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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시아의 미래와 한국의 역할
  • 박진 한국외대 석좌교수

21세기에 세계의 중심은 빠른 속도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의 ASEAN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경제 규모는 이미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을 능가했으며, 중국 경제는 2030년대에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최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심에 위치하여 강대국과 약소국,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을 연결하는 교량역할을 하면서, 아시아의 선도적인 중견국가(Middle Power)로서 남북 분단과 고령화 사회의 도전을 극복하고, 아시아의 미래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크다. 특히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지역협력과 통합, 민주주의와 인권, 녹색성장, 그리고 문화소통 등 다섯가지 중요분야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경제발전 등 5가지 분야에서 한국의 적극 역할 기대

첫째로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 당면과제는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이다. 이를 위해서 각국은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영토를 늘리고, 개발지원을 필요로 한다. 한국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경제발전국으로써 역내 자유무역과 투자를 촉진하고 개도국의 개발을 지원하는 역할을 계속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로 아시아의 지역협력과 통합을 위한 프로세스도 진행되고 있다. 비록 유럽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동남아의 ASEAN을 비롯하여 동북아의 한중일 삼국협력체제, 그리고 ASEAN+3, ASEAN+6,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지역적 협력의 범위와 깊이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협력을 촉진하고 지역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 기여하고 있다. 한국은 적어도 2030년경에는 한반도에서 냉전의 마지막 유물인 남북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한 경제공동체를 통한 국가통합을 사실상 성취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셋째로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도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정치 체제와 이념이 서로 다를지라도 예외 없이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인권을 지향하고 있으며, 특히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의 발달로 실시간 소통에 의한 ‘디지털 민주주의(Digital Democracy)'현상이 일상화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아시아에서 가장 활력 있는 정치민주화를 성취한 나라로써,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고, SNS가 가장 발달돼 있으며, 최근에는 활발한 ‘경제 민주화' 논의를 통해 성장과 복지를 아우르는 선진국가의 길을 가고 있다.

넷째로 녹색성장은 아시아의 미래와 직결되어있는 도전이자 기회이다.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의 강국과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은 국가정책차원에서 탄소감축과 신재생에너지개발을 추진하고 있고, 글로벌 기후변화에 대응한 친환경정책도 채택하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녹색성장의 촉진자로써 기술혁신을 통한 녹색경제 추진과 안전한 원자력산업의 발전을 통한 녹색에너지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의 미래를 위한 문화소통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시아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와 관습의 벽을 넘고 "아시아적 가치"를 공동체 발전을 위해 승화시키고, 아시아 시민으로써 건전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은 지역을 넘어 지구촌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는 길이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의 문화강국으로써 "한류"(Korean Wave)라는 매력적인 소프트 파워를 통한 글로벌 문화소통과 함께 21세기 다문화사회를 열어가는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북한은 선군 정책보다는 남북한 경제 협력으로 방향 돌려야

앞으로 북한의 미래는 군비증강을 통한 선군정치보다는 당면한 인민들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식의 개혁, 개방을 추진 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북한의 점진적인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베트남식 경제발전모델이 의미가 있으나, 실제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남북 간의 경제교류와 협력이다. 한국입장에서도 미래 한반도통일을 생각할 때 북한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보다는 남북 간 경제협력을 통해 무역과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로 개성공단이 폐쇄된 것은 북한스스로 남북협력의 유일한 창문을 닫는 것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 경제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다. 남북한의 미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기위해서는 북한이 위험한 핵개발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선택 할 수 있도록 꾸준한 인내심과 원칙을 가지고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현재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강력한 억지력과 적극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의 기반을 닦으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 경험을 원용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추진

20여 년 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급속도로 이루어진 독일통일의 모델이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북한은 서로 동족간의 전쟁을 치렀고 아직도 60년이 지나도록 휴전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더구나 북한은 핵개발을 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북한에 에너지와 식량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독일의 경험을 되새겨볼 때 다음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 간에 꾸준한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평소에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북한이 스스로 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북한주민 스스로가 억압과 통제보다는 자유와 통일을 선택해야 하며, 이를 위해 외부정보의 유입, 인도적 지원, 인권개선 정책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우리는 예기치 않은 시점에 찾아 올 수 있는 남북통일의 기회의 창문이 열리는 것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를 압축적으로 경험한 한국의 독특한 역할은 아시아의 미래성장과 발전 및 평화와 번영을 위해 앞으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단, 동북아의 역사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주도해야

물론 아시아의 미래가 반드시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아시아 개발은행 (ADB)도 지적했듯이, 아시아가 향후 발전과정에서 중국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2012년 유럽에서 시작되어 미국, 중국 등 전 세계를 강타한 유로존 위기(Eurozone Crisis)는 아시아 지역 경제에도 큰 파장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점점 심각해지는 환경오염, 물부족, 에너지부족, 빈부격차 등이 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의 경제가 당분간 성장의 동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자유무역과 내수확대 그리고 산업기술의 혁신을 통해 아시아 경제는 세계경제의 활력을 되찾게 해 줄 성장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은 중장기적인 도전요인들을 극복해 가면서 공통의 가치와 행동규범을 만들어내고 상호 문화 소통을 통해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경제발전과 정치 민주화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자유무역과 투자의 틀을 확대하고, 남북한 평화통일을 성취하여 동북아에 새로운 역사를 열고, 다문화 사회 속에서 아시아의 협력과 통합을 이끌어가는 선진 문화강국으로서 맡은바 사명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에 동북아역사재단의 역할과 기능은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동북아시아의 과거를 직시하고 갈등과 분열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여는 것은 아시아의 미래발전과 번영에 직결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