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중국해의 서사군도에 대한 영유권을 놓고 베트남과 중국은 심각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이 주권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경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국제사회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5월 17일 재단과 베트남 사회과학원이 개최한 "국제화시대의 한-베관계"라는 제목의 포럼에서 제시한 베트남의 시각은 베트남과 중국 관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하였다.
한국·베트남 협력과 중국의 부상
베트남 사회과학원 중국연구소의 도 띠엔 썸 원장은 발표에서 중국의 부상은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기회와 도전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중국의 경제발전 성공과 경험은 한국의 발전 경험만큼이나 중요한 교훈으로 다가오고 있는 점, 그리고 지역주의 논의에 있어서 베트남이 ASEAN과 중국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중국 또한 베트남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고 있는 점, 주변 안전을 추구하는 중국의 정책은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어 온 국경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제공할 수 있는 점 등을 베트남이 가질 수 있는 기회의 요소로 제시하였다. 반면 도전의 요소로 대중국 무역역조의 심화와 대중교역과정에서 유입될 수 있는 사회범죄의 증가 가능성, 그리고 남중국해 문제의 향배 등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동남아에서의 중국 국제화 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일축이익(一軸二翼)정책은 기회보다는 도전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정책은 중국이 2006년 7월 제1회 범북부만 경제협력포럼에서 제안한 정책구상으로 아래 세 지역을 하나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첫째, 1축이란 중국의 서부 난닝(南寧)으로부터 베트남,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 이르는 6개국 9개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 및 고속도로 건설을 말한다. 둘째, 1익은 중국,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를 포함하는 메콩강 경제권(GMS) 지역협력이다. 셋째, 또 다른 1익은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을 잇는 범북부만 경제협력구 개발이다. 베트남 측 참가자는 중국-ASEAN FTA와 메콩강 개발 사업은 중국 주도의 사업임을 상기시키면서, 베트남의 국익에 부합할 경우 협력할 필요가 있으나, 중국의 계산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말라카 해협의 통로이자 자원의 보고인 남사군도와 서사군도에서의 영유권 확보를 위해 베트남에 대해 위협과 협상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일축이익 정책은 유화정책으로 포장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다른 베트남 측 참가자는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ASEAN에서 베트남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베트남과 불화하면 역내 영향력 확대가 쉽지 않음을 중국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를 미국과 그 주변국들과의 관계와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캐나다-미국 관계를 비유로 들면서 캐나다는 자신이 미국과 너무 가까워져도 또한 너무 멀어져도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이 베트남과 비슷한 처지라고 하였다. 또한 멕시코전쟁 이후 독재자로 군림했던 디아즈 대통령의 유명한 말인 "신은 너무 멀리 있고 미국은 가까이 있다"는 표현과 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아울러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도전 상황에 대해서는 주변국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중국은 '평화발전'이라고 하지만 주변국들은 위협으로 느낄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주변국들이 서로 협력을 강화하면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이 타당하지 않은 권리를 주장할 때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참가자는 베트남은 오랜 역사적 경험 속에서 중국에 대처하는 노하우를 축적하였음을 강조하였다.
한국의 공적원조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활동 촉구
공적원조(ODA)와 관련된 세션에서도 우리가 귀기울일만한 주장들을 제시하였다. 베트남은 2005년 7월 이후 개발도상국들 중 가장 모범적인 수원국으로 손꼽히고 있다. 2005년 2월, ODA의 40여 개 공여국들과 수원국들이 모여 원조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추진과제를 선정한 파리선언이 있었다. 그해 7월 베트남은 수도 하노이에서 자국에 원조자금을 제공하는 모든 공여국들이 참여하는 공여국 회의를 개최하여 베트남 실정에 맞는 개선과제를 선정하고 발전 계획을 제시하였다. 그 기준에 비추어 한국 ODA의 문제점을 제시하였다.
집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으로,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 집행기관들이 인력풀 부족으로 인해 효율적 자문을 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집행과 관련된 자문역할을 하는 지역전문가들이 베트남의 발전전략체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 점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베트남 내 한국의 ODA관련 사업에 대한 한국정부의 적극적 홍보 활동을 촉구하였다. ODA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활동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아 한국의 ODA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하였다.
학술회의에서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그 연구 결과에 대한 토론에만 중점을 둔다면, 그만큼 의견교환에는 제약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이번 포럼은 학술연구보다 양 국가와 기관의 전문가들이 만나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기획하였다. 그 결과 이번 포럼에서는 한·베 양국과 양 기관의 관심사들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가 많이 이루어져 위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였다. 자유토론 시간의 말미에 한 베트남 참가자의 "중국의 전략 중에는 동남아 전략에 대비되는 동북아전략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미 있는 질문으로 이번 포럼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