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구위원의 책《고대일본의 대한인식과 교류》고대일본의 주관적 역사인식 실태와 근원 추적
▲ 연민수 지음│역사공간│2014│630쪽흔히 한국고대사 왜곡을 근대식민사학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나 근본 문제는 일본고대 사료에 있다. 통일신라가 성립한 시점에서 왜 왕권은 군주호로 ‘천황’과 ‘일본’이라는 국호를 만들었다. 동시에 천황 통치의 정당성, 정통성, 유구성을 주장하기 위해 《일본서기》를 편찬하였다. 이 사서는 한반도에 대한 지배사관을 강하게 투영하고 있다. 한반도 여러 나라가 천황의 직할지였다는 내관가(內官家) 사상이 깔려있고, 일본의 조공국, 번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일본의 국가의식이 가장 고조한 시기에 만들어진 역사관은 근대로 계속 이어졌고, 근대식민사학에서 한국고대사를 연구할 때 기본 사료로서 한국 지배의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았다. 이러한 고대일본의 주관적 인식 실태와 근원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 《고대일본의 대한인식과 교류》의 주요 목적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발표한 논문 중에서 19편을 선정하여 정리한 것이다. 필자의 연구생활 30여 년 중 후반기에 해당하는 성과물이다.8세기 천황제 율령국가의 신라극복사관제1부에서는 가야를 비롯한 백제, 고구려, 신라, 발해 그리고 신공황후전설과 관련 있는 일본 지배층의 대한(對韓)인식을 분석하였다. 고대 한반도에 세워진 다섯 나라는 긴장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전쟁과 외교라는 방식으로 대일교류를 전개하였다. 한 왕조로만 이어진 일본은 상대적으로 외교의 선택 폭이 넓었고, 국가별로 대응 방식과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야와 백제, 발해에게는 우호적이고, 고구려는 적대관계에서 우호관계로 바뀌었고, 신라는 변함없는 적시관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신라 적시관이야말로 8세기 천황제 율령국가의 대한인식이 출발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 적시관은 왜 왕권과 친연관계에 있던 가야, 백제가 신라 손에 멸망한 사실에서 비롯한 적대감을 깔고 있다. 여기에 천황은 백제 멸망 후 백제 망명 집단에게 관위를 수여하여 신료로 대접하였고, 백제 왕족과 고구려 왕족에게는 ‘백제왕’, ‘고
글 연민수 (역사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