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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역사 바로세우기, 고지도 연구에서 실마리 찾아야
  • 정리 ┃ 이윤정 작가

지난 1월 31일 동북아역사재단은 경희대 혜정박물관과 '동해·독도·동북아역사 관련 연구·교류협력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동북아역사재단 뉴스》에서는 김혜정 경희대 혜정박물관 관장과 이상균 독도연구소 연구위원의 대담을 통해 다양한 고지도 이야기를 비롯해 동해, 독도, 동북아 현안에 관한 의견을 들어본다. _ 편집자 주

김혜정 관장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관장이면서 고지도 및 고서 자료연구가이다. 재일교포 3세로 25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수집한 지도와 유물을 경희대학교에 기증하였다. 또한, 전시회와 세미나, 학회 활동 및 강연 등으로 동해, 독도, 북방영토 등을 내외에 알리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고지도의 매력과 유혹》, 《동해의 역사와 형상》 및 《SEA OF KOREA》, 《ANTIQUE MAPS & KOREA》 등으로 출간하여 동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였고, 우리 주변국과의 외교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근거 자료로 제공했다. 또한, 제주도에 지적 장애아를 위한 '사회복지법인 혜정원 아가의 집ʼ을 설립해 운영하고, 우리나라와 수교 이전부터 몽골을 출입하여 한·몽 간 교류추진에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경희대학교 석좌교수, 같은 대학 혜정문화연구소 소장 겸 혜정박물관 관장,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학회 회장, 사회복지법인 혜정원 아가의 집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상균 연구위원

한국교원대에서 <프랑스 지리교육>에 관한 연구로, 프랑스 껑(Caen)대학에서는 <한국의 지리교육사> 연구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는 <고지도의 지리교육적 활용방안(2004)>, <근대화 전후 도서지역 주민 생활권의 변화 : 안면도를 사례로(2008)>, <조선 전기 국농소에 대한 역사지리적 해석(2009)>, <프랑스 지리교육사 150년의 전통과 최근 동향, 그리고 전망(2011)>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프랑스 지리교육의 이해(2012)》가 있다. 현재는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에서 동해 독도 관련 고지도 연구, 표기명칭 조사연구, 한불학술대회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Q 이상균 혜정박물관은 국내 최대의 고지도 소장처로 알려져 있다. 언제부터 어떠한 연유로 고지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김혜정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 미술관을 즐겨 찾았다. 대학 때 학교 주변의 고서점에서 한 폭의 지도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시작인 것 같다. 그때는 지도도 그저 아름다운 작품으로 인식했는데, 지도 수집에 흥미가 생기며 모으다 보니까 1700년대에 서양에서 만들어진 지도에 내가 알고 있던 표기인 'Sea of Japan' 대신 'Sea of Korea'라고 쓰여 있었다. 일본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래서 호기심을 갖고 더 열심히 찾아 모으게 됐다. 고지도를 수집하면서 한국사와 한일관계사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해나가면서 이 지도들이 기초자료가 되어 한일관계뿐 아니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도 풀어나갈 수 있는 기초자료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그래서 더욱 고지도 수집에 매진해 지금에 이르렀다.

Q 이상균 고지도를 수집하면서 특별히 힘들었거나 보람을 느꼈던 일들이 있었다면 소개해달라.

A 김혜정 매번 보람을 느끼고 매 순간이 특별하다. 고지도 수집이라는 것은 앞이 안 보이는 상태로 길을 찾아 헤매는 상황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주로 고서점과 골동품점을 찾아다닌다. 발로 뛰어야 한다. 외국에 나가면 하루에 3만보를 걸을 정도로 샅샅이 훑고 다닌다. 이렇게 여러 번 하다 보면 곳곳에 친구들이 생긴다. 그리고 거기서 정보가 생긴다. 혼자서는 찾아낼 수 없는 것들을 친구들을 통해 친구들의 정보망을 통해 구하고 찾았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름답고 역사적 사료가치가 높은 것들을 많이 수집하게 됐다.

Q 이상균 현재 혜정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지도의 수량과 종류는 대략 어느 정도나 되는가?

