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근대한국학연구소에서 “한국학의 한 세기를 다시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 발표자로 참석한 UC Irvine 대학교 서석배 교수는 미국 학계에서 인문학의 전반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학이 상대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K팝 등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로 한국어 수업에 등록한 학생이 많아지고 한국학 전공자들이 증가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금이 미국 대학 내 한국학 교수직과 한국학 연구소의 창출, 연구자 장학금, 관련 신규 과목 개발에 쓰이고 있다. 그리고 그결과 한국학 관련 신규 채용이 증가하고, 이는 다시 한국학으로 학생을 유인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미국 학계 내의 한국학 동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미국 학계에서 한국학 관련 논문이 가장 많이 투고되는 학술잡지 Journal of Korean Studies, Journal of Asian Studies, Asian Studies Review, 그리고 Korean Studies에 최근 5년간(2019~2024) 발표된 한국학(인문학에 한정) 관련 연구 논문 157편을 검토했다. 검토 내용은 학문 분야(디지털인문학, 문학, 미디어학, 역사서술비판, 인류학), 시대(1875년 이전 전근대, 1876~1945년 사이 근대, 1946년 이후 현대), 그리고 논문 장르(정책사, 사회사, 문학사, 문화사, 북한사, 역사학, 인물사, 종교사, 해방공간, 초국가주의, 한국전쟁사)이다. 특히 역사서술비판 논문에 관해서는 국내 역사 현안과도 연계해서 고찰했다.
현대사 연구의 증가
논문의 학문 분야에 대한 통계는 <표 1>과 같다. 역사학 논문이 38%로 비중이 가장 크다. 초기 한국 학계가 제임스 팔레(James Bernard Palais)처럼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점을 볼 때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역사학과 같은 전통적 연구 분야인 문학 역시 20%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변화를 잘 반영하는 것은 29%를 차지한 인류학 연구의 성장이다. 이는 이민 2세대 학자들의 유입과 국제이동의 증가 등의 영향으로 정체성과 국적 문제, 디아스포라 등에 대한 연구 관심이 높아진 까닭이다. 한국 대중문화에 관한 관심이 한국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한 연구로 이어져 현지 조사나 인터뷰와 같은 인류학적 방법론이 각광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이란 맥락에서 미디어학의 부상도 설명할 수 있다. 즉, 문헌뿐만 아니라 영화나 미술, 사진, 음악 등 시청각적 자료 분석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가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분석 기술의 대중화로 디지털인문학 분야에 속하는 연구의 증가도 볼 수 있는데, 그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
역사학은 여전히 가장 많이 연구되는 학문 분야다. 분석 대상 시기나 세부 연구 주제에서는 차이점이 보인다. <표 2>의 시기별 연구 수를 보면, 해방 이후 현대사 연구가 증가한 점이 눈에 띈다. 서구화되기 이전 한국사의 복원을 목표로 하는 연구자들은 비교적 사료가 풍부한 조선시대에 관심을 보여왔다. 한국만의 독특한 근대화 과정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관한 논의에 참여했다. 하지만 조사 대상이 된 지난 5년간의 미국 학계 한국사 논문을 보면, 현대사 연구가 근대사 연구와 더불어 가장 많다. 이는 현대사를 과거라고 여기는 신세대 역사학자의 등장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료와 시대적 인식 면에서 역사가들도 20세기 후반을 과거라고 부르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현대사 연구의 구체적 시기와 세부 주제에도 이러한 세대교체의 양상이 엿보인다. 물론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상징하듯, 미국 학계의 한국현대사는 한국전쟁사와 북한사 연구 영향을 크게 받았고, 이는 최근의 연구 경향에도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주로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이라는 격동기에 초점을 둔 기존 연구와 달리 최근 논문은 본격적인 개발 시대로 접어든 1960년대 이후를 분석하는 글이 절반에 이른다. <표 3>이 보여주듯이, 주제 면에서도 베트남전 관련 미술(Vicki Sung-yeon Kwon, “Contested Memories, Precarious Apology: The Vietnam War in Contemporary Korean Art,” Asian Studies Review 46(3, 4), 2022) 등 문화 현상을 다루는 분석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해외 입양(Youngeun Koo, “The Question of Adoption: “Divided” Korea, “Neutral” Sweden, and Cold War Geopolitics, 1964-75,” Journal of Asian Studies 80(3), 2021) 등을 다루는 이민 연구가 나타났다. 냉전 시대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넘어 개발 시대의 그림자라는 좀 더 보편적인 주제도 미국 학계 한국사의 논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방증이다.
