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월)에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3일 후인 지난 2월 28일(목)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있었던 학술회의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에 개최된 국제회의였다. 거기다 제목이 '일본 신정권의 등장과 한일관계 전망'이었으니, 이는 작년 12월 26일에 출범한 아베 2차 내각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과 향후의 양국 관계에 대한 것이다. 한 쪽(일본) 정부는 출범한 지 2달, 그리고 다른 한 쪽(한국) 정부는 3일 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양국관계를 전망한다고 하니 발표자들의 고충은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학술회의가 가능했던 것은 '한일관계에 대한 높은 국민적 관심'과 '양국 관계의 역사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8월 10일, 이명박 前대통령의 독도방문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온탕에서 냉탕으로 바뀐 이후, 아베(安倍晋三) 내각의 출범은 양국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더욱 어둡게 한 만큼, 대한민국 새로운 정부의 출범은 향후의 양국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계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되어 온 양국 관계가 가진 역사성이야말로 발표자들로 하여금 양국관계의 미래를 가늠해 보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는 총 3개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세션은 아베 내각의 성격 규정에 대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부르는 일본의 우경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두 번째 세션은 아베 내각의 대외 정책, 즉 미일관계, 중일관계 및 북일관계를 분석하였으며, 또한 일본 정치지형을 이루고 있는 정당들의 대외정책 비교도 포함시켰다. 마지막 세 번째 세션은 한일관계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으로 양국 정부가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정책 경향을 예측한 다음, 이를 기초로 양국 협력을 위한 정책들을 제안하였다.
아베내각 우경화인가? 보수화인가?
첫 발표를 맡은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최근의 일본사회에 대해 "우경화보다는 보수화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보수화의 성격을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화한 것이라는 점, 둘째는 전전으로의회귀가 아닌 이상 우익과도 구별을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일본사회 전체의 우경화가 아니라는 점, 마지막으로 최근의 시대적 조류일 뿐 불가역한 방향성을 가진 것으로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서 발표에 나선 노나카 나오토(野中尙人) 일본 가쿠슈인대 교수 또한 보수화에 동의한다. 아베의 자민당 강령(綱領)을 보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보수주의이며, 자민당 자체가 변하지 못한 보수정당"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더구나 사회적인 면에서 일본전체는 우경화한 것이 아니라 결정하지 못하는 정치, 합의만 있고 리더십은 없는 정치에 대한 불만을 선거결과에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어 발표자로 나선 필자는 집단적 자위권의 허용에 대해 "일본이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자랑해 온 평화주의와 반군사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반군사주의의 포기가 보수화일수는 있으나 우경화와 우익정책을 말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사회에 대한 평가는 불과 한두 달 전의 평가와는 사뭇 다른 감이 없지 않다. 박철희 교수 자신도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의 공약에 대해 우익이라 부를 수 있는 정책들을 하나도 하니라 수십 개 담고 있다고 한 적이 있다. 또한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헌법 개정이나 영토정책 등은 우익이라 할 수 있지만,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현실주의적인 정책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라고 제안했었다. 그런 점들을 되돌아보면 아베 내각에 대해 보수 내각이라는 그 날의 평가는 지난 두 달간 보여준 실제 정책집행을 반영한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사실상 디플레로부터의 탈출과 경기 부양에 거의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으며, 영토·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공약 실시에 머무르고 있다. 거기다 한일관계 뿐 아니라 영토갈등이 거의 매일 진행되고 있는 일중관계 마저도 관계개선의 시그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참의원 선거에 승리한 후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고, 교과서 관련 정책의 변화가 시작되고, 자위대 관련 정책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보수화라는 규정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전 포인트라 하겠다.
미·일의 대중국 동상이몽
두 번째 세션에서 미일관계에 대해 발표한 손열 연세대 교수는 아베 정권의 정체성에 대해 국수주의적인 면을 시사한다. 아베 총리는 민주당 시기에 훼손된 미일관계를 복원하는 것을 외교의 근본을 삼고 있다. 이를 위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과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문제를 조기에 마무리 지어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TPP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 반대가 만만치 않다는 점, 오키나와 기지 문제는 민주당이 보상을 약속하지 않아서 실행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두 가지 모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아베 내각은 미국과 의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에 대항하고자 한다. 그러나 향후 10년 중국과 미국은 서로에 대한 협력을 위주로 하는 정책을 주로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은 강한 일본의 역할분담을 기대하면서도 말려들기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입장이다. 손 교수는 일본의 안전을 위해서는 아시아 다자외교와 다양한 양자외교를 복합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아베 정권의 성격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오사와 분고 마이니치신문 편집위원과 기미야 타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오사와 위원은 북한의 지도부가 가진 미국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루마니아의 차우체스쿠 정권의 붕괴와 이라크, 리비아의 지도자들의 파멸 등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에 대한 경제심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베 정권은 목전의 미사일와 핵위협에 대해서는 강경대응을 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대화와 접촉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유도하고, 그 속에서 납치문제을 해결하려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런가 하면 기미야 교수는 북한문제에 대한 한일협조속에서 한일양국의 접점을 찾고 상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양국관계 개선으로 나아갈 것으로 주장하였다.
향후 5년의 한일관계 : 양국의 미래, 어디로 갈 것인가?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해 세종연구소의 진창수 박사는 몇 가지 구체적인 정책안을 제시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한일워킹그룹을 창설하여 해결책을 모색하고 이 워킹그룹을 제3기 한일역사공동위원회에 포함시킬 것, 그리고 그 역사공동위원회의 권고 사항이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강제성을 부여할 것을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제안한 것이 동북아 역사재단을 개편하여 독일의 미래재단과 같은 기능으로 강화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즉, 동북아 차원의 화해와 교육, 배상을 함께 진행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하여 동북아역사재단이 양국차원을 넘어 동북아 차원에서 과거사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의 학회는 한일관계와 관련해서 한일 양국의 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한 회의였다고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청중들이 관심을 표명하였으며 많은 미디어의 관심을 모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바로 다음 날이 3·1절이었던 만큼 언론매체들의 인터뷰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양국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양국관계 개선을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한 회의였다. 그날의 뒤풀이에서 어느 일본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과 같이 얘기가 진행될 수 있다면 한일관계는 잘 풀릴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