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 정세가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다.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재단에서는 한반도의 안보문제를 전공한 인도 델리대학 산딥 쿠마르 미쉬라(Sandip Kumar Mishra) 교수를 초빙해 연구 및 발표를 진행했다. 이번 호에서는 한반도 안보문제와 더불어 한국의 정체성을 연구한 미쉬라 교수와 재단의 배성준 연구위원의 대담을 소개한다. _ 편집자 주
산딥 쿠마르 미쉬라
교수는 인도 JNU에서 냉전 이후 한반도 안보 패러다임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인도 델리대학에서 동아시아학과 한국학 부교수로 재임 중이다. 재단 초청 학자로서 '근대 한국의 정체성 문제'를 연구했고,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배성준
연구위원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한국 근대사, 국경 영토 문제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재단의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한국 근현대사와 백두산·간도 문제에 대해 연구 중이다.
배성준 인도의 한국학은 미국이나 유럽의 한국학에 비하여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델리대학에서는 70년대에 한국학을 개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먼저 인도 한국학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서 소개해 주기 바란다.
미쉬라 한국학 교육은 1970년대 초반에 JNU(Jawharlal Nehru University)에서 한국어 강의를 개설하면서 시작됐다. 개설 당시에는 관심을 많이 끌지 못했지만, 요즘은 관심이 높아졌다. 냉전시대였던 1970년대, 인도는 비동맹국가 중 하나로 냉전으로 양분된 국제관계를 거부했었다. 인도는 당시 오히려 소련과 더 많은 교류를 했고, 냉전질서 속에 미국 편에 있었던 한국과는 구조적으로 많은 교류를 하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한국학 역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1990년대 초반 냉전시대를 마감하고, 국제관계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인도와 한국은 경제교류가 활발해졌고, 한류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 1990년대부터 한국학은 점점 인기를 끌게 되었고, 그 후 JNU를 비롯해 델리(Delhi)대학교에 한국학이 개설됐고, 캘커타(Calcutta), 첸나이(Chennai), 마거드(Magadh) 대학에도 한국어 교육이 시작됐다.
배성준 현재 재직 중인 델리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인력과 학생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또, 한국학 내에서 역사학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미쉬라 인도교수는 나 한 사람이고 한국 역사, 정치와 외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 외에 한국에서 온 두 명의 초빙교수가 한국어와 문학, 그리고 한국 경제를 각각 가르치고 있다. 동아시아학과에는 55명 정도가 석·박사 과정에 있는데, 그 중 다섯 명은 한국정치·경제와 외교관계를 전공하고, 두 명은 한국어와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재 역사 부문은 한국학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의 경제적인 성공과 민주화 운동, 그리고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위치와 특수성 때문에 한국 외교관계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이것들을 연구하려면 한·일, 한·중 간 역사 문제가 빠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역사 부문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일부 학생들은 불교가 어떻게 인도와 한국을 연결해 주는 도구가 되었는지 등 인도와 연관된 한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배성준 남북관계, 북핵문제, 미·중·일의 한반도 정책 등에 대하여 다수의 글을 발표했고 코리아 타임즈에도 기고하고 있는데, 남북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미쉬라 나는 원래 국제정치를 공부했는데 연구 중 "2차 대전 이후 한반도 정세"에 관한 과목을 듣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과목을 가르친 교수는 인도에서 한국학을 시작한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을 매우 깊이 이해하고 계신 분이다. 또 다른 계기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원제:《Origins of the Korea War》 vol 1,2) 이라는 책이다.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 책은 한국의 분단과 전쟁이 어떻게 미국, 소련과 같은 외세에 의해 야기되었는지, 또 그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보여 주는 통찰력 있는 책이다. 세계 주요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은 어떻게 보면 잘못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적 위치 때문에 한반도는 국제정치학자에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이렇게 국제정치와 관련해 한국을 연구하면서, 점차 관심의 범위가 넓어져 한국의 정치, 역사,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배성준 현재 북핵문제를 둘러싼 남북관계와 관련국 관계는 해결의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주된 연구 분야가 냉전 이후 한반도 안보문제로 알고 있는데, 한반도 안보문제의 특징은 무엇인가?
