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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진화 전략과 인식공동체 강화
  •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재단 자문위원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진화(coevolution) 전략과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공진화 전략의 핵심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남북한은 물론 주변 국가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상호간에 선택적 압력을 통해 상호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진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사명은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케케묵은 지난날의 일들을 공부하는 이유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것이다. E.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지만 어쩌면 역사는 과거와 미래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북아역사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대한민국은 물론 역내 국가 사람들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과거를 연구해야 살아있는 지식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앞으로 동북아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유동적이고 불확실하여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 한중관계의 급속한 발전, 한일과 중일간의 영토갈등, 과거사 문제 등으로 인해 역내 국가간에 협력에 못지않게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외면하고 선군정치의 기치 아래 3차에 걸친 핵실험과 함께 수시로 군사적 도발을 하는 바람에 우리들은 한시도 안심하기 힘들다.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역내 국가들이 북한의 이러한 도발에 대한 대응 방식과 북한의 변화 여부가 한반도 질서는 물론 동북아의 장래에 심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의 생명 줄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이 앞으로 북한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필자가 북중관계의 변화 조짐을 보면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새로운 시각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필자는 중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새로운 기로에 서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올해 여름에 산동성 국제교류 담당 주임(主任)과 약 3시간에 걸쳐 얘기를 나눈 결과 중국의 시진핑정부가 북한의 핵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중 3자 회의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주어서 놀라웠다. 비록 이 회의가 민간학자들이 함께 모여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중국은 최근까지 이런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꺼렸는데 최근 이런 회의를 중시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 게재된 런 샤오(任曉)의 글은 충격적이었다. 그 동안 핵문제, 개방개혁 등과 관련하여 중국정부가 북한에게 "선의로 거듭 권고하였으나(苦口婆心)" 북한이 여전히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肆无忌憚)" 바람에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손상을 주고 있으므로 이제 "북한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단(abandonment school)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몇년 전만해도 중국학자가 공개적으로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을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물론 런 샤오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중국 정부가 앞으로 대북정책을 조정(adjustment)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중국 정부가 북한을 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데올로기에 매달려 북한을 감싸는 것은 더 이상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군사적 도발이 한반도 주변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중국을 전략적으로 더욱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은 북중관계를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국가대 국가의 관계"로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진핑시대 중국의 대한반도 재인식은 "한반도 전략적 자산론"이라고 할 수 있다. 1)

최근 중국은 북한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전략적 자산으로 견인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남북한 등거리 외교가 아니라 보다 복합적인 신(新)지정학, 신(新)지경학적 차원에서 한반도의 미래 가치를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중국의 대북 정책이나 한중관계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한중관계를 단순한 양자관계로 보지 않고 중일관계 등 동북아 차원과 미중관계의 글로벌 차원에서 접근하고, 남북한관계의 역동성과 불확실성 차원에서도 접근하고 있다. 또 북핵,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중간 정책공조의 가능성도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우리들은 중국의 대북정책의 변화를 잘 활용하여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들이 어떤 노력을 경주해야 하나? 필자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진화(coevolution) 전략과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공진화 전략의 핵심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남북한은 물론 주변 국가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상호간에 선택적 압력을 통해 상호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진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공진화 전략의 기본 목표는 "새로운 한반도 만들기"와 "새로운 동북아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즉 한반도와 동북아에 평화와 번영을 도모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남북한을 포함한 역내 국가들이 공동 책임(mutual responsibility)-동시 추진(synchronized efforts)-혜택 공유(sharing benefits)의 원칙 아래 북한의 변화, 남북한 관계개선, 동북아 신질서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공진화 전략의 구체적인 방안은 첫째, 북한-주변국가의 동시 변화 전략으로 북한은 물론 남한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공동의 노력을 통해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생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핵과 선군정치를 포기하고 개혁개방 프로그램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공진화 전략의 핵심이다. 그리고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위해 남북 경협과 함께 남북중, 남북러 경협등을 동시에 추진하고, 북미, 북일 동시 수교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둘째,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신질서 수립의 동시 추진 전략으로 동북아 신질서(인식공동체, 경제공동체, 안보공동체, 정치공동체) 수립과 남북한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 정치공동체 (남북연합), 통일국가 수립을 연동시켜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진화" 인식공동체를 강화하는 것으로 우리나라가 앞장서서 국내외 전문가(학자, 관료,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들이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동북아 만들기" 프로젝트에 동참하여 동북아와 한반도 신질서의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고 현안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전문가 네트워크를 확대 및 심화하는 것이다.

2차 대전후 유럽에서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유럽 국가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전문가 네트워크인 인식 공동체가 만들어져 유럽통합의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면서 수시로 현안문제를 공동의 노력을 통해 해결한 결과 오늘날의 유럽연합을 만들어냈다. 동북아에도 이런 인식공동체가 형성되어 대북 정책과 한반도 통일정책 관련 남남 갈등을 해소하고 동북아·한반도 신질서 구축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핵심 세력이 되어야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이러한 인식공동체 수립에 앞장설 것을 강력히 바라마지 않는다.

 

1) 이영학·이춘복, "중국의 신형대국외교: 부상한 중국의 새로운 외교구상."『성균 차이나 포커스』, 제6호, 2013년 8월 1일, 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