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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려되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와 한일관계
  • 하종문 한신대 교수

3월 말 혹은 4월 초 어느 날, 우리는 또 일본발 역사교과서 홍역을 치러야 한다. 지금껏 몇 차례인가 싶어 되새겨 보니 세기가 바뀌던 무렵부터 거의 연례행사 격이다. 그 동안 이런저런 처방전이 강구되었건만 증세는 악화일로다. 역사를 왜곡하는 바이러스는 날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게다가 이번 상대는 역대 가장 우파로 지목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다. 2013년의 싸움에 직면하여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맞서야 할까?

올해 일본의 초등·고등교과서 검정결과 예상

올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와 초등학교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발표된다. 고등학교의 경우 작년 상황이 결과 예측에 참작이 될 수 있다. '새역모'의 고등학교 버전인 메이세이샤(明成社)의 《최신 일본사》는 작년에 검정을 통과했는데, 그간의 왜곡된 기술에 큰 변화는 없다는 것이 중평이다. 외견상으로 논란의 불씨는 역사 분야에서 영토 즉 독도 문제로 확대되는 형국이다. 검정을 통과한 지리역사과, 공민과 교과서 39종 중 21종이 독도 문제를 기술했고 새로 3종의 교과서가 가세했기 때문이다. 2011년의 중학교 교과서에 이어 독도 관련 기술이 증가한 데는 개정된 〈학습지도요령〉과 〈해설서〉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2008년의 〈중학교 학습지도요령〉은 '일본 고유의 영토'와 '현재 영토 분쟁이 있는 지역'을 가르치도록 규정했고, 이듬해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도 중학교에서 배운 내용의 심화를 지시했다. 사실 이런 변화는 2006년 12월, 1차 아베 내각이 애국심 교육을 강조하며 교육기본법을 개악한 시점에서 충분히 예고된 바였다. 당시 일본의 시민단체는 애국심 교육을 담은 교육기본법이 성립되면 "교과서는 모두 '새역모'와 같은 내용으로 되고 만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아베 정권이 흩뿌린 바이러스는 착실히 감염 구역을 넓혀 왔다.

독도 문제에 이어 일본의 역사인식도 주시해야

하지만 곧 터질 교과서 소동에서는 독도 문제에 더해 오랜 '단골'인 역사인식 쪽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작년 고교 교과서 검정 발표 직후인 4월 10일, 자민당의 문부과학관련 의원과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이하 '역사 모임')의 합동회의가 열렸다. 아베 신조 이하 우파 정치인은 문부과학성 관계자를 불러 호된 질타를 가했다. 아베는 직접 담당자를 향해 일본군 '위안부'가 '동원되었다' 혹은 '끌려 나갔다'는 기술에 대해 아무런 수정 지시가 내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궁했다.

"내(아베 신조)가 수상이었을 때 '소위 종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는데, 대체 언제 변경된 것인가? 왜 (정부 답변을) 무시하느냐?"는 논조였다. 담당자의 답변이 불명확했던지 아베는 "그런 답변이라면 애초부터 안 하는 게 낫다"는 질책을 던졌고, 다른 의원의 입에서도 "수상의 의견보다 검정관의 의견이 중요한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객관적인 연구의 성과가 아니라 수상의 개인적 역사인식과 평가가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곡학아세(曲學阿世)이다. 위 회의에서 역사학은 죽었다. 건전한 상식마저 실종된 정치 논리의 괴물만이 배회한다. 그런 아베와 그 동조자들이 작년 12월 일본호의 새 조타수가 되었다. 위 회의에 참가한 '역사 모임'은 일찍이 새역모의 배후 단체로 꾸려져 아베가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으며, 현 아베 내각의 실세가 대거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고문인 아베는 수상이며, 회장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는 국가공안위원장, 간사장 시모무라하쿠분(下村博文)은 문부과학상을 꿰찼다.

곧 있을 2차 고교 교과서 검정 발표는 전임자인 노다 정권 하에서 진행되었기에 직접 관여는 불가능했을 터이다. 하지만 작년 문부과학성의 검정 담당관을 불러 서슬 푸른 기세로 역사왜곡을 압박하던 발언들을 떠올린다면, 식민지배,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난징대학살 등등의 해묵은 쟁점에 관한 기술이 어떻게 뒤틀렸는지를 차분히 돌아볼 일이다. 아울러 검정 발표 후에 아베 정권이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이웃 나라의 이의제기에 대해 어떤 논리를 내세우고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하게 살펴야 한다. 교과서 검정에 관한 한 전 후 최강의 우파 아베 내각의 본모습은 내년 이후 본격적으로 발휘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나쁜 행위'가 인류사의 공공의 적임을 알려나가는 데 힘써야

이번 검정에서도 독도 문제는 뜨거운 현안으로 부상할 것이다. 기왕의 검정 경과를 보면 '우리나라 영토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등의 수정 의견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개입하여 기술 수정을 유도해 왔고, 이번도 그 연장선이 될 것이다. 하지만 2013년 전투는 물론 향후의 대응 태세와 관련하여 독도와 역사 현안 간의 강약을 조절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최근 정황을 보건대 독도의 과도한 언급은 보통의 일본인으로 하여금 독도 침탈이 식민지배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왜 남의 일에 간섭하나'라는 일종의 '원초적' 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곤 했다. 결과적으로 자국의 역사왜곡을 성찰하고 성토하는 좋은 일본인의 목소리와 활동은 미약해지고 위축된다. 우리가 일본의 독도와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최대 근거는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배의 극복이 인류 보편의 과제라는 데 있지 않은가. 우리의 문제제기가 제3자에게 그저 한국과 일본의 내셔널리즘의 충돌로 비쳐진다면 역사화해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미국 하원의 결의를 비롯하여 전세계의 공감을 얻게 된 것은 '제국주의 일본'을 포함하여 세계 각지에서 벌어졌던 '전시(戰時)여성 성폭력'의 고발과 해결 노력과 맞닿아 있었던 점이 지대하다. 이제는 '나쁜 일본 두들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의 나쁜 행위'가 인류사의 공공의 적임을 자각하고 알려나가는데 힘써야 한다.

2013년은 우리의 목표를 바꾸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의 분노를 어떻게 하면 더욱 키울 수 있는가에서 우리의 분노의 날을 어떻게 하면 더욱 날카롭게 세울 수 있는가로 말이다. 거기에 독도와 역사왜곡을 치유하는 항구적인 백신이 있을 성 싶다. 모름지기 역사왜곡의 해결과 역사화해는 좋은 한국과 좋은 일본의 '윈-윈'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