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_ 미지의 세계
7월 1일부터 9일까지 8박 9일 동안, 러시아 극동지역 및 중국 동북 지역을 둘러보는 역사 체험 캠프가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KYC(한국청년연합회) 및 동북아평화 연대의 주관으로 열렸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일본인으로, 한·일 교류 관련 활동과 몇몇 NGO활동, 미디어 관련 활동을 한 바 있으며 한국을 주제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이번 행사 참가의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러시아는 먼 나라로 인식되고 있으며, 나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 참가자도 이번에 러시아 탐방에 매력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져 있는 대로, 블라디보스톡은 군항이 있어 그 때문에 번영해 온 도시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푸틴 정권 탄생 후 가속되는 러시아의 자본주의화와 호황의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내를 달리는 일본차와 여기저기서 높다랗게 짓고 있는 빌딩의 행렬은 그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우스리스크_ 끝없이 펼쳐진 평원
우리는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해 다음 목적지인 우스리스크로 향했다. 우스리스크는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물류의 중심지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대평원은 뱃길여행과 긴 버스 이동으로 피로에 지친 참가자 모두에게 일시적인 평안을 주었다.
극동 러시아·연해주에는 스스로를 '고려인' 으로 칭하는 약 4만명의 코리안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우스리스크에는 약 1만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소련과 일본의 긴장이 고조된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던 고려인들은 소련의 붕괴에 이어 중앙아시아의 국가가 차례차례로 독립하면서, 경제적 이유나 박해로 특히 90년대 이후에 한 때의 거주지였던 연해주로 돌아온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가 만난 고려인 대학생들은 강제 이주를 경험한 세대의 손자뻘에 해당된다.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그 후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현재 우스리스크에서 사는 고려인 대학생과 대화하는 가운데 그녀에 대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고려인 부모님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권유받을 때까지, 한국어(조선어)를 하지 못했고, 한민족으로서의 자의식도 낮았던 것 같다. 러시아 여권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복잡한 정체성은 한국어를 배우는 행위에 의해서 변화하고 있지만, 역시 그녀는 '러시아인'으로서 우스리스크에서 살고 있다. 또,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강제 이주의 역사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지만, 당시의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나 우스리스크에서의 독립 운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국적도 민족도 다른 우리는 우수리스크 고려인 정착마을인 우정마을(友情村)을 같이 탐방하며 한국어를 공통 언어로 사용하였다.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며 친해진 우리는 식민지 시대의 독립 운동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_ 북한을 눈앞에
러시아를 떠나 버스로 국경을 넘어서 중국으로 들어갔다.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출입국 관리가 엄격해져, 입국시 비자가 필요한 한국인 참가자는 2시간 가까이 움직일 수 없었다. 한편, 관광 비자의 취득이 필요 없는 일본인인 우리는 문제없이 국경을 통과해 약2시간동안 국경의 저 쪽편과 이 쪽편으로 어쩔 수 없이 서 있게 되었다.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국가라는 벽, 국적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연변 주변은 독립 운동의 주무대여서인지, 일본에 대한 저항감은 지금도 매우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인상이었다. 또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고구려 역사 문제나 백두산을 둘러싼 국가 간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어쨌든 역사에 유린되어 곤란한 시대를 살아 온 조선족의 아픔을 이번 캠프를 통해서 재인식할 수 있었다. 식민지 시대에 개발된 이후 지금도 남아있는 철도의 선로를 보았을 때, 나의 가슴은 찡하게 아려왔다.
방문지를 모두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에 들어가고 나서는 매일 긴 시간 버스로 이동하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중국·러시아·북한 3개국이 접하는 방천(放川) 국경 지대를 방문하거나 두만강·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눈앞에서 본 경험은 나뿐만 아니라 참가자 모두의 세계관을 크게 흔드는 귀중한 것이었다. 특히, 한·중·러에서부터 참가한 '한민족'에게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앞에 두고 특별한 감개가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맺으며
캠프의 공식 프로그램 중에서 행해진 토론회나 긴 버스 이동 시간 중에, 현재 동북아가 안고 있는 문제나 그 해결책을 서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참가자로부터 제기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과 함께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그 관점에서 보면, 이번 캠프에 포함된 필드워크의 장소나 관련된 강의, 전체의 진행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민족' 중심의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한민족이 당한 피해의 역사로부터 눈을 뗄 생각은 없으며, 나름대로 그 아픔에 다가가는 노력을 해 왔다. 그러므로 역사를 말할 때, 어떤 경우에도 감정적으로 되거나 전체주의에 치우쳐 온 과거의 본연의 자세를 변화시킬 필요성을 오히려 느낀다. 타자와 같은 입장에 설 수 없어도, 타자의 입장을 상상해, 배려하는 것, 그 자세는 이번 캠프의 목적이기도 한, 동북아의 시민으로서의 시점을 가지면서 행동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그 자세는 일본인인 나에게도 요구된다는 것을 이번 캠프에서 강하게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조선족과 고려인밖에 참가하지 못 했지만, 다음에는 소수민족이 아닌 중국인과 러시아인도 모집해, 이번 반성을 근거로 향후도 캠프가 계속 이어가게 될 것을 기대한다. 여기에서는 부정적인 지적을 많이 하고 말았지만, 이번 캠프에 참가한 것은 틀림없이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갈등을, 경계를 넘어 동북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각국의 청년이 같이 만들어 가려고 하는 이번 시도는, 언젠가 반드시 결실을 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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