A 김혜정 수량은 수 천점에 달하고, 종류로는 11세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다양한 동서양지도들이 있다. 11세기경에 만들어진 남아메리카 지도 중 가죽으로 만들어진 아즈텍 지도를 보면 1200년 전 남아메리카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유럽의 명문가에서 그려낸 지도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지도를 왕실의 주문을 받아 가문에서 그렸다. 그래서 그 사료들이 한층 더 귀하고 수집하기 어려운 것이다. 모든 지도들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은 바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다. 지도학, 지도의 발달사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귀한 지도로 우리 박물관의 자랑거리다. 그 지도 앞에 서면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Q 이상균 혜정박물관에는 고지도 외에도 다양한 유물 등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또한 어떤 동기로 그러한 것들을 수집하게 되었는가?

A 김혜정 보통, 사람들은 비싼 것이 최고의 사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역사적 가치를 들여다봐야한다. 대한민국, 내 나라와 그 이웃나라의 지도를 보며 변천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관계를 살펴야 한다. 비교문화적 차원에서 비교하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역사 연구가로서는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수집한 사료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도자기만 하더라도 다른 민속 사료를 전시할 때 같이 전시할 수 있는, 박물관학적으로 꼭 필요한 사료다 싶으면 수집해 전시한다. 그렇게 우리 선조들이 애용한 목가구들도 수집했고, 이중섭 화백 등 대표적인 미술가의 작품과 한문으로 쓰인 한서도 수집해 전시했다.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종합적으로 말하면 정체성을 되살릴 수 있는 자료들을 중점적으로 수집했다고 할 수 있다.

Q 이상균 과거에 만들어진 고지도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의미와 가치가 있을 텐데, 고지도가 가지고 있는 국가적, 학술적, 문학적, 박물관학적 의의와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김혜정 고지도는 한마디로 우리 영토의 역사를 보여준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 영토, 땅 때문에 옛 선조들은 전쟁을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지도를 연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뒤떨어졌고 우리의 영토도 되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배를 당하기도 했다. 지도를 정책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영토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고지도 등의 사료를 비교해봐도 우리 민족은 그 어떤 나라의 사람들보다도 뛰어난 두뇌를 지니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넘쳐난다. 하지만 그 뛰어난 머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앞으로는 달라야 한다. 영토의 증거물인 지도를 열심히 연구하고 각 학문의 기초자료가 될 수 있는 고지도를 소중히 여기며 여러 방면의 학문과 연계해 끊임없이 연구를 해나가야 한다.

Q 이상균 한일 간 독도문제는 여전히 쟁점이 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을 잘 아는 재일교포로서 오늘날의 독도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이와 더불어 동해/일본해 표기에 관한 해양명칭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A 김혜정 영토는 점유하고 있는 측의 땅이다. 독도는 우리 경찰이 지키고 있고, 소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살고 있으며, 휴대폰 통화도 가능하다. 독도은 우리 것이다.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야할 부분은 동해문제다. 1991년에 북한과 우리나라가 동시에 유엔(UN)에 가입했고 우리의 동해바다를 '동해'라고 쓴다고 합의해 92년에 국제수로국과 전 세계에 알렸다. 그런데 'East Seaʼ라는 표기는 방향성만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동해찾기 운동을 한지 20년이 됐다. 처음에는 2% 남짓한 표기율이 지금은 거의 30%가깝게 올라갔다. 하지만 'East Seaʼ 표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부터 우리 국민이 하나로 뭉쳐서 할 일은 역사성을 함께 표기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Donghae'가 우리의 국호에 해당되는 명칭이라는 것을 알고 널리 알리는 것이다.
우리의 집이 대한민국이라면 동해는 우리의 정원이다. 독도는 정원에 있는 아름다운 오브제다. 현재 70%가 '일본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일본은 "'일본해' 속에 '다케시마'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도발할 때 우리 국민이 흥분할 필요는 없다. 시마네현에서 떠들면 울릉도 군수가 항의 공문을 보내면 되고 일본 중앙정부가 떠들면 우리나라 외교부가 공문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다만, 그와 함께 관련된 사료(史料)는 끊임없이 수집해 내부적으로 연구하며 보존해 장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이상균 재일교포 3세라고 들었다. 언제, 어떤 계기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A 김혜정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에서 자랐고 일본에서 교육받았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때 초대받아 대한민국에 첫 발을 디뎠다. 그때만 해도 참 못사는 나라였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조차도 왠지 모르게 따스했다. 핏줄이 당긴다는 말을 그 때 실감했다. 사실 일본에서 지내면서 조선인이라고 따돌림을 당한다거나 열외로 내쳐진 경험도 없었는데, 혼자 가슴시려 한 적은 몇 번 있었다. 국가가 대대적으로 축하해주는 성인의 날, 기모노까지 입으면서 축하파티에 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다도를 공부해 사범자격도 소지하고 있지만, 정식 다도회에 가려면 기모노를 입어야 해서 더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때마다 '아, 나는 한국 사람이구나'를 느꼈다. 그래서 내 문화를 귀하게 여기고 싶었고 내 문화를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연마시키고 싶었다. 크게 유별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에서 살게 되면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외국에서 나고 자라서 더욱 애국심, 애족심이 깊어진 것 같다.

