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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충분한 타당성을 가진 '동해' 표기, 이제 국제적 인지도 확대에 더욱 힘써야"
  • 이윤정 | 사진_ 송호철

최근 미국과 영국은 '동해(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로 단독 표기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서한을 국제수로기구(IHO)에 제출했다. 미국이 일본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동안 우리 정부가 차근차근 노력해온 '동해/일본해' 병기 추진계획은 큰 장애물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동해표기 문제와 관련, 전 유엔지명전문가회의 의장인 남아프리카공화국 피터 레이퍼(Peter Raper) 교수와 재단 심정보 연구위원의 대담을 소개한다._ 편집자 주

심정보 연구위원 ,피터 레이퍼

피터 레이퍼

1984년부터 유엔지명전문가회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University of the Free State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재단과 동해연구회 주최 연례 세미나에 참석해왔으며, 지난해에는 재단과 동해표기 관련 영문도서를 공동 저술하였다. 재단 초청학자로서 해양지명 문제에 관한 국제법적 측면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심정보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일본 히로시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재단의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동해·독도 관련 고지도 연구 및 근현대 한일 지리교과서에 표기된 동해와 독도, 동해와 독도의 지정학 등에 대해 연구 중이다.

심정보: 한국의 여름 날씨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매우 다른데, 지난 5월 말부터 서울에서의 생활과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했는가?

피터 레이퍼: 불편한 기억은 없다.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렀는데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서 그런 것 같다. 좋은 연구 환경을 제공해 주며 여러모로 배려해 준 동북아역사재단 덕분에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히려 이곳에서의 생활에 너무 푹 빠져 있어서 그게 걱정이다. 그동안 머물면서 한국과 서울에 대한 이미지도 상당히 좋아졌다. 특히 붕괴된 남아공의 대중교통 시스템과 달리 상당히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의 교통시스템과 치안관리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심정보: 동북아역사재단은 21세기에 들어 중국, 일본과 역사 갈등이 심화되면서 역사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재단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피터 레이퍼: 2007년 사단법인 동해연구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이 함께 개최하는 제13차 동해지명 관련 국제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재단을 알게 됐다. 작년, 헤이그에서 열렸던 지명과 바다 명칭에 관한 국제세미나에서 재단의 학자초청 프로그램에 관해 듣게 되었고, 올해 재단의 연구 지원을 받아 이렇게 초청학자로 오게 된 것이다. 재단 초청학자로서 해양지명 문제에 관한 국제법적 측면 등에 대해 연구하였다.

심정보: 지명연구는 지리학, 역사학, 문화인류학, 언어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세부 전공은 무엇이며, 학위 취득 후에는 지명연구와 관련하여 어떤 활동을 해왔는가?

피터 레이퍼 교수

피터 레이퍼: 박사 과정에서는 남아공에 있는 지방의 지역 명칭에 대해 연구했는데, 지명학이라는 분야가 워낙 다양한 것들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라 모든 것을 고려하고 포함시키며 전반적으로 연구했다. 언어학적으로 토착지명과 고유지명이 어떻게 해서 지금의 명칭이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또한 하나의 지명이 생기기까지 어떤 문화적, 종족적 영향을 받았는지 그 발달 과정을 추적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지명이 가지는 정치적인 효과와 영향력에 관한 것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학위 취득 후에는 남아공의 인문과학연구소에 있는 고유지명연구센터를 이끌어달라는 제안을 받아 연구를 시작했다. 더불어 1972년부터 2002년까지는 남아공지명위원회 위원으로, 그 기간 중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위원장으로 활동해 왔다. 1984년에 UN 지명전문가회의(이하 UNGEGN)의 정식 위원으로 초청되어 활동하다가 1991년에는 의장 자리에 올라 2002년까지 의장직을 맡았다. 사실 내가 UNGEGN의 위원으로 초청되기 전까지 남아공은 UNGEGN에서 발언권이 없는 국가였다. UNGEGN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제적인 발언권이 생기고 남아공 내에서의 지명연구도 활성화됐다. 그 부분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심정보: 지금 말한 바와 같이 UNGEGN의 의장을 오랫동안 역임하였는데, 이 회의는 국가별 지명표준화정책, 외래지명이나 로마자표기 등의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UNGEGN의 목적, 구성, 역할 등에 대해 좀 더 소개해 준다면?

