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보고서
한·일 역사인식의 공유를 위한 작은 실천
  • 장대수 대구 시지고등학교 교사, 한일공통역사부교재 제작팀

최근 대구와 히로시마에서는 역사교사들이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라는 한일 공통의 역사 교재를 출간했다. 양국 교사들은 3월 29일 서울에서 공통 역사 교재 발간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교재 집필에 참여한 대구의 한 교사로부터 제작과정에 관한 체험담을 받았다. -편집자 주

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대구에서 두 명의 역사교사가 이번 작업이 '주말에 동원되는 마지막 봉사'이기를 바라며 KTX를 타고 상경해 휴머니스트 출판사를 방문했다. 양국의 집필진이 대구에서 6번, 히로시마에서 4번 열린 국제회의를 통해 최종 원고를 만들어 편집 작업에 들어간 지 1년 반, 이후 진행된 편집 과정에서도 수많은 내용 수정이 이루어졌고, 드디어 마지막으로 양국 이메일로 오간 최종 수정 사항을 반영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7년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책이 바로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일본어판 제목 「배움으로 이어가는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学び、つながる日本と韓国の近現代史)」)이다.

후소샤 역사교과서 왜곡을 계기로 공통교재 제작팀 발족

'한일공통부교재 제작'을 위해 대구팀이 만들어진 것이 2001년 9월 11일이었다. 그해 봄 일본에서는 후소샤 출판사판 역사교과서 왜곡이 이슈가 되었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왜곡 교과서 비판과 함께 교과서 채택 저지운동이 일어났다.

그해 8월 전교조 대구지부와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 대표가 단순히 왜곡된 교과서 채택 저지에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공통부교재를 만들어 양국의 학생에게 평화와 인권 교육을 하기로 합의하고 의정서를 맺었다. 그 내용을 실천하기위해 대구팀을 꾸리던 날, TV에서는 9.11테러가 보도되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한국과 일본에서 출판된 직후에도 동북아 지역에는 전쟁의 위기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한 동안 장식했다.

프로젝트 팀은 2002년부터 시작해 7번의 국제회의를 거쳐 2005년에 첫 결과물로 「조선통신사-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과 우호의 조선통신사」를 출간했다. 임진전쟁을 서술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비중은 전쟁에서 대전환해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12회에 걸쳐 파견된 조선통신사였다. 500여 명의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에 머무는 6개월 동안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바쿠후(막부)와 갈등도 있었지만, 이 시기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평화와 소통의 시기였다. 한일의 양 집필진도 동지라는 믿음과 처음 해보는 공통교재 서술이라는 설렘, 그리고 두 나라 학생들에게 평화로운 외교의 모습을 동일한 교재로 가르칠 수 있다는 신선한 느낌을 지니고 일을 해나갔다. 이 활동의 결과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에 이루어진 '첫 공통교재 출판'이라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근현대 시기 다룬 공통역사책 제작원칙 합의

그리고 이어 2006년부터 두 번째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근현대 시기를 다룬 공통의 역사책을 만들기로 합의했고, 몇 가지 먼저 원칙을 재확인했다. 첫째, 국가와 민족을 넘어 객관적으로 역사 사실을 다룬다. 둘째, 지역을 중시하고 민중의 시각으로 교재를 만든다. 셋째, 당시 인물들의 삶과 생활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관점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 그 사이의 역사」에서는 자국 중심주의나 자민족 우월주의를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대구와 히로시마의 지역사를 서술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한국사' 교과서에 일본이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한국의 통치권을 장악해가는 과정만 서술되어 있지만, 이 책에는 통감부 설치와 함께 13개 지역에 이사청을 설치해 지방의 통치권을 장악해가는 과정을 좀 더 상세히 서술했다. 3월 8일에 일어난 대구의 3.1운동에서는 대구 신암선열공원에 무덤이 있는 김태련과 김용해 부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실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려상호 씨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의 삶을 많이 담았다. 본문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과 도판 자료도 많이 싣고자 노력했는데, 대구의 미나카이 백화점, 성현터널 공사장면, 대구지방법원의 창씨개명 촉구 전단, 전쟁에 동원된 일본 학생들 모습, 히로시마의 조선인들 결혼식 장면, 미쓰비시 징용 노동자의 징용영장, 협화회 회원증, 원폭 피해 당시 히로시마 전경 등 평소 접할 수 없던 사료를 담았다. 특히 해방 이후 일본 경찰이 조선학교를 폐쇄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을 내쫓는 사진을 보면 가슴 찡한 느낌이 든다.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에서는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과 한국의 식민지 지배가 중심이다. 제작팀은 두 나라 학생의 역사 이해 정도를 확인하기위해 설문 조사를 했는데, 상대 나라의 역사에 대해 "많이 모른다"라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 학생의 70%가 명성황후를 모른다고 답했으며, 심지어 31%의 일본 학생이 '20세기 초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지배하였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답했다. 이러한 근현대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깨기 위해 집필진은 이 책을 '개항과 근대화', '침략과 저항', '식민지 지배와 독립운동', '전쟁에서 평화로'라는 4개의 부(部)로 나누어 구성하고 역할을 분담해 원고를 써나갔다. 서로 상대방 학생들에게 자기 나라의 역사에서 꼭 가르치고 싶은 내용을 서술했는데, 글을 쓰고 검토하고 분량을 조절하고 내용을 수정하는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원고는 개인의 글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공통의 원고가 되었다.

역사인식 차이로 인한 갈등 없었던 첫 출간물일 듯

지금까지 한일 또는 한중일 3국이 공동 작업으로 출간한 역사책이 10여 권에 이르지만, 아마도 역사 서술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사인식 차이로 갈등을 겪지 않은 경우는 이번 책이 처음일 것이다. 두 나라 집필진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했으며, '전후 보상'이 아니라 '전후 배상'이 맞고, 징용과 징병, 일본군 위안부 등에서 '강제성이 있었다'는 내용을 적극 반영하고 이를 자세히 서술했다. 우리의 파트너였던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 교사들은 반전평화운동을 실천하는 분들로 가해자에 대해 철저히 반성을 하는 역사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조선인 징용자 재판을 지원하는 일본인 모임'에 활동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참 훌륭한 파트너를 만난 것이다.

"제자들을 전쟁터로 내보내지 않기 위해 제작 참여"에 감동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 하나가 침략자 일본인은 군국주의자 군인 정치가 등 소수뿐이라는 사실이다. 대다수 일본인도 침략전쟁의 희생자였다. 그렇다고 일본 국민이 과거 전쟁의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비판의 대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항상 사료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실증주의 태도, 객관적인 사실에서 학생들 스스로 역사인식을 만들어가도록 하는 교육방식 등 일본 집필진의 역사와 역사교육에 대한 진지한 모습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두 번 다시 제자들을 전쟁터로 내보내지 않기 위해' 참여했다는 일본 집필진의 발언 또한 감동이었다. 출판기념 기자회견에서 나는 한국과 일본의 선린 우호 관계, 또는 동아시아 평화, 역사 왜곡 극복 등 큰 이야기를 했는데, 일본 집필진의 한 분은 이 책으로 한국의 학생들과 이어질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는 자신의 작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깊은 울림을 주는 '작은 목소리'였다. 우리의 이 책 또한 한국과 일본 학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작은 목소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