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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일본의 울릉도 불법침입 금지와 울릉도 이주정책을 실행한 검찰사 이규원 이야기『울릉도 1882: 검찰사 이규원의 시간 여행』
  • 김영수 재단 연구위원

울등도 1882 표지

 

고종시대 검찰사 이규원의 활동과 의미

 

울릉도 1882: 검찰사 이규원의 시간 여행은 검찰사(檢察使) 이규원(李奎遠, 1833~1901)4748일의 울릉도 공무 출장 기록을 바탕으로 그가 여정에서 만난 인물과 현장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1882년은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생한 해다. 임오군란 2개월 전인 18824월 검찰사 이규원은 울릉도에 파견되어 그 지역을 상세히 조사하고, 울릉도에 본격적으로 이주정책 보고서를 작성했다. 오늘날 울릉도에 주민이 형성된 것은 바로 이규원 검찰사의 활동 덕분이다.

이규원의 검찰사 활동은 한일 관계의 역사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이유는 이규원의 활동이 일본 정부로 하여금 울릉도에 대한 일본인의 도항을 금지하는 명령인 유시(諭示, 일본정부가 중앙과 지방에 반포하는 명령)를 이끌어 내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정부는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 이후 본격적인 울릉도 이주정책을 실행하고, 조약에 기초하여 울릉도를 불통상(不通商) 항구로 판단하고, 일본인의 불법 행동에 대해서 벌금으로 처벌할 것도 지시했다. 고종은 이규원의 검찰 보고서와 면담을 통해서 이규원의 단계적 울릉도 이주를 받아들였고 실행했다. 울릉도 불법 벌목 일본인의 추방을 위한 외교적 노력, 울릉도 관련 행정제도 신설, 울릉도 이주를 위한 백성의 모집 등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정부는 18941227일 조선정부는 울릉도 이주정책이 완성되자 울릉도에 관한 수색과 토벌의 정책을 완전히 폐기했다. 또한 19001025일 대한제국 칙령 41호는 울릉도에 독도(石島=獨島)가 소속된 사실을 국내외적으로 선포했다. 이처럼 이규원의 검찰사 활동에서 비롯된 울릉도 이주정책은 동해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 강화에 기여하였다.

 

제주목사시절 이규원 사진

제주목사 시절 이규원(출처: 이혜은 교수 제공)

 

 

이규원, 삼척 소공대에서 육안으로 울릉도 관찰

 

이규원은 서울을 출발하여 울릉도를 검찰하고 다시 서울에 돌아오는 총 4748일의 긴 국내 출장 일정을 수행했다. 그의 검찰 일정은 그야말로 산 넘고 강 건너 바다를 건너 특별임무를 수행하는 공무 출장이자 동시에 조선의 오지를 체험하는 여행이었다. 188247일 울릉도검찰사 이규원은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에서 고종을 면담하고, 410일 서울을 출발해 412일 원주목(原州牧), 420일 평해군(平海郡)에 도착했다. 이규원은 서울에서 출발한 지 20일이 지난 1882429일 오전에야 구산포(邱山浦)에서 울릉도로 출항했다. 430일 오후 6시경 울릉도 서쪽 학포[小黃土邱尾]에 도착하여 울릉도 현지를 본격적으로 조사했다. 512일 아침 울릉도를 출발한 다음 이규원 검찰사 일행은 512일 저녁 10시경 평해 구산포에 정박하고 육지에 내렸다. 그 후 이규원은 515일 평해를 출발한 다음 동해안을 따라 519일 강릉에 도착했다. 525일 원주를 출발하여 527일 서울 인근에 도착했는데 본격적으로 계본(啓本)을 작성했다. 188264일 이규원은 별단(別單)과 지도(地圖) 등을 준비하여 고종을 개별적으로 만난 다음 65일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에서 공식적으로 고종을 알현할 수 있었다.

이규원은 소공령에서 울릉도를 직접 관찰하고 소공령의 줄기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이규원이 소공령에서 울릉도를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는 한국 본토와 울릉도의 지리적 인접성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또한 울릉도를 태백산 산맥과 연결된 지역이라고 인식했는데 그것은 울릉도가 백두산과 태백산의 산맥과 연결되는 한국의 오랜 영토라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필자는 울릉도 1882: 검찰사 이규원의 시간 여행에서 이규원의 울릉도 공무 출장뿐만 아니라 그의 일대기를 전반적으로 추적했다. 이규원은 40년 동안 관직을 수행하면서 고종에게 충성심을 바쳤는데 그는 울릉도검찰사와 제주목사 시절 일본으로부터 백성과 영토를 지키려는 의지도 보여주었다. 고종시대 이규원은 유교 사상의 충성과 충실에 기초한 충의사상(忠義思想)과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하는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추구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반면 그는 동시대의 중요한 사건들을 숙지하고 추적할 수 있는 국제적 감각이 부족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 필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19세기 후반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파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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