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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껍데기 역사는 가라, 새로운 '나'로 늠름한 역사를 말하라"
  • 홍면기 북경파견 연구위원
티베트의 문성공주

중국에 "역사란 소녀와 같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혀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금언이 있다. 하버드의 정치학자 로스 테릴(Ross Terrill)은 The New Chinese Empire에서 중국이 국민통합을 위해 역사를 왜곡해 온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꼬집으며 이 말을 인용하였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한 가지 역사적 사실을 얼마든지 자신의 구미에 맞게 해석할 수 있다. 권력의 수요와 취향대로 소녀가 입는 의상, 즉 역사의 디자인과 색깔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이다. 티베트 손첸 감포와 문성공주의 결혼을 한쪽에서는 당 태종이 티베트 군사력에서 밀려 조카 딸을 보내 화친을 구한 것으로 보지만, 다른 한쪽에선 중국이 티베트를 부마국으로 삼은 것으로 보는 식이다.

대체역사는 자기 희망적 역사서술의 한 양태

한때 국내에서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적이 있었다. 실제 역사가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정하여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공상과학의 하위기법이라고는 하지만 이 또한 자기 희망적 역사서술의 한 양태다. 역사를 소급하면 우리에게도 이런 예는 많다. 임진록, 박씨전 등도 한 줌 '미개한 것'들에게 농단당한 분노를 삭여내려 했던 대체역사 소설의 좋은 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현실과 다른 소설 공간에서 억압된 역사의식을 배설하고픈 욕구를 가진 독자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 살아온 역사와 현재의 역사를 그만큼 고단하게 느끼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진(BC. 221) 이후 청의 멸망까지 중국사 40%에 해당하는 870여 년이 이민족 지배기였고, 한족(漢族)에 의한 통일 왕조 시기는 중국 전체 역사의 1/4 남짓하다. 중국 인구의 절대 다수를 점하는 한족이 혈통적으로 뚜렷한 공통성을 갖기 어렵다고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은 한족이라는 상상된 민족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고안된 이데올로기가 중화민족론,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등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변강·소수민족의 현실적인 문제가 겹쳐지면서 중국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그럼에도 역사가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해야 한다"는 랑케(Ranke)의 명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 제국에의 꿈을 하나씩 실현해 나가면서 우리를 압도해 오는 중국의 규모, 그리고 그것이 이끄는 역사의 기억을 심각하게 곱씹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중국이 일련의 역사 공정을 통해 역사주권을 침해하면서 욱일의 기세로 뻗어가는 중국의 애국주의·민족주의 또한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거대한 중국은 과연 한반도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일까? 그들과 평화로이 공존하는 방법은 없는가? 중국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성급히 그들을 규정하고, 그들의 행동과 정책을 예단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징비록

서애 유성룡 선생이 《징비록》을 마무리 한 것은 1604년이다. 그로부터 20년이 갓 넘어 조선은 정묘·병자호란이라는 파천황의 전화에 휩쓸리게 된다. 전쟁의 과오를 엄히 책하여 후일의 경계로 삼고자 했던 서애의 참절한 독백이 역사의 교훈으로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대체역사의 심리 공간 속에서 희구되었던 민중의 가녀린 소망 또한 무능한 지배층에 의해 무참히 깨져버렸다. 이런 허망한 반복 앞에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에 앞서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를 거듭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북경에서 서울은 때때로 워싱턴이나 도쿄보다도 먼 느낌이 든다. 역사적, 현실적으로 서로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의 시야 속에 한국은 쉽사리 상기되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국내에서 중국을 알아야 한다는 논의는 분분하지만 한국의 중국전문가(insider)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중국 지식인들의 쓴소리는 가시지 않고 있다. 실상 우리도 중국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알아야 한다. 아니, 알려야 한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또 한반도가 정상적으로 그 지정학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 동아시아의 평화가 깨졌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훌륭한 역사가는 미래를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콕스(Robert W. Cox)는 국제정치 이론을 비판이론과 문제해결이론으로 구분하고, 비판이론을 통해 대안적 질서를 고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비판이론이 철저한 역사적 이해에 기반하고 있고, 현존 질서의 영원함을 부정하듯 불가능한 대안 역시 부정하기 때문에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판의 칼날로 역사를 해부하고 사회과학적인 시각으로 있었거나 있을 법한 역사가 아닌 제3의 질서를 탐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북경대 특강

중국이 한국 왕들을 다루면서(dealing with) 제국의 길을 체득했다는 비아냥을 더 이상 듣지 않아야 한다. 또한 분단된 조국을 후손에게 물려주어 그들로 하여금 평화의 교란자가 되게 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틀과 미래에 대한 전략과 비전이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주체적 인식 없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대체역사는 우리가 도피하거나 자신을 은닉하는 공간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한 풍부한 상상력의 저수지가 될 때 그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사단이 벌어질 때마다 격앙된 감정을 분출해 내고, 이내 문제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행태를 반복해서는 곤란하다. 안으로는 도래하는 시대에 걸맞는 지정학적 정체성을 재구성해 내고, 밖으로는 세계에 우리가 동아시아 평화에 필수불가결한 행위자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각인시켜야 한다. E. H. 카(E. H. Carr)는 "훌륭한 역사가는 미래를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이다.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이다."라고 했다. 사실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현실에 대한 사회과학적 처방을 결합하고 오도된 역사관을 땅에 묻고 묘비명을 쓰자. "껍데기 역사는 가라. 새로운 '나'로 늠름한 역사를 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