연구 방법론의 다양화
시대 변화의 반영은 근대 관련 논문에도 나타난다. 우선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 방법론을 적용하는 연구가 늘었는데, <표 4>에서 보는 것처럼 종교를 장르로 하는 논문과 비슷한 정도로 나타난다. 미국 학계 한국사 연구자들은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예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이 근대로 진입하는 시기에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종교 관련 연구와 양적으로 대등한 규모라는 것은 초국가주의가 최근 역사학계의 화두 중 하나임을 증명한다. 식민지 조선의 일간지로 중국 혁명가 쑨원(孫文)을 분석하는 논문(Hyun-ho Joo, “Envisaging East Asia: Korean Daily Newspapers' Interpretations of Sun Yatsen's Pan-Asianism Speech,” Asian Studies Review 46(1, 2), 2022) 등이 그 구체적 사례다. 그런데 기독교 관련 연구도 특정 선교사를 다루거나 개신교 전파 경로를 조사하는 기존 방법론을 포용하면서도 찬양가나 의례(Hyun Kyong Hannah Chang, “A Fugitive Christian Public: Singing, Sentiment, and Socialization in Colonial Korea,” Journal of Korean Studies 25(2), 2020.1) 등에 중점을 두는 매체 분석까지도 나아가고 있다. 연구 방법의 다양성, 복합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 관련 연구 사례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관찰된다. <표 5>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시대 관련 논문 15편 중 초국가주의적 방법론을 수용한 논문은 6편으로 가장 많고, 문학이나 사회 관련 논문보다 두 배가 많다. 16세기 조선 찻잔의 일본 유통(Sol Jung, “Mapping the Circulation and Use of Korean Tea Bowls in Sixteenth-Century Japan,” Korean Studies 47, 2023.1)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찻잔’ 같은 키워드가 또 눈길을 끈다. 초국가주의적 접근법만이 아니라 물질문화 분석까지 동시에 적용되었다. 최신 연구 방법론이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점 또한 최근 미국 학계 한국사 연구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연구 방법론의 다양화는 새로운 접근법과 연구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미국 학계 한국 사학자들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환경을 주제로 하는 논문이 나타난 점도 이에 부합하는 예일 것이다. 아직 양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고려시대 기우제(Howard Kahm, Dennis Lee, “Begging for Rain: Economic and Social Effects of Climate in the Early Koryŏ Period,” Journal of Korean Studies 26(1), 2021.03)에 주목한 논문 등이 보인다. 이 연구는 환경사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인 점도 중요하지만, 전공 시기를 달리하는 역사학자 간의 협업이란 시도 또한 평가받아야 한다.
역사학의 역사서술 비판
끝으로 최근 미국 한국학 학계에서 역사서술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기존에는 주로 한국 근대사에 대한 역사서술이 민족주의적 사관에 치우친 점이 비판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이 연구 경향은 여전히 유효한데,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사관을 가진 지식인에 의해 한국 고대사(석기 시대) 서술이 왜곡된 부분을 지적하는 논문(Kisung Yi, “Japanese Imperialism and the Investigation of Stone Age in Colonial Joseon,” Korean Studies 45, 2021)이 바로 그 예다. 그렇다고 역사서술 문제를 기존의 주제만을 가지고 연구하진 않는다. 특히 최근에 논쟁이 된 유사 역사학을 비판하는 연구(Andrew Logie, “Transcending Pseudohistory: Korean Early Asia and Discourse Analysis, Journal of Korean Studies 29(2), 2024.1)가 나와서 눈길을 끈다. 복잡한 관계로 얽힌 한국 역사학계와 그 정도가 덜한 해외 역사학계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 역사 논쟁을 어떻게 풀어 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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