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과 동아시아사연구포럼이 함께 주최한 국제학술회의가 11월 2일(금)과 3일(토) 양일간 연세대에서 '동아시아 문화 속의 중국'이라는 주제로 성황리에 열렸다. 지난 2008년 동북아역사재단이 주관한 국제학술회의를 모태로 창립된 동아시아사연구포럼은 "동아시아 역사 인식의 차이로 인해 발생한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서로의 의견을 나눌수 있는 소통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 따라 재단과 함께 매년 국제 규모의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왔다. 이번 회의는 그 다섯 번째 회의로, 국내외 학자와 전문가 등 총 40여 명이 발표ㆍ토론자로 참가하여, '한자(漢字)와 텍스트', '조공질서(朝貢秩序)', '인쇄매체와 중국 표상(表象)', '천하관(天下觀)의 관거와 현재' 등 주제를 중심으로 중국과 동아시아 각국의 상호 인식과 소통, 지역질서에 대한 인식과 전망을 둘러싼 열띤 논의를 진행하였다.
대국으로 굴기(屈起)하는 중국의 의미 분석
포럼 운영위원장인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개회사를 통해 회의 취지는 "대국으로 굴기(屈起)하고 있는 중국의 의미를 동아시아 차원에서 다시 묻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첫번째 기조 발표자로 나선 야마무로 신이치(山室信一) 교토대학 교수는〈만다라로서의 중국 : 일본에서 본 시선〉이라는 발표를 통해 "일본에 있어서 중국문화는 그 압도적 격차 때문에 강한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그 인력권(引力圈)으로부터 이탈하지 않는 한은 자기가 설자리마저 확정할 수 없어지는 외포(畏怖)의 대상"이었음을 전제하고, 근대 일본이 중국·조선 등을 멸시하고, 침략적으로 나서게 된 역사적 심리 기제를 '거리의 파토스'가 낳은 동경과 공포라는 2가지 모순된 개념으로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삼한 정벌론(三韓征伐論), 일본신국론(日本神國論) 등 당시 조선과 중국에 대한 일본의 근거 없는 우월의식은 바로 이와 같은 양가감정이 낳은 허구에 불과한 것이고, 이러한 동경과 외포의 굴절이 근대적 침략의 근거였다는 것이다. 야마무로 교수는 이러한 논지를 바탕으로 현재 대중정서와 분리된일본의 중국학 연구경향을 비판하면서,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에서 중국 연구를 제안하였다. 이어 발표자로 나선 우미차(吳密察) 대만 성공대 교수는 〈대만의 중국 문화〉발표를 통해, 대만 문화의 다양성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설명하고, 동아시아 문화의 다원성을 강조하였으며, 박찬승 한양대 교수는 〈18·19세기 조선의 중화론과 중국관〉을 통해 근대전환기 조선의 중국인식의 양면성을 제기하였다. 그 외 무라다 유지로(村田雄二郞) 동경대학 교수는 〈한자문화권의 동상이몽(同床異夢)〉발표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한자가 소통의 매개로서만이 아니라 소수민족 또는 주변민족에 대한 동화를 강요하는 등 억압적 기능도 작용하였다고 전제하고, 이른바 '한자문화권'이란 용어의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강조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조공질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토론
그러나 가장 논쟁이 치열하였던 주제는 '조공질서'를 둘러싼 논의였다. 모테기 도시오(茂木敏夫) 동경여대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조공질서의 실태와 그 화법〉을 통해 동아시아 전통 국제질서인 조공질서를 중화주의에 기초한 화이관(華夷觀)과 유교적인 덕치 이념에 바탕을 두고 중국 왕조와 주변국가, 지역, 사회 집단 간에 형성된 다양하고 유동적인 관계로서 설명하고, 일본과 아이누 또는 오키나와 사이의 관계 등에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것으로 이해한 반면, 장짱즈(張雙智) 북경사대 교수는 조공제도를 단순한 화이관, 중국중심주의라는 이념적인 산물이 아니라, 고대 중원 왕조가 자기방어를 위해 시행한 변경(邊境) 민족에 대한 정치적 행정적 관리 제도를 국제적으로 학장 적용하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전제하고, 지정학 또는 국제정 치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조공 체계를 설명함으로써 논쟁을 야기하였다.
그러나 논쟁은 치열하였지만, 근대 학문의 기초인 국가 건설 과정의 차이점과 현실인식의 차이점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접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진지한 논쟁을 통해 그 동안 계몽적 담론 차원의 동아시아 논의를 현실 인식 및 미래 전망을 고려한 학술 논의로 전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차기 개최지 상해로 결정, 회의의 제도화에 밝은 전망
전체적으로 이번 회의는 예년과 달리 뚜렷한 주제의식과 조직적 유기성을 제고하는데 역점을 두고, 회의 규모를 간소화하면서도 충분한 토론 시간을 배려하여 회의의 집중도를 높인 점, 개최 장소를 대학으로 옮김으로써, 회의의 개방성을 높힌 점, 그리고 차기 개최지를 상해로 확정함에 따라 북경, 서울에 이어 다시 해외 개최를 추진함으로써 회의의 제도화 전망을 밝게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많았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동아시아 귀환으로 지역질서의 불안정성이 뚜렷해지고, 각국의 영토와 역사를 둘러싸고 갈등 및 상대국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현재 동아시아의 현실을 감안하면, 역사학자들이 국경을 넘는 우의를 다지면서 역사화해와 평화의 동아시아 미래를 모색할 수 있는, 진지한 교류가 더욱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