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고구려 벽화무덤 속 그림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Answer
고구려 벽화무덤에는 마치 스냅 사진으로 찍은 듯한 장면 묘사가 많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문헌기록이 전하지 못한 당시의 생활과 풍속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중기의 왕도였던 국내성, 현재의 집안에 있는 삼실총(三室塚)도 당시의 생활 풍습을 엿볼 수 있는 벽화무덤의 하나다. 우산(禹山) 남쪽 기슭에 있는 이 무덤에는 흥미로운 장면 하나가 묘사되어 있는데, 전쟁터의 한 장면이다.
전투의 승패는 병력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운용하는 가에 달려 있다. 고대의 전장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몇몇 개인의 뛰어난 활약이 전장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전군이 격돌하기 전 일대일 대결에서 적장을 꺼꾸러뜨려 아군의 기세를 돋운다든가, 적진에 뛰어들어 수많은 적병을 쓰러뜨려 적의 대열을 무너뜨린다든가……
흔히 공성도(攻城圖)라고 불리는 이 벽화는 왼편에 성(城)이 있고, 그 성 바깥에서 대결을 펼치고 있는 4명의 무사를 표현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두 기병의 모습이다. 두 기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갑옷을 두른 것으로 부족하였던지, 타고 있는 말에도 갑주를 입혔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 기병의 전신은 가로와 세로선으로 구획되어 있어 미늘갑옷(刹甲)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투구에는 머리 양쪽으로 뿔처럼 솟아오른 장식을 붙여, 고구려 투구의 특이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가로 줄이 강조된 왼쪽 기병의 갑옷은 다른 종류의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쓴 투구의 형태도 고구려 투구와는 다르다. 고구려 무사로 보이는 오른쪽 기병이 삼실총의 주인공이라면, 왼쪽 기병은 주인공이 어느 전장에서 만났던 적군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창날 부분이 둘로 갈라진 차(叉)라는 창을 들고 있는데, 약간의 상상을 보태면 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두 무사가 우연찮게 전장에서 마주친 듯하다. 허공에 떠 있는 말의 뒷발은 두 필의 말이 한창 질주 중임을 알려준다. 서로의 기예를 다한 대결에서 고구려 무사를 당해낼 수 없던 왼쪽 무사는 말 머리를 돌려 몸을 피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틈을 놓치지 않고 고구려 무사가 두 팔로 힘껏 내리꽂은 창이 왼쪽 무사의 갑옷을 꿰뚫고 있다.
이 대결은 삼실총의 주인공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가 승리를 거둔 적장이 이름난 장수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임기응변으로 창고달을 사용하여 승리했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한 장의 벽화는 어느 전장에서 벌어졌던 목숨을 건 대결을 글자 한자의 도움없이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