Q 이상균 '사회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고아원을 설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쉽지 않은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게 된 배경과 과정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A 김혜정 거창한 질문인데 대답은 전혀 거창하지 않다. 여자로 태어나 최고의 행복이 뭘까 생각하다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한 것이다. 소외받는 지적 장애아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거기서 내 아이들을 만나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되면서 행복을 느꼈다.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자랑스러운 자식들이 제주도, 몽골, 베트남에 많이 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Q 이상균 지금까지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뜻 깊게 생각하거나 독자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A 김혜정 최초로 몽골에 들어선 사람이고, 40대에는 몽골을 드나들며 몽골의 문을 열고 개척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몽골을 오가며 내 눈으로 보고 느낀 것들, 몽골 사람들과 대화한 것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찾아낸 것들을 풀어놓은 책이 작년에 출간됐다. 《초원의 나라 몽골을 가다》란 책을 몽골에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참고자료로 추천하고 싶다. 또, 역시 작년에 출간된 《고지도의 매력과 유혹》이라는 책도 추천해주고 싶다. 그동안 수집해온 지도를 통해 내가 발견해내고 느낀 것들을 하나의 줄거리로 만들어 펴낸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지도의 매력을 느끼고 역사를 바로 알고 바로잡는데 도움이 되는 기초자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Q 이상균 얼마 전 동북아역사재단과 경희대 혜정박물관 간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는데, 향후 양 기관이 어떤 내용의 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좋을지 의견을 말해 달라.

A 김혜정 많은 사료들을 공유해 동북아역사재단의 여러 연구원들이 다양한 연구를 시작하고 좋은 논문을 만들어 활발히 발표했으면 좋겠다. 박물관 측과 합동연구를 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혜정박물관의 귀한 사료를 외국에서 전시해 대한민국 사료의 수준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대한민국을 더욱 홍보할 수 있도록 재단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들을 같이 해나갈 때 협약 체결의 의미가 한층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 박물관의 원본 사료들을 재단 측에서 되도록 많이 영인을 해 양쪽에서 사료가 보존되고 연구할 수 있는 채널이 구축되길 바란다. 원본을 구하는 데는 노력과 비용이 많이 든다. 영인을 하면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 영인본도 얼마든지 좋은 사료가 될 수 있기에 더 늦기 전에 이러한 작업들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

Q 이상균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향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A 김혜정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사회복지법인 혜정원이다. 사회의 어머니가 되고 싶은 심정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대학을 설립하고 싶다. 나도 대한민국 어머니다. 교육열이 높다. 우리아이들이 대학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특수대학을 만들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싶다. 이것이 엄마로서 내가 할 일이다.
그리고 학자, 박물관 관장, 그리고 사료 수집가로서 할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단독 건물로 된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다행히도 경기도 도립박물관에 고지도 박물관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듣고 얼마 전 경기도와 양해각서(MOU)를 체결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기도민들은 경희대학교에 있는 자료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경희대에서는 경기도 측의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자료 수집은 한 사람만, 한 기관만 좋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눈들이 그 자료를 공유하고 많은 학자들의 심장을 뛰게 해서 그 결과로 아름다운 논문들이 발표되어야 한다. 그래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동북아역사재단, 경기도와의 MOU 체결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