미쉬라 한반도 안보문제는 남·북한, 미국 3자 중심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한다. 현재 북한은 핵카드를 두 가지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첫째는 북한의 주관적 관점이긴 하지만, 미국이나 한국 등의 위협에 대한 대처고, 둘째는 거래 수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북한을 계속 대화에 끌어들이면서 책임감 있는 태도를 취하도록 설득하는 동시에, 미국과는 조율된 정책으로 세 나라가 좀 더 협력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남·북한과 미국이 서로 상대에게 위협이라고 여겨지는 안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서로의 안보를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남북관계는 한국의 포용정책으로 인해 상당히 좋아졌다. 반면, 미국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틀어졌다. 서로 다른 정책이 3자 관계에 문제를 가져온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지속적인 포용정책을 편다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다. 어쨌든 3자 모두 좀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하며 특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미국과 함께 조율된 정책을 펴는 것이다.
배성준 북핵위기를 둘러싼 안보문제는 남·북한, 미국 3자 관계가 중심이라고 했는데 2010년 이후 북한-중국의 교류·합작이 확대되면서 중국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제 한반도 안보문제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미쉬라 한반도 안보 및 북핵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역할은 2003년부터 6자회담 주최 등을 통해서 커졌다. 실제로 중국이 포함된 다자간 회담은 북핵 뿐 아니라 장기적인 안보문제, 동아시아의 안보 메카니즘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중국의 급부상을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세계에, 중국의 부상이 평화적이며,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따라서 핵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 북핵 개발 등과 관련하여 북한에 영향력을 전혀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이유 외에도 북핵 개발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더욱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은 북핵을 반길 수가 없다. 이렇게 중국은 북핵 개발을 원하지 않고,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과 미국에 있기 때문에, 남·북한과 미국 3자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조건 없는 대화로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들이고, 다양한 신뢰형성조치(confidence building measure)를 통해 관련국가 간의 신뢰를 쌓아 외교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배성준 재단에 초청되어 연구한 '근대 한국의 정체성 문제'도 남북 협력이 한반도 안보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민족 정체성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만이 가진 원초적 정체성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오히려 베네딕트 앤더슨이 제기한 '상상된 공동체'라는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은가?
미쉬라 베네딕트 앤더슨은 한 집단의 민족적 정체성을 찾을 때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증거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그것이 상상에 의거한 공동 정체성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주장은 인도처럼 다양한 문화, 인종, 민족, 언어를 형성한 나라에는 들어맞는다. 하지만 한국은 내셔널리즘에 대한 근대적 정의가 이뤄지기 훨씬 전부터 한 개의 언어, 단군을 조상으로 하는 하나의 민족, 명확히 규정된 영토 안에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인의 민족적 정체성은 근대적 내셔널리즘 형성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재표출된 것이다.
배성준 인도와 한국은 식민지 지배를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인도가 다민족, 다종교라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근대 인도와 한국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미쉬라 인도와 한국의 정체성을 이야기하자면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다. 인도의 민족적 정체성은 인도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인도는 식민지 시대 대영제국에 대항하면서 형성된 집단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인도의 정체성은 식민지 시대에 형성되었고 본질적으로 반식민지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한국의 경우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식민시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집단정체성이 근대적 의미의 내셔널리즘 형성과 함께 서구적 형식, 근대적 표현으로 재표출된 경우다. 식민시대 이후 다양한 민족, 언어, 종교를 가진 인도인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엮어 준 것은 한 국가에 속해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인도 해방 직후, 서구 학자들은 독립 전 식민지체제에 대한 대항이 인도인들을 하나로 엮었지만 이것들이 없어진 다음에는 인도가 결국 분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인도 내에서도 개발 불균형 같은 사안 때문에 지역 간 갈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 국가에 속해 있다는 아이디어, 국가적 정체성(state identity)이 인도인들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
배성준 2008년 Korea.net에 기고한 독도문제에 대한 글에서 일본의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아시아의 세기(New Asian Century)를 위한 일본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현재 재단의 주요 관심 분야가 일본교과서와 독도 문제인데 한반도 안보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또, 그것과 관련해 재단에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미쉬라 역사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마음가짐은 상당히 구식이다. 아직도 관습적인 자세를 고수하는데, 주변국과 과거 역사에 대해 좀 더 투명하고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일본의 주변국에 대한 태도에서는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중국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14개 나라 중 10개 나라와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그런 측면에서 실패했다. 지금이라도 협동적인 동아시아의 안보체계 형성을 위해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국수주의적이지 않고, 중국이나 일본을 비판하기보다는 동북아역사를 중립적, 포괄적, 균형적인 입장에서 연구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중립적인 입장을 가진 재단의 연구 성과에 대해 앞으로 중국, 일본은 물론 주변 국가들도 인정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도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공동연구를 한다면 아시아에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한 미래 속에서 재단은 동북아의 중립적 역사연구기관으로 핵심적 역할을 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