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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Q&A
'다케시마의 날' 채택의 과정과 시사하는 의미,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자세는 무엇인가?
  • 정영미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일본이 지난 2월 22일 차관급 고위 당국자가 참석한 가운데 '다케시마의 날(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 기념 행사를 갖고 독도에 대한 야욕을 한층 노골화했다. 일본이 주장하는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채택의 과정과 시사하는 의미,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자세는 무엇인가?

첫 번째 '다케시마의 날'

2006년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 주최 첫 번째 '다케시마의 날' 행사가 개최되었다. 당시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정립기획단'의 '독도대응팀'에 근무하던 필자는 행사 동향 파악을 위해 그 전날 동료 두 명과 함께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요나고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도착하는 날에는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독도 시민단체 관련자 몇 명도 같은 비행기로 왔는데, 입국 신고 항목인 '체류 중 숙박지'를 기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국조사실로 불려가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약 3시간 가량 억류되어 있었다.
그 다음날인 22일 오후 1시부터 첫 번째 ''다케시마'의 날' 행사가 있었다. 당시의 언론 보도(2월 22일자 마이니치신문)에 의하면 행사에 참석한 시민은 250명이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을 큰 충격에 휩싸이게 하고 열린 행사로서는 너무 작고 초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행사 중의 휴식 시간, 한국 측 참석자들은 모두 경찰에 의해 격리 보호를 받았다. 행사가 재개되면 다시 행사장으로 인도받는 식이었다. 일본 정부 측 인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거리에서는 2월 20일부터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를 지키는 모임'이 가두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한국 언론 또는 시민 단체와 별다른 충돌 없이 행사가 종료되었다.

일본에서 '다케시마의 날' 이란?

'다케시마의 날'이란 1905년 2월 22일 일본 각의(閣議) 결정에 의해 당시 일본에서는 '량코도('Liancourt Rocks'를 일본어로 발음한 것)로 부르던 섬(독도)을 '다케시마(竹島)'라고 명명하여 시마네현에 편입시킨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2005년 2월 23일 시마네현 의회 의원 38명 중 35인이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안〉을 의회에 상정하였고, 3월 10일 총무 위원회를 통과, 3월 16일 시마네현의회 본의회에서 가결되어 3월 25일 공표되었다. 그리고 그 해 5월 24일 시마네현 의회는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도 만들었다. 연구회는 10월 25일 까지 제4차 회합을 가졌다. 또한 6월 27일에는 '다케시마 문제 관련정부 조직' 및 '다케시마 사료관 건설'을 제안하여 29일에는 중앙 정부에 요청하였고, 10월 7일에는 당시의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국방장관 및 요사노 가오루(與謝野馨) 자민당 정조 회장 등에게도 요청하였다. 그리고 역시 6월 27일, 시마네현 내 학교에서의 '다케시마 관계 역사 및 일본 고유영토론 교육, 다케시마 표기 중학교 교과서'를 '06년도 교과서로 채택할 것'을 제안하였다. 결과 9월 1일 시마네현 내 중학교 및 특수학교에서 사용될 공민교과서로써 '다케시마'라는 기술이 있는 동경서적이 채택되었고, 일부 학교에서는 지리교과서도 '다케시마'라는 기술이 있는 동경서적을 채택하였다.

제8회 '다케시마의 날'의 의미

2013년 2월 22일 제8회 '다케시마의 날'이 열렸다. 시마지리 아이코(島尻安伊子) 해양정책·영토문제 담당 내각부 정무관이 참석했다. 역대 '다케시마의 날' 행사 이래 처음으로 정부관료가 참석하는 행사가 되었다. 그동안 시마네현 출신 국회의원이나 '일본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 연맹'의 국회의원 등이 참석하기는 했으나 정부 관료가 참석한 적은없다. 시마네현은 제1회 '다케시마의 날' 행사 이래 계속 정부 관료의 행사 참석을 고대해 왔다. 그 소원이 이번 행사로 이루어졌다.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댜오위다오) 및 쿠릴 열도(일본명 북방 4개도) 문제를 다룰 영토전담 부서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을 내각관방에 신설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005년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정부에 요망한 후 9년 만에 역시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시마네현에게 있어 이번 '8회 다케시마의 날' 은 9년 전의 숙원을 풀게 된 그야말로 '뜻 깊고 즐거운. 행사일 것이다.

'다케시마의 날'의 진전 경과

시마네현 의회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를 제정하기 2년 전인 2003년 11월 15일, 시마네현에서는 '다케시마·북방영토 반환요구 운동 시마네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1988년부터 1997년 까지 5회 개최되었으나 이후 중단되었고, 2003년 ① '최근의 한국 정부의 '다케시마'의 국립공원화 및 우편번호 부여 움직임', ② '다케시마' 영토권 확립 시마네현의회 의원연맹 설립 등 '다케시마' 영토권 확립을 위한 여론 조장 ③ '전국적인 국민운동의 환기' 를 목적으로 다시 열린 것이다. 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포함한 '다케시마 영유권 반환 운동'은 역시 러시아와의 영토분쟁 대상인 '북방영토'에 대한 국민적 반환 운동과 연계되어 있다. 1960년 일본 미야기현에서 북방영토문제를 다루는 조직인 현민회의가 결성 되었다. 그리고 이 회의는 20여년간 다른 현의 현민회의로 확산되었고 마지막으로 1987년 시마네현에서도 결성되어 1988년 '다케시마·북방영토 반환요구 운동 시마네 대회'가 개최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1975년대에 들어 국민적 차원의 '북방영토' 반환 운동이 고조되었다. 각종 시민 단체에서 '북방영토의 날 제정'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1980년에는 '북방영토의 날 제정'을 포함한 '북방영토 문제의 해결촉진에 관한 결의'가 시민 단체는 물론 전국 지자체 차원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일본 정부는 '북방영토의 날' 제정 검토에 들어갔으며, 1981년 1월 6일 '매년 2월 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정하는 각의 결의'가 행해지게 되는 것이다. 시마네현의 '다케시마 영유권 반환 운동'과 '다케시마의 날'은 '북방 영토 영유권 반환 운동' 과 '북방영토의 날'이 걸어간 길을 열심히 쫓아 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한국과 일본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 영유권 관련 활동의 주요 대상은 자국민이며 자국 정부이다. 여기에는 '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일본 국민은 거의 없었다, 라고 하는 국내적 배경이 깔려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주 작은 아이라고 할지라도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일본에서는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국의 어느 누구도 독도가 한국 땅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독도 관련 활동은 누구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가? 그 첫째는 일본인이며 다음은 제3국 사람들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 부처는 물론 지자체, 교육 기관, 시민단체 등이 추진하고 있는 독도관련 홍보·교육프로그램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이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이것을 지키기 위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는 국민에게 독도 영유권에 대해 홍보하고 교육시키기 위해 수 많은 액수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이 국가 차원의 '북방영토의 날'과 같이 되지 않게 하려면 먼저 한국에서의 독도 관련 활동을 다각도로 재검토 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