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역사영상 심포지엄이 '2014년 트랜스내셔널 시네마 심포지엄'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7월 19일 일본 릿쿄(立敎)대학에서 개최되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릿쿄대학 이(異)문화커뮤니케이션학과 공동주최로 열린 '트랜스내셔날 시네마 심포지엄'의 기획 취지는 '새로운 자이니치(在日) 영화', 또는 국가간의 경계를 허무는 영화의 재발견을 통해 동아시아 역사인식을 비판·성찰하는 것이었다. 올해 심포지엄의 주제는 '공생사회로 향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에서 사는 젊은이들의 역사인식'으로, 재일조선인 청년들의 다중적 아이덴티티를 한국 다문화가정 청소년 이야기와 교차시켜 이해해보고자 하였다.
"애국심과 배타적 민족주의는 다르다"
2014년 심포지엄의 시작은 '대세'(강성명, 2011) 상영 및 강성명 감독과의 토크세션으로 진행되었다. '대세'는 재일조선인 축구선수 정대세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정대세는 일본, 북한, 독일, 영국 그리고 한국으로 넘나드는 삶을 살고 있다.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 출신인 정대세는 일본말이 가장 편하고,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하네다(羽田) 공항의 공기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에게 '우리나라'는 북한이고 한국이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소원대로 북한의 대표선수로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그리고 그 전력이 한국 생활을 구속한다. 영화 '대세'는 정대세의 좌충우돌하듯 자유로운 모습이 '국가'라는 배타적 경계와 '국적'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때로는 좌절하는 젊은이의 성장통임을 담고 있다.
민족학교 출신으로 와세다(早稻田)대학을 졸업한 강성명 감독, 도쿄예술대학의 모리 요시타카(毛利嘉孝) 교수, 동북아역사재단의 이원우 박사와 함께 진행한 토크세션에서 강 감독은 자기처럼 수십만 재일조선인들은 다양한 경험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근거 없는 인종차별이나 배타적 내셔널리즘과 애국심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대세'가 다중적 정체성을 지닌 재일조선인의 오늘을 다뤘다면, 오후 프로그램의 첫 세션인 '꽃할머니'는 정대세 할머니와 같은 재일조선인 1세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다. 13세의 어린 나이로 전쟁터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로 갇혀 살았던 고 심달연 할머니의 일생이 담긴 영상 그림책 한장 한장에 맞춰 6명의 릿쿄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이 일본어로 낭독하였다. 한국어 원문은 릿쿄대학 한국어 상급 수업을 듣는 학생 5명이 번역하여 자료집으로 배포했다. 낭독 후, 학생들은 각자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발표하고 교수들은 한·중·일 공동계획으로 시작된 '꽃할머니' 동화책 출판이 일본에서 좌절된 과정과 작품의 주인공인 고 심달연 할머니의 생애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최근 수업 도중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히로시마(廣島)대학과 담당 교수에 대해 일본의 한 우익 신문이 극단적인 비난 기사를 냈고 이에 반발하여 일본학계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꽃할머니' 낭독은 국가주의에 젊음을 빼앗긴 고 심달연 할머니의 트라우마와 정대세 선수가 경험하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역사적 뿌리가 한 곳에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였고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다.
국가와 국경을 초월한 정체성 모색
오후 행사의 후반부는 '완득이'(이한, 2011) 상영과 출연자인 이자스민 의원의 토크세션으로 진행했다. '대세'나 '꽃할머니'와 달리 '완득이'에 등장하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자, 장애인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겪는 차별과 소외는 허구다. 최근의 한국영화에는 현실보다 더 부정적으로 그려진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자, 탈북민, 조선족이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 대중영화 속에서도 자이니치는 소외되어 있다. 올해 역사영상 심포지엄에서 영화 '완득이'를 선정한 이유는 첫째, 잘 만든 상업영화가 가진 대중적 호소력과 친근감 때문이었다. 올해 심포지엄은 기획 단계부터 가능한 한 많은 고등학생들을 참가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신체장애자인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영화 '완득이' 주인공의 아이덴티티 찾기는 일본의 고등학생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였다. 또 출연자인 이자스민 의원은 필리핀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다.
아침부터 인솔 교사들과 함께 참석한 십여 명의 관동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적지 않은 학생들은 담담한 톤의 '대세', 애절한 '꽃할머니' 영상, 그리고 행복한 '완득이'를 보며 극적 흐름에 맞춰 고개를 끄떡이고, 웃고, 자막이 전달하지 못하는 감정을 읽어냈다. 이렇게 이날 행사는 '완득이'의 필리핀 어머니, '대세'의 정대세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꽃할머니'의 심달연 할머니처럼 고통받는 여성의 입장에서 한·일 역사와 인종 차별 현실을 성찰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 젊은이들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인종차별과 사회적 반목, 폭력적 언어가 난무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자기가 가진 다양한 문화적 뿌리를 소중히 여기며 두 사회의 국경을 초월하여 자신들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모색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기가 사는 사회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키우며 살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은 한·일 사회에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을 비롯해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이들의 삶을 다룬 영화를 상영하고, 다문화사회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 청년들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고찰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와 역사적 기억에 대한 일본 젊은이들의 새로운 역사인식을 모색하는 영화와 영상을 통해 공생사회가 내포하는 문제들을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젊은 세대의 노력과 도전은 최근 두드러지기 시작한 해외이민주민들, 결혼과 취직, 유학 등을 통해서 일본 또는 한국 사회에 정착한 아시아 여성들과 이들 자녀의 아이덴티티를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소통하는 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이 글에서는 국적과 상관없이 조선민족이라는 역사적 의미에서 재일조선인이란 용어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