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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과거를 직시하며 현재 세계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 글 성재호 (성균관대학교 교수·재단 자문위원)

요즘 걷기 열풍이 뜨겁다. 걷기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이며 손쉬운 방법이다. 그저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내딛으면 저절로 앞으로 가게 되어 있다. 누구라도 한 방향으로 꾸준히 걷노라면 다시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인데, 인간 세상 일들도 세월을 거치며 돌고 돈다.

누구나 살다보면 앞서 산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겪는다. 사람이 모여 만든 사회도 마찬가지다. 과거에서 배우고,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리고 한 방향으로 계속 걷다 보면,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 저 멀리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도 나온다. 이란이나 러시아도 거친다. 그 나라 사정을 모른 채 내 생각만 하면서 무턱대고 걷기만 할 수 있을까. 그 나라를 알고 그들 사이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유의해서 보아야만, 무탈하게 우리나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객관적 역사를 놓고 작금 일본은 우리와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독도 문제가 그렇고, 전시강제'위안부' 문제가 그렇다. 역사 속 사실은 오직 하나일 텐데, 그 진실을 놓고 어찌 이리도 다르게 보고 다른 생각을 드러내며 갈등하는 것인지. 그런 배경에서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가 새삼 떠오른 것이다.

세계의 양심 있는 학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일본 정부에게 책임 있는 인식과 처신을 요구하고 있다. 전시강제'위안부' 문제가 한국 여성들의 문제여서가 아니라, 객관적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승에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들의 증언이 저리 절절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일본은 직전 정부가 해온 과거사 인식조차 부정하고, 일본 정부와는 무관한 일이라 강변하고 있다.

정부가 하지 않은 일이라 우기고 그렇게 믿는다고 해서 악행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인가.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반인간적 악행을 없던 상태로 되돌리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직시하고, 용기 있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또 다른 잘못이 되풀이되는 역사 퇴행을 막고 미래로 가자는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절실한 '역사에서 배우기'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는 명제는 단지 외국에게만 적용되는 요권두언청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배워야 한다. 왜 일본의 침략에 맥없이 무너져 국토를 침탈당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탄압과 고초를 당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상대를 미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평화로운 삶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이는 타인에게 역사를 되돌아 볼 것을 강조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스스로 역사를 직시하고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또 한 가지 명제는 다른 나라를 잘 알고, 국제사회가 어찌 돌아가는지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다. 세계화의 이면에 새로운 민족주의가 웅크리고 있다. 각국 경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거쳐 또 다른 나라로 옮겨 다닌다. 한 나라 기업이 다른 나라에 사업장을 짓고 그 나라 사람들을 고용하여 만든 물건을 제3국에 내다팔고 있다.

이런 시대에 세계를 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새로운 위협을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구가 빈번하게 출현하여 백성들이 고초를 겪자 대마도를 정벌하였고, 왜구 출몰을 방지한다는 약속만으로 군대를 되돌려 돌아온 민족이 우리다. 소극적으로 보면 우리를 괴롭히지만 않으면 다른 나라를 어찌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세계가 눈앞에 명백한 외부 도전이 없다 해서 우리 문제에만 집착할 수 있는 시대인가. 외국 기업의 착용기기(wearable device)가 크게 성공하면 국내 기업 제품 판매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우리 국민의 주머니를 가볍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는데도 말이다.

국내 일에 매몰되어 국제 정세를 놓치지 말아야

그렇기에 우리는 이웃 나라나 멀리 있는 나라를 불문하고 그들을 잘 알아야 한다. 나아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 뜻대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이다.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가벼이 하라는 것이 아니라, 국내 일에 매몰되어 국제정세를 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국제정치문제, 통상문제, 인권문제는 예외 없이 국제법과 관련이 있음도 알아야 한다. 과거와 달리 총칼로 자국의 이익을 강박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법의 해석과 적용을 통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 현재 국제사회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미국이나 중국 등 강대국은 국제법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 국가와 국민의 중심 이익을 지키기 위한 국제법에는 소홀하다. 우리나라는 한 해 100개에 달하는 국제조약을 채택하고 있고 그 조약 범위 내에서 국내법을 적용해야 하지만 법조인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국제법을 모르고도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하고, 국제사회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별개가 아니라, 우리나라 우리 국민이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바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은 훌륭한 소임을 받은 것이며, 그 일을 묵묵히 잘 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칭찬한다. 더불어 그 소임은 우리 모두가 동참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임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