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에 한, 중, 일 3국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근현대사 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가 출간되었다. 2011년에는 '한·중·일공동역사교재편찬위원회'에서 새로운 역사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2005년에 이어 편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성보 교수(연세대 사학과)를 만나 후속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_ 편집자 주
2005년도에 《미래를 여는 역사》가 출간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이 시점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의 성과와 한계를 평한다면? 실제 역사 문제 해결에 어떤 구체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보는가?
《미래를 여는 역사》가 출간되었을 때 한·중·일 3국에서 엄청난 반향이 있었고, 지금까지 2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올해 말에는 미국의 하와이 대학이 중심이 되어 영어판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성과는 한·중·일 3국의 학자와 시민이 하나의 역사교재를 편찬한 데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를 표방하고 있는 이 책은 개별 국가의 역사와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자 한계다. 3국의 고유한 역사를 전제로 3국의 역사를 비교하고, 3국 관계를 밝히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의 '국가사'를 넘어서는 '지역사'로서 이 책을 바라볼 때는 한계가 있다. 또 다른 한계는 동아시아를 구성하는 여러 나라들 중 한·중·일 3국만 참여하고 북한, 타이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가 모두 빠졌다는 점이다.
올해 후속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추진하게 된 계기는? 더 진전된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부담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이번에는 좀 더 솔직하게 한·중·일 3국의 연구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그 수준에 비춰볼 때 공동연구진이 어떤 방향으로 연구를 했는지에 대해 평가받으려 한다. 그러다보니 글의 내용이 어려워질 것 같다. 일반 독자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힘든 문제는 학술성을 높이되 대중성을 고려하여 쉽게 풀어 쓰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동안 한·중·일 3국간 역사 인식의 합의점이나 변화가 있었다고 보는가?
정부 차원의 교류에서도 부분적으로 희망을 가질만한 진전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 정부가 합의해서 2006년도에 '중·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여기에서 1937년 중·일전쟁을 바라보는 중국과 일본의 시각차에서 진전된 부분이 있는데, 난징대학살을 일본이 인정한 것이다. 일본의 난징대학살 인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한·중 사이에도 3·1운동이 중국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학술회의에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한·중·일 3국간에 서서히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제안했기 때문에 향후 세 정부가 역사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나가야한다고 본다.
독도문제를 비롯하여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역사 현안들은 진행형이기도 한데, 그럴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한·일 간의 역사인식을 좁혀나가는 것은 장기적 전망을 가져야 한다.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유럽에서도 수십 년이 걸렸기 때문에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독도문제나 야스쿠니 참배문제는 단순하게 역사가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풀어가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공동역사부교재 발간 사업은 한·중·일 세 나라의 연구와 합의가 중요하다. 후속 작업을 하는 현재 시점에서 가장 큰 난제는 무엇인가?
이번에는 쟁점을 철저하게 파헤치자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합의점이 나오면 합의점을 쓰고, 합의를 못본 부분은 그대로 드러내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야만 한·중·일 3국의 독자들이 어떤 부문에서 인식의 차이가 있고,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어느 정도 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 쟁점은 근현대사 출발점에 해당하는 이른바 전근대 국제관계를 보여주는 조공책봉(朝貢冊封)체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19세기 후반에 근대적인 만국공법(萬國公法) 질서로 바뀔 때 이것이 어떻게 변형되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 문제가 큰 쟁점인 까닭은 중국이 19세기 후반에 한국을 속국으로 간주하면서 임오군란 이후에 내정간섭을 했는데 이를 두고 한국은 또다른 제국주의 성격이라고 비판하는데 반해 중국은 제국주의 정책이 아니라 전근대적인 상호관계 때문에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개입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풀려야만 근현대 체계를 잡을 수 있다. 일본과의 문제는 제국주의 침략은 사실이나 그것이 계획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현재 일본 역사학계는 계획성, 의도성이 가장 큰 쟁점이다. 제국주의로 규정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 일본 역사계의 현재 흐름이다.
한·일 집필진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등 향후 계획은?
《미래를 여는 역사》를 집필할 때는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역사교재를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동참할 수 있었다. 한·중·일 각국은 독자적인 편집위원회를 구성한 후 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점은 2011년도 출간 예정인 책의 집필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한·중·일 3국의 학계가 학술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을 발간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집필진이 학자 중심으로만 구성되었다. 그리고 두드러진 특징은 중국은 베이징에 있는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가 전적으로 이 사업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전처럼 폭넓은 다양성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이 책임진다는 점에서 대표성은 높아졌다. 한국과 일본은 집필진이 학자 중심으로 바뀐 것이 큰 차이점이다. 2011년 4월에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동아시아 사회사》로 2권의 책으로 나눠 출간될 예정이며, 현재 1권의 초고 집필이 끝난 상태다.
《미래를 여는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학교가 있는가? 이 교과서 출간 이후 중국과 일본에서는 채택하여 교육하고 있는지?
한국에는 검인정교과제도가 있기 때문에 역사 부교재들을 현장에서 정식으로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교사 재량으로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학교들이 있다. 부교재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절실하다. 한국과 달리 일본과 중국은 부교재로 채택한 학교들이 많다. 일본은 동경공립중학교와 교토의 이츠메이칸우지 고등학교에서 이책을 부교재로 채택하였고, 중국은 천진실험중학교, 상해국제중학교 같은 특수학교에서 부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교육 관련 사업에 대한 제언을 한다면?
동아시아의 학자들이 실질적으로 교류하면서 연구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쟁점이 무엇인지 추리고, 장단기적 과제를 정리한 후 각국의 학자들이 서로 네트워크하여 연구할 수 있는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역사교육과 관련하여 제언한다면 다양한 형태의 역사부교재 개발에 도움을 주길 바란다. 텍스트 위주의 읽는 방식 외에 다양한 방식의 역사 부교재를 개발하였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청소년들을 위한 가이드북 발간이나 동아시아 박물관 소개 가이드북 등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역사 부교재들을 많이 개발하는 사업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이는 시민단체가 하기에는 무리다. 그동안 재단이 너무 정책개발에만 치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