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은 올해 8월 4일부터 8월 30일까지 러시아 극동 역사 고고 민속학연구소(소장 빅토르 라린)와 공동으로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성터 북서지구에 대해 발굴을 마쳤다. 재단 발굴단원은 2연구실 김은국 연구위원, 강인욱 부경대 교수, 러시아 극동 역사 고고 민속학연구소의 김재윤 박사 등이 중심이 되어 41구역 발굴을, 또 러시아 측은 V.I. 볼딘 외 겔만, 레쉔코, 아스타쉔코바 등 학자가 40구역을 확장 발굴하였다. 발굴기간 동안 러시아 학생들이 투입되어 발굴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또 송기호 서울대 박물관장의 현장 방문에 의한 자문회의도 마련하였다. 40구역은 지난 2005년 온돌 유구가 발굴된 34 구역의 남쪽에 해당한다. 또 41구역은 2006년에 주춧돌 유구가 드러난 33-a 사이트에서 동쪽으로 확장한 곳이다.
크라스키노 성은 발해시대 동경용원부 관할의 염주(鹽州) 치소로 동해(東海)를 매개로 신라와 중원, 서역, 일본 등과 다양한 교류를 하던 곳이다. 발해 멸망이후 지역적 비중이 줄어들면서 역사의 지층 속에 묻혀있었지만 러시아의 동방정책으로 19세기에 재발견되었고, 1960년에 본격적으로 조사한지 어느덧 30여년이 흘렀다.
성의 둘레는 1.2km이며, 동, 서, 남쪽으로 출입문이 있으며 '치'등 성곽 부대시설은 물론 복합생활 공간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었다. 성은 남쪽으로 바다로 흘러가는 추카노프카 강(鹽州河, 옌추하)를 해자로 삼으면서, 당시 발달한 수로 교통을 최대한 활용하였을 것이다.
현재 연해주의 광활한 범위 내에 상당수의 발해 유적지가 분포되어 있는데, 바라바쉬 등 주변유적에서도 이와 비슷한 입지 환경의 유적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크라스키노 염주성의 구조와 출토유물은 연해주 여타 발해 유적지와 유물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염주성의 발굴과 조사 정리야말로 발해사 연구의 문헌과 고고 자료의 조화, 그리고 발해사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 독보적인 역할을 다하는 곳이다.
이번 발굴은 '06년 재단 출범 이후 2년째를 맞는 것이며, '04~'06년 고구려연구재단의 발굴을 포함하면 5년째를 맞는 발굴이기도 하다. 크라스키노 성의 발굴 추진은 1992년 당시 대륙연구소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1990년 한국과 러시아 양국 간의 수교 이후 전개한 최초의 한·러 공동발굴이었다. 당시 첫 발굴이 우수리스크 지구 구체적으로는 코르사코프카 사원지와 크라스키노 성지 남쪽의 고분이었다. 따라서 재단에서 추진하는 크라스키노 발해성터 발굴사업은 바로 한국의 연해주 발해유적 발굴의 계통을 잇고 있는 것이다.
발해 유적지와 유물의 지표
올해 발굴 역시 성의 북서지구의 심화 확대 발굴이었다. 이곳은 염주성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 지금도 다양한 생활 영역임을 유물과 유적으로 보여준다. 주춧돌을 통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건축물, 기와와 철기 제작 공간 등이 화려한 유물의 출토와 함께 집중적인 발굴할 수 있었던 곳이다. 이 북서지구의 최근 발굴 성과로는 '04년 발굴된 기와로 정성스레 쌓은 정방형 유적, 그리고 '05년에는 발해 최대 도성인 상경성의 유적에 못지않은 대규모 온돌 유구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이성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유물과 유적으로 말해주는 곳이다. 특히 '06~'07년의 발굴결과를 통해 이 성의 축조연대가 고구려 시기까지 올라가고 있고, 성내 거주 흔적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거주 문화층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이번 발굴에서는 이전의 발굴을 계승하면서도 방법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고 평할 수 있다. 발굴 시기가 8월 한 달로 제한된 관계로 집중적인 발굴이 필요하였다. 우선 작년부터 결성한 재단 발굴단의 역량을 토대로 41구역을 전담 발굴하였 다. 그 결과 이미 확인된 4개 층의 문화층을 토대로 각 층의 수혈 주거를 발굴하였고 토기, 항아리, 화살촉, 철제 유물 등을 수습하였다. 특히 재단 발굴단 귀국 후에 러시아 측이 계속 발굴을 하여 주거지 아래에 또 다른 주거지를 발굴하였고, 특히 장방형으로 'ㄱ'형 구들을 놓은 온돌 시설과 높이 70cm가량의 커다란 옹기의 출토는 이곳이 다양한 생활공간이었음을 알려주었다.
또 러시아 측이 지속적으로 발굴한 40구역은 '07년도 34구역과 같이 제5문화층이 드러났고, 발굴 후속 작업을 통해 대형 초석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큰 초석들이 돌담을 경계로 놓여있다고 보이며 당시 행정주요 건물지일 것으로 추정하여 앞으로 확대발굴이 기대된다. 주요 유물로는 오랜만에 보는 완형 막새기와와 대형 壺, 철제 및 청동 유물, 토기편들이 수습되었다. 이를 통해 염주성 주거지는 일시적인 거주가 아니라, 시대를 달리하며 중첩되어 설치되었고 기존의 주거 시설을 활용하여 재구축하였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크라스키노 성 발굴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전환기에 있다고 본다. 재단의 이름으로 이곳을 발굴한 것은 2년째가 된다. 그러나 그것을 떠받치는 뿌리는 고스란히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간의 발굴 여정을 돌아보는 시간과 향후 전개 방향에 보다 큰 생각할 때이기도 하다. 재단으로서는 작년 12월 연해주에서 발해 관련 발굴을 추진하는 기관과 전문가를 초청하여 워크숍을 개최한바 있다. 그 논의 결과 중의 하나로 올해 7월 서울에서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학자를 초청하여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또 지난 10월 첫날에는 재단 회의실에서 크라스키노 성 발굴결과 보고회를 가졌다.
크라스키노는 여전히 주변 발해 유적과 유물의 지표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매년 성과물로 출간하는 발굴보고서를 토대로 입체적인 유적 복원을 추진하며 이에 상응하는 과학적 유물 측정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갈 것이다. 또 북한, 중국, 일본, 나아가 몽골 등 주변국들과의 유적발굴과 비교를 통해 발해 역사와 유적의 공유인식 확대에 노력하고자 한다. 향후 발굴은 이에 염두에 두면서 지금까지의 발굴 성과를 발해사 정립 연구에 활용하여 가는 작업을 겸할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극동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 소장 발해유물에 대한 국내 전시 추진이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