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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호 뉴스레터
COVER STORY 즐거운 나들이, 신명나는 가락
즐거운 나들이, 신명나는 가락▲ 표지 그림 : 수산리 고분벽화의 악대 행렬평안남도 수산리 고분벽화의 널방 동벽 아래에 그려진 악대 모습이다. 왼쪽으로 멜북의 북틀을 어깨에 멘 두 사람과 북을 치며 걸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한 사람, 오른쪽으로는 길이가 매우 긴 뿔나발을 연주하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행렬도 앞에 자주 나오는 고취악대(鼓吹樂隊)는 대체로 신분이 높은 사람이 출행할 때 등장해 행렬의 흥을 돋우고 행진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다. 벽화 속 악대의 규모에 비춰 행렬의 전체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의 움직임만은 매우 생동감이 넘쳐 보는 이들마저 흥겹게 한다.특히 멜북은 걸어가며 연주할 때 흔들리지 않도록 세 면을 사슬로 고정하고, 왼쪽과 오른쪽 기둥에 매서 북을 세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북통에는 화려한 문양을 새기고, 위로는 검은 술이 달린 산개(양산의 일종)를 설치해 강한 햇볕이나 비바람에 북이 상하지 않도록 보호한 점이 눈에 띈다. 연주자 키만큼이나 긴 뿔나발도 검은색 표면에 붉은색 내부, 나발 끝에 매단 깃발이 흩날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즐거운 순간에 신명나는 가락을 얹을 줄 알았던 옛 고구려인들의 감성. 오늘날 우리의 봄나들이 길에도 흥겹게 울려 퍼져 올 듯하다.참고자료 : 동북아역사넷
과거를 직시하며 현재 세계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기고 과거를 직시하며 현재 세계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요즘 걷기 열풍이 뜨겁다. 걷기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이며 손쉬운 방법이다. 그저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내딛으면 저절로 앞으로 가게 되어 있다. 누구라도 한 방향으로 꾸준히 걷노라면 다시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인데, 인간 세상 일들도 세월을 거치며 돌고 돈다.누구나 살다보면 앞서 산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겪는다. 사람이 모여 만든 사회도 마찬가지다. 과거에서 배우고,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리고 한 방향으로 계속 걷다 보면,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 저 멀리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도 나온다. 이란이나 러시아도 거친다. 그 나라 사정을 모른 채 내 생각만 하면서 무턱대고 걷기만 할 수 있을까. 그 나라를 알고 그들 사이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유의해서 보아야만, 무탈하게 우리나라로 되돌아 올 수 있다.객관적 역사를 놓고 작금 일본은 우리와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독도 문제가 그렇고, 전시강제‘위안부’ 문제가 그렇다. 역사 속 사실은 오직 하나일 텐데, 그 진실을 놓고 어찌 이리도 다르게 보고 다른 생각을 드러내며 갈등하는 것인지. 그런 배경에서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가 새삼 떠오른 것이다.세계의 양심 있는 학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일본 정부에게 책임 있는 인식과 처신을 요구하고 있다. 전시강제‘위안부’ 문제가 한국 여성들의 문제여서가 아니라, 객관적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승에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들의 증언이 저리 절절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일본은 직전 정부가 해온 과거사 인식조차 부정하고, 일본 정부와는 무관한 일이라 강변하고 있다.정부가 하지 않은 일이라 우기고 그렇게 믿는다고 해서 악행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인가.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반인간적 악행을 없던 상태로 되돌리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행동을
글 성재호 (성균관대학교 교수·재단 자문위원)
"상호협력 관계 구축으로, 해외 한국학 진흥에 힘을 보태야"
