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에 몰아닥친 강력한 지진과 거대한 지진해일은 대자연의 위력과 그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알게 했다. 그리고 연이은 후쿠시마 원전사태는 전인류에게 인간의 오만이 가져온 엄청난 결과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줬다. 일본처럼 지진에 잘 대비된 사회도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과학의 힘을 과시하며 절대 안전하다고 주장하던 일본 원전마저 소위 '상상외(想定外)'의 상황이 발생하면 가공할 핵무기 같은 존재로 변할 수 있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일본은 물론 전세계에 수많은 과제와 교훈을 주었다. 전세계에서 확대일로를 걷던 원전정책들이 수정되고 일본 국내에서는 지진해일과 원전피해가 확대된 원인들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피해복구 재원 마련방법과 피해 복구 방식, 향후 에너지 정책 수립 방향, 또한 정기점검을 마치고 재가동을 예정하고 있는 원전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수많은 이슈들을 논의하고 있다. 사태 대응과정에서 리더십 문제를 드러낸 간 나오토 수상은 퇴진의사를 밝혀야만 했다.
대지진사태와 한·일관계
이번 사태는 한·일관계에도 큰 교훈을 주었다. 우리나라 국민이 보여준 이웃 일본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은 일본인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였다. 세계 여러 나라 중 가장 처음으로 구호대를 파견하였고,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자발적인 모금활동을 벌여 상당액의 성금을 모금하였다. 또한 서울 동네 곳곳에 "일본인 힘내라(かんばれ日本)"는 일본어 격려문구가 나붙기까지 했다.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 하에 원전인근 자국민에게 철수명령을 내리고 전세기까지 동원했던 중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호주 등의 국가나, 30km가 아닌 80km 이내 자국민에 대해 대피명령을 내림으로써 일본정부의 신뢰성을 훼손시켰던 미국과 달리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고 철수명령을 자제하여 일본인들에게 신뢰감을 보여준 것 등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그 당시 한국과 일본은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일관계의 뇌관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3월 중순이 되자 한·일 간에는 문부과학성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결과 발표를 앞두고 긴장감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통상 3월 말에 진행되는 일본교과서 검정결과 발표에 2008년 제시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권고에 따라 독도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내용의 교과서들이 대량 포함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물론 한국 정부와 학계는 문부과학성의 스케줄에 따라 진행되는 교과서 검정결과 발표를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국내에서 일고 있는 우호적 대일 분위기가 훼손되지 않도록 일본정부에 교과서 검정결과 발표 연기를 요청하였지만 묵살되었다. 일본이 3월 30일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하면서 언론들은 일제히 양국 관계의 경색을 예상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물론 검정발표 이후 일부 네티즌들의 격한 반응이나 대일본 성금액이 급격히 줄어드는 등의 부분적인 부작용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사태 악화는 없었다. 외교통상부는 발표 이전부터 보편적 인류애에 관련된 문제와 역사문제를 분리 대응할 것임을 명확히 천명하였다. 즉, 교과서 왜곡에는 외교적 항의와 실질적 지배강화 조치 등으로 단호히 대처하지만 이를 일본에 대한 지원문제와 연계시키지는 않는다는 방침이었다. 학계와 언론도 정부의 그런 방침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그러한 방침을 차분하게 수용해 준 것이다. 비록, 엄청난 국난의 와중에도 영토문제 도발을 그치지 않는 일본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분노가 일정 이상으로 증폭되지 않도록 참아냈다. 성숙하게 상대방을 배려한 결과다.
대일협력과 역사문제의 전략적 분리가 해법
이런 상황전개는 한국사회의 인식적 성숙도를 웅변적으로 보여줬으며 일본과의 역사 갈등에 대한 해법찾기에 중요한 함의를 던져주었다. 그 핵심은 대일협력과 역사문제의 전략적 분리와 장기적 연계를 통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문제해결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사실 일본과의 영토 및 역사분쟁은 국민 마음 속에 난마처럼 얽혀 있는 일본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과 현실적 열등감 때문에 그 해결을 정치(定置)하고 어렵게 한 측면이 없지 않다. 독도문제나 역사문제가 발생하면 강력한 국민감정 분출이 이뤄지고 모든 이슈들이 그 폭발력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이제 사회 각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과 대등하거나 경우에 따라 앞선 모습들이 나타나면서 보다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일본을 바라볼 수 있는 사회심리적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문화사회의 도래와 함께 높아지고 있는 '타자'(他者)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분위기 확산도 일조했다. 따라서 대일협력과 역사문제의 전략적 분리가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해법은 있다.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아시아 중심적 외교를 펴겠다는 민주당마저 영토문제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향후 일본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어차피 역사문제와 영토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양국 간 역사문제를 객관화시키고, 역사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준비를 통해 철저한 원칙을 세운 뒤 일본과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
핵심은 그 양상의 변화다. 예컨대 작년의 간 담화문 발표와 도서반환협정이 중참양원의 비준을 거쳐 실현되게 된 과정도 이번에 보여준 우리나라 국민들의 성숙한 자세와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사 분위기 그리고 그 산물인 양국 간 우호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말하자면 이제는 역사문제와 한·일 우호협력의 제로섬 대립으로 인해 한·일 간 우호협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 즉, 우호적 분위기가 역사문제에 돌파구를 제시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소모적 대립보다는 차분하고 철저한 역사연구와 논리적 대응 그리고 현안에 있어서의 실질적 성과 등이 역사문제에 대한 보다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해법이다. 한·일 우호협력은 중국의 부상, 일본의 소위 '보통국가'화 그리고 한국의 성장 속에서 대세일 수밖에 없다. 인류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으로 여기까지 성장해 왔다. 한·일관계 역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방법을 통해 역사문제가 감정대립의 대척점이 아닌 협력과 상호발전의 도약대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