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고대사 왜곡을 근대식민사학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나 근본 문제는 일본고대 사료에 있다. 통일신라가 성립한 시점에서 왜 왕권은 군주호로 '천황'과 '일본'이라는 국호를 만들었다. 동시에 천황 통치의 정당성, 정통성, 유구성을 주장하기 위해 《일본서기》를 편찬하였다. 이 사서는 한반도에 대한 지배사관을 강하게 투영하고 있다. 한반도 여러 나라가 천황의 직할지였다는 내관가(內官家) 사상이 깔려있고, 일본의 조공국, 번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국가의식이 가장 고조한 시기에 만들어진 역사관은 근대로 계속 이어졌고, 근대식민사학에서 한국고대사를 연구할 때 기본 사료로서 한국 지배의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았다. 이러한 고대일본의 주관적 인식 실태와 근원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 《고대일본의 대한인식과 교류》의 주요 목적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발표한 논문 중에서 19편을 선정하여 정리한 것이다. 필자의 연구생활 30여 년 중 후반기에 해당하는 성과물이다.
8세기 천황제 율령국가의 신라극복사관
제1부에서는 가야를 비롯한 백제, 고구려, 신라, 발해 그리고 신공황후전설과 관련 있는 일본 지배층의 대한(對韓)인식을 분석하였다. 고대 한반도에 세워진 다섯 나라는 긴장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전쟁과 외교라는 방식으로 대일교류를 전개하였다. 한 왕조로만 이어진 일본은 상대적으로 외교의 선택 폭이 넓었고, 국가별로 대응 방식과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야와 백제, 발해에게는 우호적이고, 고구려는 적대관계에서 우호관계로 바뀌었고, 신라는 변함없는 적시관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신라 적시관이야말로 8세기 천황제 율령국가의 대한인식이 출발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 적시관은 왜 왕권과 친연관계에 있던 가야, 백제가 신라 손에 멸망한 사실에서 비롯한 적대감을 깔고 있다. 여기에 천황은 백제 멸망 후 백제 망명 집단에게 관위를 수여하여 신료로 대접하였고, 백제 왕족과 고구려 왕족에게는 '백제왕', '고려왕'이라는 성을 하사하여 자신의 지배질서에 편입시켰다. 이 같은 사실이 일본 천황의 조공국관, 번국사관을 배양시켰다.
새로 재편된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서 일본의 당면과제는 경쟁국 신라를 극복하는 일이었다. 신라극복사관은 신라를 비롯한 한반도 제국에 대한 우월의식이었다. 이것은 율령법으로 법제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상하관계의 역사적 연원 주장을 《일본서기》를 통해 표출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속일본기》 이후에 쓰인 정사에도 그대로 반영, 계승되었다.
한편 일본이 우월하다는 정치사관은 한반도에서 전래된 선진문물을 조공품으로 간주하는 인식을 낳았다. 이것은 문화적 열등감을 정치적 우월의식으로 포장한 것이다. 주변 제국과 조공·책봉관계를 맺어 온 중국과 같은 중화의식을 실현하기 위해 문화에서도 우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기에 이와 같은 이중적인 대한 인식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신공황후전설의 시대별 분석에서는 일본이 대외 위기의식 속에서 신공황후의 고대 한국지배를 상기시키며 위기를 돌파하려는 경향성을 추출하였다. 근대에는 한반도 침략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신공황후를 화폐도안으로 선정하고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고 신사를 만들어 일본국 위상을 해외로 떨쳤던 인물로 각인시켰던 것이다.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중단하지 않았던 한일 교류
제2부와 3부에서는 양 지역 교류사를 다뤘다. 웅진시대 백제의 대왜동맹의 성격, 왜계 백제관료의 실체, 왜로 이주한 백제인의 활동, 정창원이 소장하고 있는 백제 유물의 전래 문제를 다뤘다. 정창원의 백제 문물은 일본 지배층에게 백제계 문물이 얼마나 귀중하게 여겨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라관련 논문에서는 연오랑 세오녀 전승에서 엿보이는 신라 지방 세력의 일본열도 이주배경을 추적하였고, 김춘추의 대왜 외교를 분석하였다. 고대일본의 대재부(大宰府)의 기능에 관해서 이 기구의 성립과 존재 목적은 신라 문제이며 신라 대책이야말로 당시 일본 지배층에게 최고 현안이었음을 밝혔다.
또 북규슈 호족과 한반도 간 교류 문제, 쟁점이 되고 있는 영산강 유역 전방후원분의 성격을 분석하였는데 이 시기 양 지역 교류가 다원성을 띄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았다. 이어 광개토왕 비문에 나타난 고구려의 남방세계관, 《남제서(南齊書)》 〈가라국전(加羅國傳)〉에 보이는 가라왕 하지를 대가야 왕으로 보는 기존 학설을 재검토하였다. 보론에서는 일본의 자유주의사관을 표방한 우익교과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역사관의 특징과 일본의 국정교과서를 비롯한 역사교과서의 고대사 서술에 보이는 민족 문제, 천황 관련 서술의 특징과 성격을 분석하였다. 천황이라는 인격이야말로 일본 우익사관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고 있다.
고대한일관계사 연구는 일본 사료와 벌이는 싸움이다. 일본 율령국가의 천황제 이념으로 도색되어 있는 독소를 제거하고 객관적 실태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 갈등 속에서도 한일 양 지역은 교류를 중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대를 필요로 하는 현실 속에서 더욱 활발히 교류했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삼국 병존기는 전쟁과 외교로 문물을 제공하는 시기였지만, 통일신라와 발해 존속기에는 문물 수출입과 같은 경제행위가 주였다. 교류는 생존의 법칙이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에도 적용되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