인터뷰 "상호협력 관계 구축으로, 해외 한국학 진흥에 힘을 보태야"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연간 40여 종이 넘는 연구서, 대중서를 발간하고 있다. 또 이들 도서를 국내는 물론 해외 공공도서관, 한국학 연구기관에 배포하고 있다. 역사와 영토 현안 관련 우리 연구 성과를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재단의 해외 배포 기관에는 ‘동아시아도서관협의회(CEAL: Council on East Asian Libraries)’ 소속 도서관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지난 3월 26일부터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15 북미아시아학 대회(AAS: Association of Asian Studies)에 참석한 구미리 CEAL 한국학자료위원회(CKM) 회장을 강정미 홍보팀장이 만나 양 기관의 협력 방안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_ 편집자주구미리 l 북미 동아시아도서관협의회 한국학자료위원회(CKM) 회장미국 롱아일랜드대학 문헌정보대학원인 팔머스쿨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문헌정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듀크대학에서 국제지역학과 한국학 사서로 재직 중이다. 2012년부터 북미 한국학 컬렉션 컨소시엄 회장과 북미 한국학자료위원회 전자자료 분과위원장을 맡았고, 2014년에 3년 임기로 북미 한국학자료위원회 회장에 선출되어 북미 한국학 연구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강정미 먼저 CEAL과 한국학자료위원회(이하 CKM)를 간단히 소개해 달라.구미리 CEAL은 북미 동아시아 도서관의 발전 방안 등을 논의하는 포럼 역할을 한다. 동아시아 관련 도서 자료, 서비스, 기록 정보와 지식의 모든 유형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발전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동아시아 도서관들의 상호 국제 협력을 촉진하는 것이 목표다. CEAL 산하 위원회인 CKM (Committee on Korean Materials)은 북미 대학 도서관의 한국학 컬렉션과 한국학 사서들의 발전, 한국학 프로그램과 연구자 지원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경험, 지식, 정보 등을 공유하며 상호 협력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학계와 도서관계 변화에 맞춰
진행정리 강정미 (홍보교육실 홍보팀장)
재단-한러교류협회 공동 학술회의"동아시아 평화 번영을 위해 한·러 관계 안정과 발전은 필수"
연구소 소식 재단-한러교류협회 공동 학술회의"동아시아 평화 번영을 위해 한·러 관계 안정과 발전은 필수" 최근 동북아 안보문제와 한반도를 둘러싸고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둘러싼 세계인의 관심이 매우 높다. 이런 가운데 근대 이후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러시아와 한반도의 관계,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역할과 위상 등을 재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지난 3월 13일 재단과 ‘한러교류협회’ 공동주최로 열렸다.“제2차 세계대전 전승의 국제적 의의와 한반도”를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회의는 기연수 한러교류협회 회장을 비롯하여 최근 부임한 A.A.티모닌 러시아대사, 국내외 러시아 관련 전문가들, 학자들, 관계자들이 두루 참석하였다. 1, 2부로 진행한 학술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한반도와 러시아의 역사적 관계와 국제정치 흐름, 한국의 대 러시아 정책의 의의를 주제로 발표하고 토론하였다.먼저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에서 러시아의 역할과 위상”을 주제로 진행한 1부에서 국립외교원 고재남 교수는 ‘한반도 주변정세 진단과 대러 정책과제’ 논문에서 최근 북·러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은 남·북·러 3국 협력을 촉진하면서 러시아를 통해 한국의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연세대 고상두 교수는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에서 러시아의 역할과 위상’을 전망하면서, 러시아의 ‘신 동진 정책’과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상호 부합한다는 푸틴 대통령 발언을 인용하고, 한·러는 경제구조가 상호보완적이어서 서로 잠재력이 큰 중요한 협력 파트너임을 설명하였다.통일 한국에 긍정적인 러시아특히 한양대 엄구호 교수는 ‘한반도의 통일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위상과 모스크바 전승행사’에서 박 대통령이 모스크바 전승행사에 참석할 때와 불참할 때 고려할 점을 지적하였다. 엄 교수에 따르면 참석할 때는 한국의 통일 외교가 미국과 일본의 국익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이해시키려는 노력과 논리 개발이 필요하고 불참할 때도 한·중, 한·러 관계의 중요성과 역할을 강조하면서 가능하면 남·북·러 정상회담과 남·북·중 정상회담을 별도로 제안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마지막으로 국민대 장덕준 교수는
