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한·일 국교수립 50년)을 맞아, 최근 동아시아의 정치 변동과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 위안부 문제와 영토 문제에 관해 한·중·일 전문가들이 서로 인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학술회의를 재단 주최와 동아일보 후원으로 개최하였다.
"요동치는 동아시아 : 역사를 넘어서 새로운 질서로의 재편까지"를 주제로 2015년 7월 2일∼4일까지 열린 이번 학술회의에는 참가자는 한·중·일 동북아 국제문제 전문가, 대학교수 등 20명이 참석, 주제 발표에 이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제1부 '요동치는 동아시아 정세 : 어제와 오늘'에서는 중국의 급부상과 일본의 우경화, 변화하는 미·중 관계와 한·일의 불화 같은 소주제를, 제2부에서는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와 '위안부'문제, '집단적자위권'과 일본의 영토문제에 관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마지막 제3부에서는 참가자 전원이 참여하여 종합토론을 벌였다.
학술회의 당시 한·중·일 전문가들은 8월로 예정하고 있던 아베 담화에 별다른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오히려 담화가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니시노 준야(西野純也) 게이오대 교수는 발표 논문 '불안정한 동아시아 정세 - 한·일 양국의 인식 차와 관계 악화'에서 "한·일 관계가 직면한 어려움은 두 지도자들 사이에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 불신감만 커지고 있기 때문인 것은 틀림없으나, 두 나라 정부가 취하는 대일본, 대한국 정책의 배경에는 한·일 양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동북아 군비경쟁을 넘어 평화체제로'에서 "2015년 여름, 동북아 정세는 19세기 말 유럽의 국제정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며, 중국의 해양진출과 도서 분쟁, 일본의 가치외교를 통한 중국 포위정책 전개와 관련한 한국의 역할과 고민을 분석하였다. 이어서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는 '중국의 적극 외교와 동북아 정세의 영향'을 주제로 중국의 주변국 외교 진화, 규칙제정자로서 중국의 등장, 미국의 동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맞선 중국의 대응, 중국의 대일 공세와 실용외교의 이중주, 대러시아 관계 발전과 중러 관계, 그리고 중국의 한반도 정책과 한·중 관계를 분석하였다.
동북아 갈등의 근본 원인을 둘러싼 치열한 토론
이날 회의에서는 또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갈등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토론이 오갔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는 "일본 내각부가 벌인 연례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한국을 친근하다고 느끼는 일본인은 불과 30%로 역대 최저치였다"며 "일본에서는 한국이 점점 일본을 나쁘게 보니 일본도 그렇게 변했다는 식이다"라고 전했다.
반면, 류장융(劉江永) 중국 칭화대 당대국제관계연구원 부원장은 '세계지도 제작에 반영된 19세기 일본의 울릉도·독도인식' 주제 발표에서 중·일, 한·일 관계를 후퇴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일본의 정치 우경화를 들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위험한 정치적 DNA가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관해 필자는 "단순히 한·일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이나 외교정책 때문이 아니라 세 나라 국력의 변화, 동북아 내에서 세력 전이 현상으로 불거진 거시적인 흐름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술회의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최근 동북아 정세를 두고 비판과 자성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월 아베 담화에 한국이 요구해 온 △침략 △식민지 △반성 △사죄 등 4대 요소를 포함하지 않고, 중국이 이를 문제 삼아 한국 주도 한·중·일 정상회담 참여를 거부할 때, 한국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아베 담화문에 따라 정상회담을 포함한 향후 대일 외교 방향을 결정하는, '기다리는' 외교에 머물기보다 먼저 아베 담화문의 영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외교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한국 외교는 하루 빨리 '사고 정지'처럼 보이는 상태에서 벗어나 상위 목표가 무엇인지, 일본과 안보협력에서 무엇이 불가한지에 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한·일 관계 회복은 한·미·일 협력을 촉진한다
한·일 관계 악화가 한·미 동맹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 낀 '(강대국 외교 사이에서 동요하는)스윙 스테이트'로 비칠 수 있다"며 "한·일 관계를 회복하면 한·미 동맹은 더 공고해진다. 11월 말까지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일, 중·일 양자회담을 개최해 긴장 완화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국 외교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의견도 다양하게 나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대외전략기획관을 지낸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일본의 자위대가 강해지면 한국에 쳐들어올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일본 역시 한국과 협력하면 전략적 이득이 많은데 한·일 협력을 과소평가해 왔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하종대 동아일보 부국장은 "한·중·일이 영토 문제 같은 첨예한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면 당분간 접어둬야 한다"며 "단, '위안부' 문제는 '과거'가 아닌 희생자들이 생존해 있는 현재 쟁점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한·중·일 세 나라 전문가들이 이 지역의 역사와 영토 문제에 관해 서로 상대방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해를 넓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나아가 긴장관계를 풀어 갈 방안을 모색하는 좋은 장이었다. 또 본 학술회의를 통하여, 중·일 양국 전문가들에게 역사·영토 문제와 같이 민감한 사안에 관해 우리가 생각하는 원칙과 해결 방향을 명확히 밝히는 한편, 동북아 전문가들과 재단 사이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계기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