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러시아 문서』 (2023, 동북아역사재단)는 러시아 문서관과 도서관에서 수집한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관련 자료를 번역한 것이다. 안중근 관련 러시아 문서 수집은 2011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범진 공사 순국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개최된 것을 계기로 러시아역사문서관(РГИА) 소장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관련 문서들이 재단으로 수집·이전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재단은 2022년에 재단 연구위원을 러시아에 파견해 추가로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이 책에 수록된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관련 러시아 문서는 대부분 역사문서관, 육군역사문서관(РГВИА), 해군함대문서관(РГАВМФ)에서 수집한 것이다. 아울러 러일 관계사 관련 저작물 가운데 관련 문서를 발췌하여 포함하였다.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러시아 문서』 (2023, 동북아역사재단)

문서집의 구성

이 책은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관련 세 가지 주제 문서들로 구성하였다. 제1부는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초프(В.Н.Коковцов)의 극동 출장 기록이다. 1909년 9월 22일,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코코프초프의 극동 출장을 재가했으며, 11월 30일에 재무대신은 얄타 리바디아궁을 찾아 차르에게 69일간의 출장보고서를 상신했다. 이 기록 가운데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관련 자료를 발췌하여 번역했다.

제2부는 남만주철도 초대 총재 고토 신페이(後藤新平)의 1908년 4~5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문 관련 문서로 구성하였다. 고토는 다롄(大連)을 거쳐 관청즈(管城子)에 도착해 러시아에서 보내 준 집무 시설이 갖춰진 특별열차를 타고 하얼빈에 당도하였다. 하얼빈에서 그가 탄 객차는 고속열차에 연결되어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 그곳에서 고토와 코코프초프 회담이 이루어졌다. 러시아 정계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심복으로 평가되던 고토 신페이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문은 1년 후인 1909년 이토의 하얼빈 여정에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3부는 러일전쟁 초기 상하이에 설치된 러시아 정보기구인 상하이정보국(Шанхайская агентура)의 요원 고이예르(Л.В.Фон Гойер) 관련 자료들이다. 상하이정보국은 러일 개전과 더불어 주한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А.И.Павлов)가 상하이에 설립한 비밀 정보 조직이다. 현상건, 윤일병, 강한탁 등 한국 유학생들이 러시아 만주군에 통역장교로 차출되어 코리아 휴민트(Humint)로 활동한 자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역사문서관(РГИА)(출처: 위키피디아)

의의: 안중근 연구의 새로운 접근

하얼빈 의거 기획 회의(1909.10.10.)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대동공보(大東共報)사장 미하일로프(К.П.Михайлов) 중령은 러일전쟁 당시 언론 검열을 담당했던 러시아 정보장교였다. 그의 통역 윤일병은 1903년 추구예프 군사학교(Chuguev Military School)에 입학했던 예비 사관이었으며 그의 동기는 현상건이었다. 고이예르의 보고에 따르면 현상건은 고종의 시종무관으로 지적이고 외국어가 유창했다. 상하이에 머물던 고종의 대외연락책 현상건이 연해주의 한국 의병조직과 대한제국 황실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맡았다.

대한제국은 왜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항일 독립 전략으로 택했을까? 이는 하얼빈 의거가 제2의 러일전쟁을 유발하게 될 트리거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결과 한국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면 제2의 러일전쟁이 발발하여 승전국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일본을 축출할 경우 한국의 독립 회복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는 비록 제2의 러일전쟁 유도에 실패했지만 미완의 선례가 되었다. 이를 완성시킬 사건은 5년 뒤 사라예보에서 일어났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처 암살 사건(1914)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얼빈에서 쏘아 올린 안중근의 총탄이 사라예보를 거쳐 원폭으로 돌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민족주의 벽을 넘어 글로벌 히스토리 시각에서 안중근 연구를 본격화할 새로운 모티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