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통일로에는 높다란 담장에 둘러싸인 붉은색 벽돌 건물이 있다. 지금은 역사관으로 변모한 이곳은 1908년 10월, 일본 건축가 시텐노 가즈마가 설계하여 지은 한국 최초 근대 감옥이다. 개소 당시 '경성감옥'이라 불렸고, 1912년 마포구 공덕동에 다른 감옥이 지어지면서 '서대문감옥'으로 불리다가 1923년 5월 '서대문형무소'가 되었다.
'정미 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사법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뒤 세워진 서대문형무소는 국권을 빼앗긴 우리 민족의 아픔과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 현장이다. 준공 당시 1,600㎡ 규모에 불과했던 면적이 1919년을 지나며 증개축을 계속하여 1923년 51,200㎡ 규모로 30배 이상 넓어졌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의 수난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개소 당시 수감 인원이 500명에 불과했던 이곳은 일본의 압제가 심해지면서 수감 인원이 3,000명을 넘어섰고, 1937년에는 관리 직원만 343명에 이르렀다. 1909년 매국노 이완용 처단에 나섰던 우국지사 이재명과 31만세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독립운동가 유관순, 일본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한 애국지사 강우규 등이 이 곳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과 고문사로 순국했다.
지금도 전시관 지하에는 온갖 잔인한 방법을 동원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서대문형무소의 수감실과 고문실, 고문도구와 고문방법 등이 당시 모습으로 재현, 전시되어 당시의 참담함과 애국지사들이 느꼈을 고통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사형장 앞에서 강우규 지사가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짤막한 시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
(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서대문형무소는 내 몸이 선 곳에 나라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지, 또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지를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서대문형무소는 해방 후 서울형무소와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98년 11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역사관 내에는 옥사 7개동과 사형장, 보안과 청사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제10, 11, 12옥사와 사형장은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료 참고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http://www.sscmc.or.kr/newhistory/introduce/history_2010.asp
독립기념관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 - 서대문형무소
http://sajeok.i815.or.kr/ebook/ebookh01/book.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