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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울릉도 연구 및 17세기 한일관계 연구의 중요한 자료《울릉도, 독도 일본사료집Ⅰ》 발간
  • 윤유숙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1693년, 울릉도에 출어 중이던 조선인 두 명(안용복과 박어둔)이 울릉도에 온 일본인들에 의해 일본으로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본인들은 돗토리번(鳥取藩) 요나고(米子)에 거주하는 상인의 선원들로 매년 울릉도에 와서 어획활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조선인 두 명은 쓰시마번(對馬藩)에 의해 무사히 조선으로 귀국했으나, 울릉도와 관련된 외교문서의 교환을 놓고 조선과 쓰시마번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조일 양국 간에 새삼 울릉도의 영속(領屬) 여부가 외교문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과거 조선에서 '울릉도쟁계(鬱陵島爭界)'라고 불리던 이 사건을 전근대 일본에서는 '다케시마잇켄(竹島[울릉도]一件)' 또는 '겐로쿠다케시마잇켄(元祿竹島一件)'이라 칭하였다.
이후 조선과 쓰시마번 사이의 외교교섭은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나,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조사를 병행하던 막부가 1696년, 그간 울릉도에 도해(渡海)하던 돗토리번 초닌(町人)의 울릉도 도해를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러한 막부의 결정이 쓰시마번을 통해 조선에 전달됨으로써, 조선과 일본 간에 울릉도의 소속을 둘러싸고 시작된 수년간의 외교교섭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17세기 말 일본 측의 '울릉도쟁계' 관련 사료 수록

이 책은 17세기 말의 '울릉도쟁계'에 관한 일본측 사료 4편을 수록하였다. 수록된 4편 모두 쓰시마번 종가기록(宗家記錄)으로, 서로 내용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역주에서는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사료와의 연관성에 관해서도 언급하였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쓰시마번 종가기록(宗家記錄)으로 '울릉도쟁계' 관련 기록류를 집대성한 《죽도기사(竹嶋紀事)》와 중복되는 부분에 관해서도 역주에서 언급하여 사료의 이해를 도왔다. 《원록육계유년죽도일건발서(元祿六癸酉年竹嶋一件拔書)》는 1693년 일본의 안용복 납치 사건에서 시작해서 죽도(竹島) 도해에 관한 막부의 최종 의사가 조선에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이 압축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죽도 도해 건에 관해서 대마번 내에서 작성된 기록들 중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된 사료들을 발췌하여 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세한 의견교환 부분은 생략되고 핵심 사안만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 난해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나머지 3편의 사료 내용과 대비하면서 보면 울릉도쟁계의 이른바 '다이제스트판'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나바노쿠니에 조선인이 도해한 사건과 관련하여 분고노카미님께 문의한 내용 및 회답, 기타 전말에 관한 기록(因幡國江朝鮮人致渡海候付豊後守樣ヘ御伺被成候次第幷御返答之趣其外始終之覺書)》은 1696년 안용복의 2차 도일(渡日) 시에 막부가 그의 처리를 둘러싸고 돗토리번, 쓰시마번과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정한 목적 하에, 그것도 정식 외교 통로를 거치지 않은 채 일본에 건너 온 조선인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를 어떤 방식으로 귀국시킬 것인가 하는 과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하고 결정사항을 지시하는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안용복의 두 번째 일본행에서 그의 귀국이 1차 도일 때와는 상이한 행태로 추진된 원인을 파악하기에 적절한 사료로 판단된다.

《역관기(譯官記)》는 1696년 대마도에 건너간 문위행(問慰行)에 관한 기록이다. 같은 해 안용복이 8월 무렵 돗토리번에서 강원도 양양현으로 귀국한 후 문위행은 대마번주(對馬藩主) 소요시츠구(宗義倫)의 서거에 조의(弔意)를 표하기 위해 도해하였다. 관례적인 접대의례가 거행되는 과정에서 쓰시마번은 문위행 일행에게 일본 내에서 안용복의 2차 도일을 어떻게 인식하고 처리했는지에 관해 전달했다. 그리고 죽도 도해의 건에 관해서는 금후 일본인의 죽도 도해를 금하기로 했다는 막부의 의사도 통보했다. 여기에는 죽도가 이나바(因幡)·호키(伯耆)에 속하지 않는 섬이라는 중요한 언급이 등장한다.

《죽도기사본말(竹島紀事本末)》에는 울릉도쟁계와 관련된 조일교섭의 진행 상황과 더불어 양측의 외교문서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 사료에는 1693년 안용복의 일본 연행부터 조선정부가 보낸 죽도사서(竹島謝書)에 대한 소 요시자네(宗義眞)의 답서(1699년)까지 수록되어 있으며, 울릉도쟁계의 결과에 관한 저자의 비평이 마지막에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말미에는 '고이(攷異)'라는 항목을 두어, 본 사료가 '다른 본(本)'과 상이한 부분을 상세하게 열거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저자는 복수의 기록류를 바탕으로 하여 이 사료를 편찬한 듯하다. 울릉도쟁계의 전개과정에서 쓰시마번이 어떤 의도로 임하였는지가 사료 곳곳에서 묻어나오며, 일반적인 종가기록이 소로분(候文)의 형태인 반면 이 사료의 경우 한문체(漢文體)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향후 독도·울릉도 연구 및 17세기 한일관계 연구의 중요한 자료

이 책은 초서체로 기록된 에도시대 일본의 고문서를 탈초하고 여기에 번역과 주기(註記) 작업을 거쳐 완성되었다. 무엇보다도 에도시대의 고문서는 현재 사용되지 않는 과거의 문어체이기 때문에 그 난해함으로 인해 에도시대 연구자들조차 완역서를 출간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사실이다. 번역상의 오류나 체제상의 미비점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일본 고사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의 독도 연구가 진전되는데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이 향후 독도·울릉도 연구는 물론 17세기 한일관계 연구에도 적극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