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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2차대전기의 성폭력" 국제학술회의 성폭력과 역사 새로 읽기
  •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
2차대전 시기에 일어난 성폭력을 주제로 하는 국제워크숍

지난 2월 19일~21일에 독일 본(Bonn)대학에서 2차대전 시기에 일어난 성폭력을 주제로 하는 국제워크숍이 열렸다. 동북아역사재단과 본 대학의 재정지원으로 이루어진 이 워크숍은 그 초대장에 재단의 지원만을 크게 적시하고 있어서, 개최 측의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우리 역할이 과대평가된 듯 하여 내심 민망하기도 하였다.

이 워크숍은 전시에 일어난 성폭력문제를 주제로 하였지만, 사실 그 배경에는 보다 야심찬 계획이 들어 있다. 이미 준비단계에서 이 회의를 제안한 본 대학 아시아학과의 쵤너(Reinhard Zo..llner)교수는 전시 성폭력에 대한 그간의 역사서술을 통해 역사학을 재성찰하는 문제를 주요과제로 제기하였다. 흔히 역사학의 과거청산과 관련하여 한국에서는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가 일본에 비해 아주 성공적인 것으로 말하지만, 기실 성폭력, 나아가 젠더라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볼 때, 서구에서 과거청산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 문제나 성폭력을 드러내는 것을 더 금기시하는 동아시아에서 일본군 성노예문제가 강렬하게 제기되고, 피해자가 증언하고, 이를 둘러싼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비해, 2차대전 동안 수많은 성폭력과 강제매춘이 자행된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폴란드, 러시아 등에서 피해자가 침묵하고, 페미니스트 운동은 이 문제를 건드리지도 않았고, 역사연구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에 유럽의 역사연구에서도 동구권이나 나치하의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였고, 그런 점에서 이 워크숍은 '새로운 연구 열기의 보다 체계화된 기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 외면한 유럽의 역사청산은 성공한 것인가?

회의 벽두에서 에어푸르트 대학의 크라푸트(Claudia Kraft)교수는 몇 가지 문제틀을 제시하였다. 우선 역사학 내에서 성폭력 이슈의 중요성이 인식되어야 한다는 전제와 함께, 1) 지역연구의 활성화, 2) 비교사적 접근, 즉 동구와 아시아와의 비교, 3) 성폭력에 대한 기억의 정치(politics of memory)를 핵심주제로 제안하였다. 더불어 성폭력은 정치화되었고, 그래서 권력관계이면서 집단적 정체성의 강화와 밀접히 연관된 문제임을 강조하였다. 여기에는 국가적 기획이 개입되고, 인종주의가 스며드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의 각축장이라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주제로는 일본군 성노예문제와 일본의 대응, 한국에서 일본군 성노예 연구현황과 기억의 문제, 러시아 지역에서의 독일 육군에 의한 성폭력과 군의 대응, 독일과 일본 사례의 비교, 소련 해방군에 의한 독일여성에 대한 성폭력, 점령지 폴란드에서의 성폭력과 집단기억, 프랑스 나치 수용소에서의 성폭력과 육체의 미학화, 나치 수용소에서의 강제매춘, 전후 폴란드의 전시 매춘에 대한 금기, 전쟁과 민족주의와 젠더 등이 다루어졌다.

활발한 논쟁으로 종결된 종합토론에서는 국가를 횡단하는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의 필요성, 비교의 관점과 시도의 필요성, 민족과 국민국가의 역할문제, 젠더의 위계구조, 사료 확보를 위한 정보교환과 방법론의 모색, 관련 용어의 사용과 정리문제 등이 제기되었다. 성폭력과 관련하여서는 증언이나 사료의 확보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만큼, 사료 획득과 이용을 둘러싼 토론과 정보교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특히 유일하게 한국에서 피해자의 증언이 가능했던 점을 주목하면서, 그 성사과정이나 방법론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젠더와 성폭력, '기억의 정치' 연구 네트워크의 가능성

성폭력과 역사 새로 읽기

'기억의 정치'와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둘러싼 우에노 치즈코와 필자 사이의 논쟁이었다. 영상토론으로 진행된 논쟁에서 일본에서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높은 명성을 지닌 동경대 우에노 교수는 '아시아국민기금문제'와 '요코 이야기'를 통하여, 한국에서 일본군 성노예운동의 성공이 한국적 민족주의를 동력으로 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힘든 화해'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일본군 성노예문제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는 민족주의 보다는 지난 20년간 한국사회가 거둔 민주화의 동력과 더 많이 연계되어 있고, 아시아국민기금 문제는 피해자의 시각보다는 '일본인의 안경'으로 문제를 본 것임을 지적하였다. 또한 성폭력에 내재된 제국주의적 권력도 주목할 것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종합토론 과정에서 '사회적 기억의 정치'에서 한국이나 폴란드가 정치화 과정에서 피해자를 수단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논제의 하나로 제기되어서, 이에 대해서는 한국 측에서도 좀 더 치밀한 내부진단이나 논리개발이 필요한 것 같다.

국제워크숍 "2차대전기의 성폭력"은 한국에서의 일본군 성노예제를 둘러싼 과거청산과정과 연구가 국제적으로 새로운 연구를 태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 것이다. 또한 이 회의는 보기 드물게 집중적으로 진행된 회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3일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참석자들이 자리를 지키며 활발히 토론에 참여하였다. 또한 회의의 말미에서 참가자들이 올해의 회의를 하나의 연구네트워크로 구성하여, 앞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주최 측이 애초부터 참가자의 선정과정에서 대학에 자리 잡은 중견연구자보다는 방금 박사학위를 마쳤거나 진행 중인 소장연구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연구 생산성을 모으는데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독일이나 국제 연구재단에 대형 프로젝트를 신청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이 모임이 향후 젠더와 성폭력, 기억의 정치에 대한 중요한 연구 네트워크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연구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국제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기억정치 관련 연구에서의 발언권을 높이는 것은 우리로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