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 변경, 만주, 동북3성, 간도… 여하한 이름이든, 그 지역으로의 여행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런 마음을 안고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2일까지 두만강 최하류 지역인 방천에서 단동 황금평까지 동북 지역 언론인 취재 지원에 동참하였는데 여행 내내 놀라움과 기쁨을 느꼈으나, 북한 지역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암울해지기도 했다.
먼저 방천에 있는 중국의 동쪽 끝 국경선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로 보이는 두만강 하류의 광대함과 향후 개발가능성에 놀랐지만 전망대 옥상 벽면의 북쪽에 아라사, 남쪽에 조선, 전면에 일본해라고 붙여 놓은 표지판은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연후 대성중학교, 화룡에 있는 청산리대첩기념비, 백두산과 장백폭포, 장춘에 있는 위황궁, 집안과 환인의 고구려 유적 등을 돌아본 후 단동을 거쳐 심양에서 마지막 여정을 보냈다.
방천, 도문, 집안, 단동 등 북한과 맞닿은 곳은 하나같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 쪽은 밤에도 휘황찬란한데 북한 쪽은 깜깜한 암흑 천지에 개구리 소리만 요란하였다. 60년대에는 오히려 중국 주민들이 살기 어려워 북한으로 불법 월경을 많이 했다는 얘기에 더욱 가슴이 아렸다. 변경 지역을 여행하면서 어느 쪽이 북한 땅인지는 산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산꼭대기까지 이발기계로 빡빡 민듯이 계단밭을 만들어 놓았으면 여지없이 북한 땅이다.
역사는 과거가 아닌 미래와 같이 어울려 굴러가는 것
집안과 환인에서 마주한 광개토왕비와 능, 장군총, 졸본산성 등은 1500여 년을 건너 뛰어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와 가슴 벅찼지만 유적 관리의 소홀함, 관광객의 대부분이 중국인과 한국인인데 한글 설명문은 한 줄도 없고 오히려 가끔 일본어 설명문이 있어 안타까웠다. 특히 돈화시가 최근 조성한 발해광장에는 대조영을 비롯한 15명의 역대 왕들을 각각 거대한 바위 판에 양각하여 마치 바위 병풍같이 세우고 그 앞에는 당나라 사신 동상을 세워 놓아 중국의 엉뚱한 속내가 느껴졌다.
단동에서 끊어진 압록강 철교, 위화도, 비단섬, 황금평 등을 바라보니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 미래와 같이 어울려 굴러간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압록강 하구의 섬들은 대부분 북한 땅인데 단동시가 강 중간에 인공섬인 월량도를 만들고 위락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황금평을 50년 간 중국 측에 임대했다는 언론보도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장수왕의 능으로 알려진 집안에 있는 장군총은 위용이 넘쳤다. 그런데 평양으로 천도한 장수왕의 능이 집안에 있는 것과 부친인 광개토왕릉의 위쪽에 있어서 자식 묘를 부모 묘 위쪽에 두지 않는 우리 풍속에 비춰볼 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장수왕이 어렸을 적 살았던 국내성에 대한 그리움과 사후에도 수호신이 되어 북쪽에서 침입해 오는 적을 물리치겠다는 의지, 그리고 광개토왕의 능을 불공대천할 원수로 여겼을 중국의 적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부왕의 능이 잘 보이는 곳에 자신의 묘를 조성하라는 유언을 따른 것 같다는 나의 추론에 일행 모두 공감하였다. 말하자면 경주 감포 앞바다에 문무대왕수중릉이 있듯이 집안에는 장군총이 있는 것이다. 고구려인들의 원대한 뜻과 기개, 찬란한 역사가 느껴졌다.
이 위대한 역사를 바탕으로 동북아의 평화공존과 번영을 이룩하는 것이 1500여 년 전 선조들과 1500여 년 후 우리 후손들에 대한 마땅한 도리다. 동북지방으로의 여행은 그래서 항상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