피터 레이퍼: UN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과 역할 가운데 하나가 각 국가와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완화시키고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다. 지명관련 문제들이 국가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UN이 인식하면서 임시 조직들을 만들었고, 1965년 지명전문가집단인 UNGEGN(Group of Experts on Geographical Names)을 설립하였다. UNGEGN은 국제적·국가적 수준에서 지명표준화를 위해 마련한 국가 간 조정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 2년마다 개최되고, UN지명표준화회의(이하 UNCSGN)와 연계된다. 각국 정부는 5년마다 개최되는 UNCSGN에 초청되며, 이 회의에서 제기된 보고서 논문들을 바탕으로 지명표준화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점들을 토의하고 심의하여 결의안을 채택한다. 그렇게 표준화된 지명이 확정된다. 참고로 바다 명칭에 관해서 UNGEGN은 1921년에 설립된 국제수로기구(IHO)와 함께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심정보: 한국 정부는 1992년 8월 뉴욕에서 개최된 UNCSGN에서 '일본해' 단독표기의 부당함을 제기하였다. 그와 동시에 한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 명칭으로 '동해/일본해' 지명의 병기를 주장하였는데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피터 레이퍼: 사실 '동해' 표기 문제와는 여러모로 인연이 있다. 남한과 북한이 1991년 UN에 가입하고, 1992년 국제 세미나에서 처음으로 동해 표기와 관련한 주장을 했을 때UNGEGN의 의장을 맡아 국제지명과 관련된 일을 진행해 왔다. 또한 1994년 UNGEGN 회의에서 조언을 구하는 서울대 이기석 교수를 만나, 당시 함께 UN 결의안을 찾아봤는데, 결의안 Ⅱ-25와 Ⅲ-20을 보면 "두 국가가 한 지역을 공유하고 있으면 국가 간 합의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하고, 만약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모든 이름을 명시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적혀 있다. 그러니 동해 해역의 지명 병기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주관적으로도 한국 정부의 병기 추진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 국가 간 평화를 도모하고 분쟁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UN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과도 부합되며, 국제수로기구(IHO)에서 내놓은 조언과도 같은 방향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입장은 완벽하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심정보 연구위원

심정보: '동해' 명칭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조에서부터 등장하여 광개토대왕릉비, 팔도총도, 아국총도를 비롯하여 한국의 수많은 문헌, 고지도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외무성은 세계 각국의 주요 도서관에 소장된 서양고지도 조사를 통해 '일본해'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명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측이 주장하는 '일본해' 단독표기 이외에 어떤 지명도 동해 해역의 명칭으로 수용이 불가하다는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피터 레이퍼: 심정보 연구위원의 이야기와 같이 '동해' 라는 지명은 한민족이 2,000년 이상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건 1800년대 서양고지도에 '일본해'라는 명칭이 쓰였다는 일본의 주장에 비해 훨씬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서양고지도를 근거로 한 일본의 주장에 역사적 타당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에 읽은 글이 있다. '지명이 역사적 타당성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한지, 정치역학상에서의 파워 게임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의 문제선상에 있다는 내용인데, 내 생각에 일본은 후자의 경우로 파워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입장과 행위들이야 말로 전형적인 국가 간의 침범,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들이다. 그런 이유로, 평화를 지지하는 UN에서는 모든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며 모든 지명들을 병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심정보: 일본은 '일본해, 동해의 해역이 UN 결의안에 나와 있는 공유하는 해역이 아니라 공해, 즉 국제 영토이기 때문에 UN 결의안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대한 의견은?

피터 레이퍼: 만약에 그러한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일본도 그 영토에 대한 소유권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공해의 명칭 역시 반은 한국 명칭으로 부르고, 반은 일본 명칭으로 부르는 게 객관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심정보: 동해 해역의 명칭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은 조금의 양보도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지명 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UNGEGN의 전문가로서 동해 해역의 지명표기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면?

피터 레이퍼: 해양법에 따르면 각자의 영토 경계에 있어서 200마일까지 주권을 가진 국가가 관할권을 가지는데 그걸 벗어나는 공해 영역에 대해서는 자신이 선호하는 지명을 사용하고 선전할 자유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정부가 선언을 해서 국내에서 '동해'라고 부르고 국외에서 'East Sea'라고 부르길 원한다고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국제사회가 그 이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노력해야 하며, 언론을 통해 세계적으로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얼마 전에 이기석 교수와 이야기를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들었는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이용하는 것이다. 평창 안내지도 등 제반 안내 자료에 '동해'를 표기하여 배부하고, 취재나 중계방송, 시상식 등 미디어에 노출될 때 뒷 배경으로 '동해'라고 표기한 지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동계올림픽을 통해 자연스럽게 세계적으로 노출시킨다면 '동해' 표기가 확산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올림픽 준비위원회와 함께 의논해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킨다면 상당히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심정보: 우리 재단에서 다루는 한·일, 한·중 간의 역사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차근차근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장기적 차원에서 동해 해역의 지명표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 또는 재단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피터 레이퍼: 이미 UN 결의안 Ⅲ-20을 통해서 분쟁 문제가 많이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국제지도 제작사들도 점점 더 많이 병기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동해 표기 확산과 더불어 이미 병기된 것에 대해서는 정당하지 않은 표기, 오류들에 대한 시정도 하나하나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와 재단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재단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 결과물로 그동안 치러왔던 16회의 '바다 지명에 대한 국제 세미나'를 종합해 작년에 재단에서 발간한 영문서적 《Geographical Issues on Maritime Names》는 '동해' 표기 확산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앞으로 시리즈로 발간될 예정이며, 재단의 초청학자로서 그 두번째 책을 만들기 위해 현재 그동안 치러졌던 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검토하며 추가된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다만 이런 책을 발간하는 데 그치지 말고 언론에 공개하거나, 시사회 같은 것을 열어 널리 알리는 것도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광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