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진정한 이유
과거가 아름답다면 좋을까? 물론 아름다울수록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에 대해 아쉬움을 해소하려고 과거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갖는 아쉬움 가운데 하나가 좁은 영토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래서인지 역사에서 넓은 영토를 차지한 임금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물론 우리만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도 이런 역사인식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는 감동과 교훈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감동은 과거의 영광, 교훈은 과거의 쓰라림을 말한다고 이해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이 감동으로 그친다면 곤란하다. 여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영광에 이를 수 있도록 한 원인과 과정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에 도움이 된다. 과거의 쓰라림을 창피하게 여겨 회피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 쓰라림을 다시 겪지 않도록 반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에서 과거의 영광에서 긍정적인 발전의 모습을 찾아내고, 과거의 쓰라림에서 부정적 모습을 극복하려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현실도피적인 인식만 남게 된다. 이것이 역사를 배우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인식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영광스런 시기는 언제였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은 광개토대왕 시기를 들 것이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을 알렉산더, 카이사르, 칭기즈칸 등에 견주면서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사실 그가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이 백제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위기를 큰아버지인 소수림왕이 수습한 것을 이어 받아 대제국으로 키워낸 것은 감동적이다. 이후 고구려는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던 수나라의 침입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수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수나라를 뒤이어 등장한 당나라의 공격을 물리쳐 중국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당태종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공격하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게 했을 정도여서 우리에게는 잊히지 않는 나라이다. 이런 고구려를 한낱 지방정권에 불과하다는 중국의 주장에 우리가 격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고구려를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에 추호도 의심을 품고 있지 않았던 우리들에게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고,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전쟁이 중국의 '내전(內戰)'이었다는 주장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에 넣은 이른바 '동북공정'은 명백히 잘못된 역사인식이다. 그렇다고 고구려가 차지했던 영토가 곧우리의 영토라는 생각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외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나라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지배하지 않은 적이 없는 나라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서로 최대의 판도를 자랑하던 시기의 영토가 현재의 영토라고 한다면, 아마 세계는 전쟁으로 이어져 끝날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구려의 영광을 대표하는 광개토대왕릉비문에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이 합리화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관(官)학자들이 경상도 지역에서 임나일본부를 실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유물과 유적을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
그런데 광대토대왕릉비문에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그가 정복한 국가의 세력을 과장하여 기록하였는데, 그 과장에 왜군이 포함되었고, 이것이 앞서 언급했던 일제의 관학자들에 의해 임나일본부설의 합리화에 활용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광개토대왕릉비문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동북공정과 임나일본부, 광개토대왕릉비문을 종합적으로 본다면한국, 중국, 일본 모두 최대 판도 또는 팽창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 천하관(天下觀)의 실제모습
고구려의 천하관이라고 표현하면 참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용어이다.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었던 중국과 대등한 인식을 갖고 있다니! 정말로 자랑스러운 고구려 사람들의 자부심이 아닌가! 그런데 신라가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면 주변에 있는 9개 나라가 항복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신라도 신라 중심의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제도 마찬가지다. 백제왕은 신하를 왕으로 임명한 기록이 적지 않다. 곧 백제왕은 제후를 거느린 대왕 또는 태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모든 나라는 그 나라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한 예로 세계지도를 보자. 우리나라에서 간행되는 세계지도는 우리나라가 중심에 있듯이 미국의 세계지도는 미국이 중심에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대등한 의식을 갖고 고구려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을 고구려가 실제로 중국과 대등한 관계였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 그것은 고구려가 경제적으로는 그리 발전한 지역이 아니라서 경제력으로 중국과 대등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고구려가 중국의 주변의 유목국가들이 차지한 지역을 점령하고 중국의 중원지역까지 공격하지는 못했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중국에 위협적인 존재로서 중국 팽창을 막는 역할까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가 고구려 사람들이 고구려를 천하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인식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해서 이것이 곧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비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그렇다면 우리가 광개토대왕릉비문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의 영광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고구려는 분명히 우리에게 영광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과거의 영광이다. 이런 영광의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략을 초기에는 물리쳤으나, 지속적인 그들의 침략과 신라의 뛰어난 외교에 적절하게대응하지 못하고 결국은 망하고 말았다. 여기에 고구려가 남긴 영광스런 감동과 쓰라린 교훈이 있다. 우리가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면서 고구려의 영광만 보지 말고 그 영광을 잃게 된 이유와 과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우리가 허허벌판에서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영광스런 현재를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거대한 몸집으로 중국이 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는 광개토대왕으로 상징되는 고구려의 영광을 주목하는 것만큼이나 지속적인 당나라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한 쓰라림을 겹쳐 볼 필요성을 갖게 한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지속적인 성공의 길을 가도록 말이다. 물론 이제는 과학과 기술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