글 정세진(한양대학교 연구교수), 우성민(정책기획실 연구위원)
동모산의 진국, 발해
기고 동모산의 진국, 발해 ▲ 국가표준어진 제작위원회가 제공한     고왕 대조영 어진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나라, 발해! 과연 무엇이 떠오르나? 발해는 신라와 함께 남북국시대로 명명되는 그야말로 한국사의 당당한 일부다. 고려 태조 왕건은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금수만도 못한 나라라고 하면서 단교한 뒤 고려로 망명하는 발해 유민들을 따뜻하게 포용하였다. 발해 유민들은 부흥운동을 전개하면서 고려에 원조를 요청할 정도였다. 특히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합과정에서 발해 유민들에게 인적, 물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므로 이 시기 발해 유민과 고려는 기존의 남북국시대(신라와 발해)의 범위가 확장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그런가 하면 사극 ‘대조영’은 여전히 한류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지금도 세계 여러 해양을 누비며 당당히 한국 해군의 위상을 보여주는 군함 ‘대조영함’, 필자도 함께 작업한 바 있는 고왕 대조영 어진도 최근 선보였고, 대조영 기념우표도 이미 발행된 바 있다. 이렇게 친숙한 이름인 ‘대조영’은 발해의 건국자요 발해의 구심점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새삼 전제해야 할 것은 용어 문제다. 먼저 초기 발해는 정식 국호인 진국으로 불러야 하며, 대조영은 그 시호인 고왕(高王)으로 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왕으로 제대로 부르는 것이야말로 한국사로서 발해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사에서 발해는 아직 그 여정을 마치지 않았다.초기 국명은 진국, 대조영은 ‘고왕’으로 불러야발해 역사 관련 기록은 발해와 교류한 국가들이 정리한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중원(중국) 사료에는 고왕이 동모산(東牟山)에서 진국이라는 이름으로 건국하였다고 하여 발해 초기국명이 진국이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학자들은 초기국명을 진국이 아닌 말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나라에서 진국에 사신을 보내 고왕을 발해군왕에 책봉하였다는 것과 이를 계기로 진국이 말갈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라고 불렀다는 기록을 근거로 제시한다. 여
글 김은국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윤관(尹瓘), 여진 정벌과 영토 개척의 꿈
역사인물 윤관(尹瓘), 여진 정벌과 영토 개척의 꿈 《고려사》에 실린 윤관(尹瓘, ?~1111) 열전은 여진 정벌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고려는 숙종과 예종 때 두 차례에 걸쳐 여진 정벌을 시도하였다. 두 차례 모두 윤관이 나서서 여진과 싸웠다. “군대를 통솔하여 적의 성을 부수고 강토를 넓혀서 나라의 치욕을 씻겠습니다.” 숙종과 예종의 측근이었던 윤관은 여진을 정벌하여 강역을 넓히려는 꿈을 꾸었다.여진은 고려 동북쪽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원주지에 살면서 고려에 의탁하는 사람이 많았고 고려로 이주하여 귀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려는 이들에게 가옥과 토지를 내려 생활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숙종 때 완옌부(完顔部)가 여진족 전체를 통합하기 시작하면서 정세가 변하였다. 완옌부의 우야슈(烏雅束)는 고려에 복속한 여진부락을 경략하고 고려에 의탁하려는 여진인을 막았다. 이로써 고려와 여진이 맞서게 된 것이다.1104년(숙종 9년)에 여진 기병이 동북면 정주(定州) 관문 밖까지 와서 진을 쳤다. 숙종은 임간(林幹)을 보냈지만 패하였다. 다시 윤관(尹瓘)을 동북면행영도통(東北面行營都統)으로 임명하지만 윤관도 전공을 세우지 못하였다. 윤관은 전쟁에서 패한 까닭이 기병 위주인 여진군을 보병 중심인 고려군이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하였다.여진에 대항하고 문신귀족 억제 위해 군사기반 강화숙종은 윤관과 함께 대규모 정벌 계획을 세웠다. 전쟁을 통하여 군사적 기반을 강화하고 전시체제를 이용하여 문신귀족을 장악하려 하였다. 숙종은 윤관의 건의에 따라 별무반(別武班)이라는 특수 군단을 창설하였다. 귀족과 양인 농민을 중심으로 기병인 신기군(神騎軍), 보병인 신보군(神步軍)을 조직하였고, 승병으로 항마군(降魔軍)을 삼았으며 그 밖에도 특수병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군사를 훈련하고 군량을 축적하며 여진을 공격할 전략을 수립하였다.별무반을 동원한 전쟁은 숙종을 이은 예종 때에 일어났다. 여기에는 문신귀족 세력을 억제하려는 예종과 윤관의 의도도 숨어 있었다. 1107년(예종 2년) 말에 왕은 윤관을 원수로 삼고 오연총을 부원
