회의 박남수 편사연구관, 조영광 편사연구사 등 두 기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7월 13일,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 답사단은 하북성 노룡현(盧龍縣) 영평부성(永平府城)과 난하(灤河), 창려현(昌黎縣)의 갈석산(碣石山)을 찾았다. 이 지역은 학계에서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고조선 강역 논란의 중심 무대다. 현재 학계 일각에서는 난하와 갈석산을 고조선의 서쪽 경계로 인식하고 있으며, 낙랑군(樂浪郡) 수성현(遂城縣)의 치소를 바로 영평부성으로 비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갈석산·난하 유역 고조선의 흔적과 장성의 동단
이 가운데 갈석산은 남쪽에서 요서 지역으로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에 우뚝 솟은 장대한 산으로, 역사상 고대부터 한국과 중국 사이 경계가 되는 주요 표지 역할을 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영평부성은 현재 남아 있는 성곽의 구조, 축성 방법으로 봤을 때 성곽 자체만으로는 고조선의 중심지라고 직접 연관시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답사단의 판단이었다. 이와 관련한 문제는 향후 성 안팎과 주변 유적을 치밀하게 조사하고 사료를 분석하여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음을 공감하였다.
중국은 2012년 느닷없이 '장성보호공정'을 들고 나와 장성의 총길이를 4배 이상 늘려 발표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앞서 특히 2000년대 이후 중국은 압록강 북안에 자리하고 있는 호산산성(고구려시대의 박작성으로 비정)을 명대 장성의 동단이라며 집요하게 주장해 오고 있다.
답사 이튿날인 7월 14일 일정은 장성과 관련한 중국 측 논리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여정이었다. 산해관은 연산산맥 동단과 발해만 사이의 좁은 평지에 있는데, 한 지역의 경계로서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천혜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산해관 고성과 노룡두 유적은 바로 이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축조한 방어시설이며 이를 경계로 관내(關內)와 관외(關外)를 구분짓고 있다.
이에 반해 압록강 북안의 호산산성 주변은 깊은 산지 지형으로 장성을 쌓기에는 부적합하며 그 주변에서는 장성 유적으로 볼 만한 명확한 고고학적 증거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산해관의 대표 유적인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 장성 동단이 바로 산해관이라는 현지의 유적 설명, 그리고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들 속에서 이곳이야말로 만리장성의 동단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서지역 신석기~청동기시대 문화
7월 14일 오후와 7월 15일은 요녕성 능원, 조양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른바 '요하문명'의 핵심시기인 신석기시대 홍산문화 관련 유적들을 답사하였다. 중국은 홍산문화를 이른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에 기초하여 중화문명의 기원 가운데 한 뿌리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우리 학계 일각에서는 고조선의 시원 문화라고 주장하여, 한국과 중국 사이에 논란이 벌어지는 역사 무대 중 하나다.
홍산문화 유적 가운데 대표격인 우하량 유적은 최근 대규모 공사를 마치고 이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답사팀을 맞이했다. 현재 '우하량 국가고고유적 공원'으로 꾸며져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데,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노천에 드러나 있던 여신묘 유적(1지점), 제단과 적석총유적(2지점)을 빙 둘러서 옥기를 상징하는 모양을 한 보호시설을 설치하였고 별도로 부지를 마련하여 대규모 박물관도 세웠다. 이 공원을 조성하는 데 한화로 1,000억 원이 넘는 5억 위안(元) 이상을 투입했다고 하며, 2018년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이런 사업을 매개로 홍산문화를 5천 년 전 다원일체 중화문명의 서광이라고 한껏 치장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역사 패권주의에 맞서기 위해 서둘러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들었다.
답사 막바지 여정은 내몽골자치구 적봉일대 초기 청동기시대 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으로 채웠다. B.C. 2000년~1500년 발생한 하가점하층문화는 시기상으로 고조선 건국 시기와 비슷하고, 한반도 여러 문화와도 닮은 점이 있다. 이 때문에 국내 학계 일부에서 이 문화도 고조선과 연관시키거나, 우리 문화의 시원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번 답사는 이러한 문제의 실마리를 풀 주요 유적을 중심으로 조사하였다.
7월 16일에는 하가점하층문화 유적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성자산산성을 오르고, 7월 17일에는 자세한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 전체 전모가 밝혀진 삼좌점석성, 암각화가 잘 남아 있는 지가영자석성을 답사하였다. 이 유적들은 모두 돌로 성벽을 쌓은 석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석벽에는 반원형 형태로 치가 잘 남아 있어 학계 일각에서는 고구려 석성의 기원이라고 인식하기도 하며, 삼좌점석성과 지가영자석성의 암각화가 한국 암각화의 기원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이 유적들은 그 특징과 양상에서 중원 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요소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차이를 보다 명확하게 밝히는 연구가 필요하며, 나아가 우리 역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주목하여 관련 문화의 구체적인 성격 규명과 심화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