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지난 11월 24일 재단은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해 《연행록(燕行錄)》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연행록》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답
최근 한중관계에 대한 한국 학계의 관심은 중국의 변화된 위상과 더불어 한중일 3국 간 역사문제의 파장 속에서 증가해 왔다. 특히, 한중수교 2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이와 관련한 학술대회들이 풍성하게 개최되고 있다. 연행록에 대한 정치적, 문화사적, 지성사적 재조명 또한 이러한 학계의 움직임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연행록은 당시 동북아 지역의 세계질서와 문명론 전개에 있어 중추 역할을 담당했던 청(淸)에 대한 다양한 서술과 정보를 약 2세기에 걸친 시차를 두고 기록한 1차사료이기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한국과 중국 학계 모두 이 시기 동아시아 및 동북아 정세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연행록을 새롭게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단 주최 학술대회와 관련하여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청사공정(淸史工程)에서 어떻게 연행록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동북공정에서처럼 역사적 문맥을 무시하고 자국에 유리한 방식의 현재주의적 관점에서만 연행록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한다면 이는 한중간 새로운 국면의 역사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방향의 실천적 대응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연행록의 텍스트성에 대한 보다 치밀한 연구이다. 저자들에 대한 분석, 즉 국가 권력 내지는 중앙정부와의 관계 등 이들이 당시 조선후기 사회에서 점하고 있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위치 등에 대한 심화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연행록 연구의 내연 확장을 의미한다. 또한 연행록 연구는 조청관계로 국한돼서는 안 될 것이다. 연행록에 등장하는 만주, 몽고, 티벳, 서역 등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비교사적 연구를 확대, 발전시켜 그외연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연행록에 나오는 중국, 중화, 중원, 문명, 세계 질서 등이 함의하는 당대적(當代的) 의미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학술 공간 조성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동시에 현재 동북아 지역에서 논의되는 정체성, 국경, 변경, 초국경적(cross-border) 문화교류 등 제 현안의 역사적 실상에 대해서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