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9일 재단은 한국정치외교사학회(회장 김영명 한림대 교수)와 공동으로 "한일관계의 제문제와 동북아 역사 화해" 주제 하에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번 학술회의에는 한국의 한상일 교수(국민대), 이윤상 교수(창원대)를 비롯해 일본의 히라노 겐이치로(平野健一郎) 도쿄(東京)대학 명예교수 등 40여 명이 참가하였다. 총 3부로 나눠 진행한 이날 회의에서는 한·일 간 경제관계의 역사적 전개, 현재 한·일 양국 간 쟁점과 위상, 역사 화해와 교류 협력 사례, 동북아 다자간 협력 추세와 한·일의 지역 구상 등을 소주제로 한 논문 9편을 발표하였으며,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동아시아 역사 화해를 위한 협력 방안 심층 토론
먼저 오전 회의에서 현재 일본학계를 대표하는 원로 학자 히라노 겐이치로 도쿄대학 명예교수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전망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론'이라는 기조연설에서 과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가려면 한국과 중국에 대한 일본의 역사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히라노 교수는 또 전후 일본 대학에서 군사적 안전보장론에 대항하는 안전 보장 방안을 탐구해 왔지만, 현실에서 결국 국가들은 과거 역사에서 저질렀던 잘못을 반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든다는 심정을 토로하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동아시아'라는 범주에는 한·중·일 3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북미, 오스트레일리아가 포함되어 있다면서, 국가뿐 아니라 복수의 여러 집단, 계층, 민족 등이 중첩된 중층적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축해 여러 주체가 벌이는 다종다양한 활동을 통해 경계를 넘어 종횡으로 교류하는 사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결론 부분에서 히라노 교수는 앞으로 일본 지식인이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사고 틀로 한국 지식인과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와 연대하여 힘을 키우면 역사인식 문제에 대처할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어서 제1부에서는 '한·일 간 경제 관계의 역사적 전개와 쟁점'이라는 주제로 일본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식으로 한국을 대하는 일본의 역사인식에 잠재해 있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였다. 구체적으로 먼저 이윤상 교수는 1910년까지 구한말 일본의 조선 경제 침탈 양상을 상세하게 설명하였으며, 도리우미 유타카(鳥海豊) 박사(선문대)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용별로 분류하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재단의 김관원 연구위원은 한일협정 당시 청구권 자금이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제2부에서는 '역사 화해 및 교류 협력의 사례와 한·일관계의 위상'을 주제로 독일 사례와 한·일 양국의 경험을 비교하였다. 먼저 다무라 미츠아키(田村光彰) 교수(전 호쿠리쿠 대학)는 '독일의 강제노동과 전후처리'라는 발표문에서 전후 독일이 나치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유럽공동체를 창설하는 데 참가하고 전몰자 추도소를 설치하였음을 언급하였다. 그는 또 독일은 나치시대에 강제 노동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기억·책임·미래 기금'이라는 강제노동 보상기금을 발족했음에 주목하여, 현재 일본의 태도와 대비시켰다.
교과서 대화에서 얻은 가치를 집필 기준으로 정리
이어서 이신철 교수(성균관대)는 '한·일 역사 갈등 극복을 위한 역사 대화의 성과와 한계 : 교과서 대화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한·일 양국이 임진왜란의 성격과 임나일본부설 문제, 한·일 강제병합의 성격과 식민지 근대화론 문제, 해방 후 한·일 기본조약의 성격 등에 관한 교과서 서술을 두고 오랫동안 갈등을 거듭해왔음을 지적하였다. 이 교수는 현재까지 한·일(한·중·일 포함) 간에는 공통 부교재 8종을 발간하는 성과가 있었음을 거론하면서, 이는 각국에서 역사 대화가 가능한 시민사회 영역이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 부교재들이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에 실제로 반영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한·일 간, 한·중·일 간 교과서 대화에서 얻은 가치를 집필 기준으로 정리해 각국 정부와 교과서 집필자에게 권고하는 방식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유럽의 경험을 참조할 것을 제안했다.
최희식 교수(국민대)는 1965년 국교 정상화 후 정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한·일 교류로 '한일협력위원회' '한일의원연맹' '한일포럼' 등 정치인 교류와 청소년 교류 현황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현재 이미 하고 있는 교류가 그 기능과 역할이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좀 더 내실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마지막 제3부에서는 '동아시아 지역 협력과 한일관계'를 주제로 이수경 교수(도쿄가쿠게이 대학)가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조양현 교수(국립외교원)는 한·일 양국의 지역주의 전략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동북아 역사 화해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논하였다.
이날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하여 강제동원·강제노동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는 상황에서, 최근 일본 정치인들이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아베 총리 담화에서 러일전쟁을 미화한 대목이 들어가면서 두 나라 화해 무드를 깨고 긴장 관계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크게 우려하였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참가자들은 지금이야말로 한·일 양국 사이에 교류 협력을 확대하며, 동북아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해서는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