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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특집 Ⅱ - '발해와 동아시아'국제학술회의] 발해사연구의 국제적 인식 공감대 형성
  • 김은국 | 연구위원(제2연구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동아시아속의 발해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국제학술회의를 2008년 7월 2일부터 7월 3일까지 양일간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하였다. 세부 주제는 "발해와 동아시아"로 첫날 주제는'각국의 발해 유적 발굴의 전개와 성격'으로 남북한과 러시아, 중국, 몽골, 일본에서의 발해 유적 발굴에 대한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송기호교수(서울대)는 '한국과 연해주·발해'발표를 통해, 발해사 연구에서 차지하는 연해주의 의미를 양비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송의정 고고부장(국립중앙박물관)은 향후 연해주 발굴의 마스터 플랜에 대하여 토론 무게를 놓았고 발표자는 발굴시기의 다양성과 보완적 발굴팀 운영을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한규철 교수(경성대)는 '북한의 발해유적과 성격'이란 발표를 통해 북한의 발해사 연구 특징을 고구려 계승성 강조와 신라중심적 연구와의 차별성에서 찾았다. 이에 대해 이병건교수(동원대)는 북한 학계의 고구려 계승성 몰입 추세와 중국의 발해유적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대한 대응에 대해 질의한 바, 발표자는 남북간의 다양한 학술교류를 통한 발해사 연구의 연계를 강조하였다.

다음은 각국의 발해사 연구 성과 발표였다. 먼저 A. 이블리에프(러시아 극동 고고역사민속학연구소)는 '최근 연구성과로 본 연해주 발해국의 경계'를 통해, 러시아 내 발해사 연구를 회고한 뒤, 9세기 발해의 전성기 때에 동쪽으로는 동해에 인접한 연해주의 남부, 한반도 북부 등을 포괄하며 북쪽으로는 우수리 강의 북쪽 상류에 이른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의 김동우 학예사는 발해의 국경 결정 근거와 말갈의 발해 영역 편입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였고 발표자는 토기, 기와, 그리고 건물지, 그리고 다양한 고고학적 견해의 출현을 기대하였다. 오후 발표는 바다와 대륙으로 확장하는 발해역사 전개를 살필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발해사연구의 국제적인 위상

먼저 동북아역사재단 윤재운 연구위원은 일본에서의 발해 유적 조사와 연구를 일본도와 연결한 것으로, 일본의 발해관련 유적·유물의 지속적인 관심을 강조하였다. 토론자인 이용현 학예사(국립부여박물관)는 발해가 일본으로 갈 때 과연 크라스키노 성을 이용해서 나갔는가에 주목하여 질의를 하였고, 발표자는 두만강 하류에서 출발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대부분 크라스키노 성을 이용했다고 보았다.

또 중국과 몽골 학자의 발표는 관심을 끌기 충분한 주제였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박물관 전인학 고고부장의'서고성 발굴과 궁전 건축에 관하여'는 발해 중경의 치소인 서고성 발굴에 대한 발표로 발표자 본인이 서고성 발굴과 보고서 집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에 김진광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는 서고성과 상경성을 비교, 온돌구조의 특징 등을 질의하였고, 발표자는 상경성이 서고성을 본받아서 건축된 것과, 팔련성과 서고성은 대체로 같은 특징을 보인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발표한 A. Ochir 몽골국제유목문명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몽골과 동아시아의 교류(10~11세기)'는 몽골내 거란 계통 유적 중에 발해 유민과 관계가 있는 친톨고이 도성의 최근 발굴성과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국내에 처음 발표되는 것으로 천년 전 이미 몽골 내에서 발해유민과 교류 한 것에 주목하였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윤형원 학예연구관은 토론을 통해 해당 유적의 온돌 시설, 친톨고이 유적 출토 유물과 문헌과의 연계 등을 질문하였다. 이에 발표자는 온돌은 동아시아적 민족, 특히 발해와 연관되어 있음을 발해계통의 축성법, 토기편 등 유물의 발해와의 비교, 중국과 연해주내 발해도성과의 유사성 등을 통해 강조하였다.

발해사 이해와 연구시각의 교류

두 번째 날은 발해 고고학의 여러 추이를 각 연구자 별로 발표하는 자리였다. 먼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홍형우 학예연구관의 '발해시기 아무르 문화와 연해주'는 토기를 중심으로 아무르 강 동서 유역의 '트로이츠코예'와 '나이펠트' 두 문화로 구분하는 러시아 학계의 시각을 긍정적으로 검증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 박물관의 양시은 학예연구사는 토기그룹의 구분 방법, 토기 이외의 유물의 차이점, 그리고 이들 집단과 발해와의 관련성 등에 대해 질의하였다. 이에 발표자는 두 그룹의 차이를 시기적인 차이 보다는 계통적으로 보았다.

V. 볼딘 박사(러시아 극동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는 '러시아 크라스키노 성지에 대한 고고학 조사성과와 과제'를 통해 크라스키노 성의 발굴 성과를 일괄 정리하였다. 이에 대해 임석규(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는 토론에서 성의 축조시기, 유구들의 층위문제, 조사 구역내 건물지 성격 등을 질문하였다. 이에 발표자는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8세기 경으로 보고 금나라 시기의 토기를 비롯하여 발해 고분도 발견되었음을 밝혔다.

회의 후반부는 발해 고고학 해석의 각국에서의 다양한 모습을 다루었다. 먼저 일본의 고지마 교수는'환동해 교류사에서 발해와 일본 교류의 평가'에서 7세기~12세기의 발일 관계를 3단계로 나누어 양국 교류에서 동해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박진숙위원(국가기록원)의 토론이 이어졌으며, 강인욱 교수(부경대)는'연해주의 발해 기층문화'의 발표에서 말갈 자체의 내적인 사회발전과 말갈의 발해 주민 기반 이해에 상관관계를 설정하였다. 이에 대해 박경철교수(강남대)는 한국학계가 말갈의 계통을 부여 보다는 고구려에 더욱 규정짓곤 하는데 대한 질의를 하였고, 발표자는 부여 고구려와 같은 '국가'와 연계야 말로 생계경제상에서의 평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표현하였다. 동북아역사재단 임상선 연구위원은'발해 성곽의 고구려적 요소'발표를 통해 크라스키노 성에서 파악된 치, 옹성, 각루 등이 고구려와 발해의 계승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고 이에 양정석 교수(수원대)는 토론을 통해 고구려 외에도 발해다운 성격을 추출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은국 연구위원은 슬라이드를 통한 현재 염주성(크라스키노 성) 발굴의 일단을 소개하였고, 장정룡 교수(강릉대)의 토론과 한규철 교수의 총평으로 의미있는 학술회의를 마쳤다. 이번 학술회의는 국내외 발해사 연구자들이 대거 한자리에 모여 발해사 연구의 현단계와 방향을 가늠해 본 자리로, 각국 중심의 발해사 연구를 한자리에서 재조명할 수 있었으며 향후 발해사 연구의 국제성을 제고하기에 충분한 자리였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