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최근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가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현대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Answer
2008년 3월 중순과 2009년 7월 초순에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는 대규모 민족 시위가 발생하였다. 게다가 지난 5월 10일 내몽고의 유목민인 메르겐은 과도한 광산 개발로 인한 초원 파괴에 항의하던 중 한족 트럭운전사가 몰던 트럭에 치어 사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대적으로 조용하던 모범지역인 내몽고에서 대규모 민족시위가 벌어졌다. 이러한 시위들은 중국이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중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모든 소수민족이 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1950년대 중국 정부가 민족식별작업을 진행할 때 등장한 소수민족은 400개가 넘었다. 현재와 같은 55개 소수민족이 법적으로 공인된 것은 1980년 무렵으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작년말을 기준으로 중국 인구 13억 3,972만 명 중에 한족 인구는 91.52%로 소수민족의 인구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중국의 소수민족은 대개 변경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티베트나 몽골인들의 불교나 위구르족의 이슬람과 같이 자민족의 주요 종교가 있다. 중국에서 민족문제는 변경·종교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와 같은 요인으로 인해 중국의 민족문제는 통계학적인 비중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중국의 민족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족과 비한족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중국 민족정책의 기조는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청대까지 중국은 한족 지역과 비한족 지역, 곧 본부(本部)와 변부(邊部)의 이원적인 민족·지역 구도였다. 중국에서 민족 개념의 수용 과정은 '본부와 변부 일체화 정책'의 추진과정과 궤를 같이 하였다. 일체화 정책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주된 방법은 변부에 대한 성(省)의 설립과 '중화민족' 개념의 확장이었다. 1920년대 이래 연방제를 주장하던 중국공산당은 항일전쟁이 끝나자 기존의 연방제 공약을 포기하고 자치구 설립을 추진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도 전인 1947년 내몽고자치구가 수립되었다.
내몽고자치구의 수립은 이후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의 모델이 되어 소수민족 집중거주지에 민족자치구역이 설정되었다. 이러한 민족자치구역제도는 중국이 소수민족을 통합하는 핵심정책이다.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대체로 동화를 지향하지만, 때로는 매우 과격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10년 동안 벌어진 문화대혁명은 대부분의 소수민족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중국의 소수민족도 1959년 3월의 라싸봉기가 보여주듯이 중국 당국의 제반 정책에 순응만 하지 않고 때로는 저항하였다.
중국 당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한 1980년 무렵 이후 중국의 소수민족은 당국의 우대정책에 따라 자치권 허용, 민족문화 보호, 한족보다 많은 자녀수 보장 등의 혜택을 경험했다. 그러나, 소수민족의 입장에서 정부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은 시장경제화에 따른 심각한 정체성 훼손, 생태환경 파괴, 지역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등을 상쇄할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중국의 민족문제는 구소련과 같이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중국의 전도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창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