글 김아네스 (서강대학교 사학과 강사)
연구위원의 책《고대일본의 대한인식과 교류》고대일본의 주관적 역사인식 실태와 근원 추적
기고 연구위원의 책《고대일본의 대한인식과 교류》고대일본의 주관적 역사인식 실태와 근원 추적 ▲ 연민수 지음│역사공간│2014│630쪽흔히 한국고대사 왜곡을 근대식민사학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나 근본 문제는 일본고대 사료에 있다. 통일신라가 성립한 시점에서 왜 왕권은 군주호로 ‘천황’과 ‘일본’이라는 국호를 만들었다. 동시에 천황 통치의 정당성, 정통성, 유구성을 주장하기 위해 《일본서기》를 편찬하였다. 이 사서는 한반도에 대한 지배사관을 강하게 투영하고 있다. 한반도 여러 나라가 천황의 직할지였다는 내관가(內官家) 사상이 깔려있고, 일본의 조공국, 번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일본의 국가의식이 가장 고조한 시기에 만들어진 역사관은 근대로 계속 이어졌고, 근대식민사학에서 한국고대사를 연구할 때 기본 사료로서 한국 지배의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았다. 이러한 고대일본의 주관적 인식 실태와 근원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 《고대일본의 대한인식과 교류》의 주요 목적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발표한 논문 중에서 19편을 선정하여 정리한 것이다. 필자의 연구생활 30여 년 중 후반기에 해당하는 성과물이다.8세기 천황제 율령국가의 신라극복사관제1부에서는 가야를 비롯한 백제, 고구려, 신라, 발해 그리고 신공황후전설과 관련 있는 일본 지배층의 대한(對韓)인식을 분석하였다. 고대 한반도에 세워진 다섯 나라는 긴장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전쟁과 외교라는 방식으로 대일교류를 전개하였다. 한 왕조로만 이어진 일본은 상대적으로 외교의 선택 폭이 넓었고, 국가별로 대응 방식과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야와 백제, 발해에게는 우호적이고, 고구려는 적대관계에서 우호관계로 바뀌었고, 신라는 변함없는 적시관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신라 적시관이야말로 8세기 천황제 율령국가의 대한인식이 출발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 적시관은 왜 왕권과 친연관계에 있던 가야, 백제가 신라 손에 멸망한 사실에서 비롯한 적대감을 깔고 있다. 여기에 천황은 백제 멸망 후 백제 망명 집단에게 관위를 수여하여 신료로 대접하였고, 백제 왕족과 고구려 왕족에게는 ‘백제왕’, ‘고
글 연민수 (역사연구실장)
독립을 향한 선열의 절규와 의지가 서린 서대문형무소
현장보고 독립을 향한 선열의 절규와 의지가 서린 서대문형무소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에는 높다란 담장에 둘러싸인 붉은색 벽돌 건물이 있다. 지금은 역사관으로 변모한 이곳은 1908년 10월, 일본 건축가 시텐노 가즈마가 설계하여 지은 한국 최초 근대 감옥이다. 개소 당시 ‘경성감옥’이라 불렸고, 1912년 마포구 공덕동에 다른 감옥이 지어지면서 ‘서대문감옥’으로 불리다가 1923년 5월 ‘서대문형무소’가 되었다.‘정미 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사법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뒤 세워진 서대문형무소는 국권을 빼앗긴 우리 민족의 아픔과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 현장이다. 준공 당시 1,600㎡ 규모에 불과했던 면적이 1919년을 지나며 증개축을 계속하여 1923년 51,200㎡ 규모로 30배 이상 넓어졌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의 수난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개소 당시 수감 인원이 500명에 불과했던 이곳은 일본의 압제가 심해지면서 수감 인원이 3,000명을 넘어섰고, 1937년에는 관리 직원만 343명에 이르렀다. 1909년 매국노 이완용 처단에 나섰던 우국지사 이재명과 31만세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독립운동가 유관순, 일본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한 애국지사 강우규 등이 이 곳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과 고문사로 순국했다.