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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동아시아·유럽지역 통합교류 프로그램(EPRIE) 참가기 1 한·일 참가자는 유럽 참가자보다 더 큰 의견차 드러내
  • 김희정 5·18재단 교류연대팀 국제연대사업 담당자

2013년 한국의 추석연휴이었던 9월 19일, 10일간의 동아시아·유럽지역통합교류프로그램(Exchange Program for Regional Integration in East Asia and Europe)이 강원도 원주에서 시작되었다. 절반의 아시아인(일본, 한국)과 절반의 유럽인(독일, 프랑스, 폴란드)으로 구성된 20명의 참가자들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서로가 마주한 사회, 역사, 정치적 쟁점을 공유하고 시민사회 차원의 대안 제안과 정치적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같은 유럽 또는 아시아 대륙 출신의 참가자라도 소속 국가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 구성은 좀 더 특별해진다. 과거 갈등과 분열 속에서 치유되기 힘든 상처와 아픔을 주고받았던 이웃 나라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로부터 영향 받은 사회 구성원간의 관계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20명의 참가자들이 10일간의 교육기간동안 어떻게 공동의 의제에 반응하고 해석하는지를 보면 그대로 드러났다.

남북한을 주축으로 한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관계, 과거사, 영토분쟁 등으로 질적 관계개선의 한계에 부딪히는 한국과 일본의 참가자들은 세계대전 이후 공동의 이익과 가치 추구를 위해 비교적 성공적으로 화해와 상생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보이며 유럽 연합 회원국이기도 한 독일, 프랑스, 폴란드 참가자들에 비해 고조된 의견차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세션을 마무리하기도 하였다.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아무리 상대국 출신의 친구, 동료와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일지라도 두 나라간의 민감한 외교적 사안에 대한 대화는 이렇게 공식적으로 자리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시작하기 쉽지 않다. 해당 국가의 시민으로서 현존하는 과제를 직시하고 이웃 국가의 관계 정상화와 평화, 상생을 추구하고자 결심했다면 정상급 정치외교와 언론에 의지하지 않은 민간 차원의 적극적인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며 대화와 청취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이 작은 청년그룹 내에서도 그동안 서로에게 묻고 답하는 기회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느낄수 있었으며 그래서 그만큼 교류 기회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개인 대 개인 차원에서는 쟁점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한계적인 상황이지만 사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같은 민감하고 중요한 외교적 쟁점에 있어서 시민사회 차원의 지역 협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김선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는 연대활동의 가장 큰 지원세력은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닌 일본의 시민사회라고 말한다.

이 외에도 중국, 일본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역사교과서 편찬을 진행 중인 동북아역사재단,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실천을 위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한중일 역사교사 모임 등을 비롯한 다양한 그룹들이 국가를 초월한 민간 차원의 연대활동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양 정부가 이러한 시민사회의 노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구조적, 역사적 배경의 차이로 단순 비교, 대입할 수는 없으나 유럽이 전후 공동의 이익(경제)과 가치(인도주의 재건)를 추구하기 위해 민·관이 적극적으로 화해와 협력의 기회를 만들어 내고자 한 점은 양국이 주목할 만하다. 평화와 상생을 위한 대승적 차원의 외교를 지속할 수 있도록 양국의 시민사회가 국가주의와 안보 이데올로기를 이용한 정치 책략에 휘둘리지 않고 정부에 대한 철저한 감시자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뜻을 함께 하는 이웃국가 참가자들와 함께 시민사회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다지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기회가 더 확대되기를 바란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하모니를 이야기하면서 중국과 북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본 교류프로그램이 유럽에서도 개최되는 만큼 이들 국가의 청년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