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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제국주의 유산과 동아시아》 제국주의에서 찾은 동아시아 역사 갈등의 기원
  • 글 최덕규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이근욱 최정수 김원수 이영관
최덕규 최덕수 김기윤 지음

'제국주의'는 19세기 중반 무렵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용어다. 이 말은 영국인들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침략 전쟁을 떠올리며 비난받아야 할 대상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굳이 국가나 특정 정치체제가 세력을 확장하여 국외 지역에 진출하는 모습 혹은 그런 의도를 근대사에서 표현하자면 '식민주의'라는 용어가 더 적절해 보인다. 16,17세기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나 프란시스 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에서 우리는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며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유럽인들의 꿈을 읽을 수 있다. 이들에게 '식민주의'란 사람 손이 미치지 않은 비옥한 토지를 작물의 생산지로 만드는 작업, 널려있는 사냥감을 수렵하여 식량화하는 작업이나 버려져 있는 삼림을 벌채하여 농경지를 확장하고 목재를 이용하는 작업을 뜻했다. 요컨대 이들에게 '식민'이란 새로운 지역에 문명을 이식하여 주민들은 물론 자연을 개선하는 과정이었다.

영국의 팽창정책을 비판한 홉슨의 제국주의론

19세기 후반 제국주의는 열강의 힘과 도덕적 의무를 표상하는 자랑스러운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영국인 홉슨이 영국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 제국주의는 현대인들에게 알려진 바와 같이, 경제적 침탈을 목적으로 하는 팽창주의 이미지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홉슨의 비판은 제국주의 팽창정책이 대부분 영국인 자신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시도였다. 홉슨은 당시 영국의 팽창정책을 추동하는 세력이 판로와 투자처를 찾아 정치적 해외 팽창을 시도하던 산업 및 금융자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팽창적 제국주의론에 맞서 제기된 이론이 제국주의 주변부 이론이다. 이는 제국의 팽창을 위해 주변부 또는 식민지의 역할과 힘을 과소평가해 왔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되었다. 주변부 이론가들은 제국은 원래 비용이 적게 드는 간접통치를 원했으며, 무력정복과 같은 폭력수단 즉 제국주의적 수단은 간접통치를 위한 식민지 협력자를 얻을 수 없었기에 마지못해 선택한 결정이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제국의 팽창을 유도한 원인뿐만 아니라 그 간접적 팽창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도 제국에 협력한 식민지 자체의 힘이었으며, 제국을 직접 통치하는 길로 내몬 것도 역시 협력자 부재라는 식민지 상황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부의 힘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주변부와 중심부가 서로 상대를 변화시키는 힘에 격차가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가 되었다. 식민지의 역할을 강조하려던 노력이 결국 식민지는 역사의 주역이 아니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책은 제국주의 시대가 남긴 역사유산이 오늘날 동아시아 역사 갈등의 기원 가운데 하나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제국주의에 관한 이론과 해석, 주요 제국주의 열강의 동아시아 정책 사례분석 그리고 문화 제국주의 일환으로 식민지 과학 독법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의 다양한 모습들을 고찰한 결과물이다. 제국주의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 학자 7명이 참여한 공동 연구의 결과물인 이 책은 다음의 논문들로 구성되었다.

먼저 "대외팽창과 국가의 행동"에서는 1914년 이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국제정치학 연구들은 제국주의 팽창이 약소국에 미친 영향보다는 그것이 강대국 관계에 미친 결과에 주목했음을 밝혔다. 다음으로 "알프레드 T.마한의 거대전략과 '러시아봉쇄전략'"은 바다를 지배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마한의 '해군전략론'이 아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국제정치전략'으로 바뀌는 과정을 고찰했다. 이어서 "핼포드 맥킨더와 영국 제국주의"는 '심장지대'의 지정학 개념을 제시한 영국의 정치지리학자이자 교육가인 맥킨더의 지정학 이론이 영국 외교정책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독일제국 빌헬름 2세의 식민지정책과 동아시아"는 독일 제국주의와 동아시아의 관계를 빌헬름 2세의 세계정책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제국주의론과 조선"은 이토 히로부미와 더불어 메이지 일본정치사의 두 인물인 야마가타의 '군비확장론'과 '식민통치론'을 분석하였고, "제국주의와 과학"은 과학의 제국주의적 본성을 묻기보다는 그런 논의들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었는지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제국주의와 과학과의 관계를 고찰하였다.

한반도 위기의 해법을 역사에서 찾는 첫걸음

한편 "러시아의 해군정책과 한반도 남북변경의 위기(1885~ 1887)"에서는 올해 130주년이 되는 영국 해군의 거문도 점령 사건을 살피고 있다. 이 연구는 한국 근대사가 일본의 한국 강점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영국 함대가 불법으로 거문도를 점령(1885~1887)한 사건이 그 시발점이라는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나아가 제국주의 시대에 태동한 한반도 위기(Korean crisis)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현상에 주목하여, 1886년 영국이 거문도 철수조건으로 제기한 '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위한 국제협약' 체결 시도가 결실을 거두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영국정부의 각서(1886.4.14)에 따르면, 영국·중국·러시아와 일본이 참여하는 국제회의를 개최하여 조선의 영토보전에 관한 국제합의를 도출하면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만일 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에 관한 국제협약체결 제안이 실현되었다면, 그것은 바로 고종이 추구했던 조선의 중립을 국제적으로 보장받은 것으로 한반도가 근대 동아시아 전쟁(청일, 러일전쟁)의 무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한반도 부동항 획득 정책, 청국은 대조선 속방화 정책, 그리고 일본은 정한론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한·중·일·러 4국은 타협보다는 소용돌이치는 대결 속으로 들어선 바, 한반도 위기는 그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이처럼 제국주의 시대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는 것은 동아시아 역사 갈등의 기원뿐만 아니라 한반도 위기의 해법을 역사에서 찾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