지금도 전시관 지하에는 온갖 잔인한 방법을 동원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서대문형무소의 수감실과 고문실, 고문도구와 고문방법 등이 당시 모습으로 재현, 전시되어 당시의 참담함과 애국지사들이 느꼈을 고통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사형장 앞에서 강우규 지사가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짤막한 시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서대문형무소는 내 몸이 선 곳에 나라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지, 또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지를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서대문형무소는 해방 후 서울형무소와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98
 
신기한 고인돌 옛 사람들의 능력에 감탄사가 절로
현장보고 신기한 고인돌 옛 사람들의 능력에 감탄사가 절로 베트남에서 온 흐엉입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관광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KBS 1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 2'에서 부녀회장 며느리 역할로 연기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이번에 '외국인을 위한 역사아카데미' 4기에 입학해 뜻 깊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3월 4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한국의 고대사와 근대사에 관한 수업을 들었으며, 얼마 전에는 강화도로 현장 답사를 다녀왔습니다.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찾은 강화도에서 우리는 강화역사박물관, 고려궁지, 갑곶돈대 등 다양한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고인돌공원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책에서만 본 고인돌을 가까이서 직접 보니 무척 신기했습니다. 더구나 위에 쌓은 돌은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돌이었다고 하니, 옛날 사람들의 능력이 새삼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앞으로 한국에 있는 다른 고인돌 지역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강화도 유적 여행을 추천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벌써 다음 답사가 기다려집니다.
글. 흐엉 (경기도 안양시외국인을 위한 역사아카데미 4기)
[재단 이모저모] 동북아역사재단뉴스 2015년 5월호
연구소 소식 [재단 이모저모] 동북아역사재단뉴스 2015년 5월호 김중만 독도사진전 베이징 전시회 기념행사가 4월 10일 베이징 한국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번 독도전시회는 지난해 7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전시에 이어 해외에서 열리는 첫 전시회다. 전시작품은 모두 55점으로 사진작가 김중만이 지난 2012년과 2013년 2년간 혼신을 다해 독도 현지에서 촬영한 것이다. 주중한국문화원과 공동으로 지난 3월 26일부터 개최 중인 이번 베이징 전시회는 한국문화원 개원 8주년, 한국관광공사 베이징 지사 개소 20주년을 맞아 이날 기념행사를 연 것이다. 행사에는 재단 김학준 이사장을 비롯해 김장수 주중한국대사, 김진곤 한국문화원 원장 등 한국 측 인사와 중국국제우호문화제조직위원회 최용안 비서장 등 많은 중국 현지인들이 참석해 전시회를 둘러봤다. 김중만 작가는 독도를 ‘한국에서 가장 외로운 섬’이라고 하면서 춥고 차가운 동해 바다 한가운데서 홀로 서 있는 독도의 진한 외로움을 사진 속에 담았다. 실제 이번 중국 전시회 주제는 ‘한국에서 가장 외로운 섬, 독도’다. 이에 사진전을 둘러본 최용안 조직위원장은 “한국 고유 영토 독도는 매우 아름다우며, 우리들이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독도는 절대 외롭지 않다”는 소감을 말해 첨석자들에게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한편 김학준 이사장은 “독도사진전은 독도가 분쟁지역이 아닌 한민족의 문화 공간이라는 사실을 중국 등 국제사회에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독도에 서린 역사적 아픔과 한국의 영토주권에 대한 열망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번 전시를 중국인들이 둘러보며 독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