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10월 26일 개봉한 영화 '007 스카이폴'에는 일제 강점기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과 관련된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007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국내 언론들도 덩달아 50주년에 맞춰 흥미 위주의 홍보성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나가사키의 '군함도(軍艦島)'가 조선인 탄광 노동자들의 한이 서린 땅이란 점이다. 일본 정부는 이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201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려 하고 있다.
Q :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고자 한다는데, 그 장소는 어디이며,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은 '일본의 근대화 산업유산군-큐슈·야마구치 및 관련 지역'이라는 유산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려고 추진하고 있다. 2005년에 개최한 큐슈 근대화 산업유산 심포지움을 계기로 다음 해 큐슈지방지사회에서 '큐슈근대화 산업유산의 보존·활용'을 결정하여 관계현을 모아 2008년 문화청에서 세계유산 잠정일람표에 추가기재를 결정하였다. 2013년 4월에 전문가 위원회가 추천서를 국가에 제출하고, 올해 안에 잠정 추천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 예정이며 심사를 담당하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2015년에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유산군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막말에서 메이지기에 일본에서 중공업 분야(제철, 조선, 석탄산업)의 급속한 산업화 도정을 시간축에따라 증언하는 일련의 산업유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큐슈·야마구치 및 관련지역은 후쿠오카(福岡)현 기타큐슈(北九州)의 야하타(八幡)제철소, 나가사키현의 나가사키 조선소 등 현재 가동 중인 시설과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端島) 등 8개 현에 걸친 11개 시의 28개 시설·유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Q :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될 수 있는 문화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일본이 추진하는 산업혁명 유산과 유사한 세계문화유산이 있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일람표에 등록한 문화재를 지칭한다. 유네스코는 특정 소재지와 상관없이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들을 발굴 및 보호, 보존하고자 1972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을 채택하였다. 근대 서구 문명의 문제점을 잘 설명해 줄 장소로 지정된 대표적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다. 나치 독일이 점령한 유럽 전역에서 모두 130만 명이 아우슈비츠로 끌려왔으며, 이들 가운데 20만 명만이 목숨을 부지했다. 2007년 6월 27일 유네스코는 아우슈비츠에 설치된 세개 수용소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Q :왜 한국은 일본이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하려는 것에 반대하는가?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은 일본의 침략전쟁 때 조선인 노동자가 끌려가 강제로 일한 시설이 포함돼 있어 논란을 일으켰다. 이때문에 우리 정부는 "이웃 국가의 아픔과 관련 있는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것이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기리는 세계문화유산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또한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회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일본정부가 추진중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추진 지역 강제동원 작업장 및 징용피해 실태 자료를 제공했다. 자료에 따르면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큐슈와 야마구치현에 징용노역장 845개소이며, 이 중 군수공장은 140개소에 달한다. 또한 징용피해자 37,393명, 현지 사망자 2,512명, 행방불명자 675명으로 확인되며,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강제동원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과 미쓰비시 광업, 일본제철, 스미토모, 히타치 등은 한국국회가 확정하여 입찰제한을 추진중인 '전범기업 명단'에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번 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침략 전쟁과 관련된 사실들을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초기 문화재청이 추천하던 '나가사키 교회군과 기독교 관련유산' 방침을 백지화하고, 총리실산하 내각부가 추천할 수 있도록 관련법까지 바꾸어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으로 바꾸었다. 그 배경에는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역사의식 부재를 다시 한 번 드러냈을 뿐 아니라 이웃 국가의 아픔을 외면함으로써 호혜 선린의 외교 원칙을 어겼다는 점에서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Q : 일본의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군 중 구체적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지로는 어떤 곳이 있는가?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유산군 중 군함도는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1890년 단돈 10만엔을 주고 인수한 곳이다. 일본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도 하는 하시마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들을 착취했던 대표적인 장소로 '지옥섬', '감옥섬'으로 불리며 조선인의 피땀을 짜냈던 곳이다. 위원회가 지난 10월 4일 공개한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1925~45년 사이 하시마로 끌려간 조선인은 모두 800여명이며, 이들은 해저 1,000m까지 내려가는 갱도에서 하루 12시간씩 강제 노동을 했고, 이 가운데 122명이 혹독한 노동 끝에 목숨을 잃었다. 조사 보고에 의하면 "17세 이상 조선인 사망자(92명)중 폐렴과 천식 등 각종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28명(30%), 타박상·골절 등 외상 사망자가 13명(14%), 질식·압사 등 매몰사고 사망자가 17명(18.5%)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조선인의 사망은 1943~45년에 급증했고, 이는 전쟁이 종말로 치달으면서 석탄 증산계획이 가혹하게 추진됨에 따라 위험한 노동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사용되고 버려졌다는 진실이 숨어 있다. 일부 생존자는 "너무 힘들어 섬을 나가려고 신체 절단까지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하시마에 동원된 조선인 중 일부는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시내 복구작업에 투입되어 잔류 방사능에 노출되기까지 했다. 이 외에도 나가사키 조선소 역시 조선인 4천700여 명이 강제 노역을 했으며 이들 중 1천600여 명은 원자폭탄 투하 당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하타 제철소에도 1942년부터 강제동원이 개시되어 해방 전까지 약 1만여명의 조선인이 동원되었으며, 피해자로 결정된 심의, 완료건은 약 483건이다. 이와 같이 메이지 산업혁명 공장들을 식민지국가들로부터 강제징용을 실시하여 유지되었으며, 그 기업들은 막대한 부를 창출하여 다시 일본이 전쟁을 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Q : 그럼 우리는?
현재 나가사키시에서 운영하는 하시마 관광코스에는 전시 노동자들의 삶이나 조선인, 중국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나아가 하시마 안내 자료 등에도 섬의 연혁을 서술하는 것뿐, 1945년 이후의 하시마만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하시마의 진실은 찾아볼 수 없다. 하시마 탄광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의 삶에 대한 기억은 침략과 전쟁, 수탈로 점철된 일본 근대사의 군국주의, 천황제 파시즘, 그리고 차별과 착취의 피라미드 구조, 그 어둠을 먹고 자라난 일본의 근대화와 번영이라는 측면을 생각해볼 때, 일본 근현대사의 기저와 사회상을 비추는 역사의 거울이며 축도라고 할 수 있다. 하시마와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으랴. 그러나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하시마의 역사와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좀 더 깊이 알고 고민하며 성찰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였던가. 아직도 강제징용지에 떠돌고 있을 강제징용자들의 영혼을 더 이상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일본의 굴절된 역사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