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의 변화가 극심한 현재의 세계에서 특별히 강대국 간의 각축이 치열한 동북아에서 한국이 국익을 지키고 생존을 모색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제관계는 정상외교를 필두로 민간 교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널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과정에 그것이 도덕적 명분이나 문화적 공유이든 안보적, 경제적 실리이든 공동의 이익을 가지는 파트너들을 다수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이 역사적으로나 현재적으로나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국가라는 사실은 긴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역사교과서 문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과 같이 한일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이슈는 주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연원을 가지는 역사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이 이슈들은 전후 양국 관계에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었지만, 간헐적으로 폭발력을 나타내어 양국관계에 심각한 긴장 국면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한 편으로 지난 반세기동안 비약적으로 확대된 양국 간의 인적, 경제적, 문화적 교류는 국경이라는 정치적 경계와 바다라는 지리적 장애물을 무색케 할 정도로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한일관계의 양면성을 인식한 정치 지도자들이 자주 '한일 신시대'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역사적 쟁점의 일괄타결과 새로운 한일관계 구축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고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기도가 오히려 더 심각한 긴장관계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금년에 출범한 한국의 새 정부가 전 정권에서 자주 제시되었던 상징적이고 선언적인 대일본 정책에 중점을 두지 않은 것은 몇 가지 변화된 상황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 정권 말기에 극도로 악화된 한일관계의 유산이 그러한 시도를 어렵게 만든 측면이 존재한다. 아울러 한일관계를 양자관계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라는 보다 폭넓은 지역적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관점도 그러한 정책 지향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인 작년 10월의 한 학술회의에서 한일관계의 모순적 측면을 특별히 동북아시아에 확대 적용한 '아시아 패러독스'론을 제시하여 주목을 끌었다. 세계 총생산의 20%를 담당하는 동북아시아 역내의 경제발전과 경제교류의 확대에 대비되는 역사인식을 둘러싼 민족주의의 고양이 초래하는 긴장관계의 모순적 공존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특별히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로 촉발된 한일 간의 긴장관계에 더하여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싸고 중일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이러한 동북아시아의 상황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점증하는 우려에 자극 받은 것이었을 것이다.
동북아 국제관계에 대한 '아시아 패러독스'적 인식의 저변에 일본 책임론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사 책임에 대한 일본의 인정과 이를 통한 과거 상처의 치유를 통해 국가 간의 신뢰를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적 관점에 관한 한 한국과 중국은 공동보조를 취할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금년 6월 중국을 방문한 박대통령이 정치 경제의 주요 현안에 대한 협의를 넘어서 '인문유대'를 통한 문화적 협력를 모색한 것도 '패러독스'론에 내재한 가치중시적 측면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패러독스'론을 제시할 당시 박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자로서 아직 관찰자적 위치에 놓여 있었지만, 수개월 후 대통령직에 취임한 뒤부터 이 '패러독스' 상황의 중요한 행위자로서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적어도 한일관계의 운용에 있어서 그의 관점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한국의 새 대통령이 취임한 후 두 번째나 세 번째에 이루어지는 일본 방문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불가피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수차례의 다자회의에서도 정상회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커녕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점도 이러한 정책적 선택에 기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양국의 정상이 동석한 자리에서 상대방을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냉랭한 양국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언론의 지면을 장식하였다.
이러한 박대통령의 '패러독스' 상황인식은 다른 나라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또는 상대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직간접적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 과거사에 대한 일본 지도자의 전향적 입장표명은 정상회담과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처럼 되고 말았고 관계개선이 담보되지 않는 정상회담은 할 의도가 없다는 의사표명도 이루어졌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국제적 협력과 공조가 일정 효과를 거둔 분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전시 성폭력 문제로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이 고조되고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의 퇴행적 과거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미국 내에 확산되었고, 2007년 7월 미국 하원의 위안부 문제 결의안 통과로 결실을 맺었다. 그해 4월 미국을 방문하게 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결의안 통과 저지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일본의 막강한 로비력도 이미 기운 여론을 되돌릴 수 없었다.
위안부 문제의 국제적 확산은 역사인식 논쟁에 있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논점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가치연대나 공유가 국제관계의 복잡한 현안을 해결하는 요술 방망이가 될 수 없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역사 인식과 관점에 관한 이슈의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은 이 문제가 당사자인 양국 간의 문제에 관련될 뿐 아니라 근저에 세계질서 및 지역질서의 변화와 맞물려 있고 또한 다층적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일본의 대외 인식과 역사인식도 한일관계, 미일관계, 중일관계, 미중관계, 한미관계, 한중관계, 북중관계, 북미관계 등과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말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하고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대미 교섭에 있어서 경제 문제와 안보에 집중하여 미국의 지지를 획득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 가시적 성과가 지난 10월에 이루어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미국의 지지 획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지지가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심각한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역사문제를 이유로 미일의 긴밀한 안보협력 노력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국의 입장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미국의 조야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안보문제와 역사인식 문제가 충돌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인정은 호주, 유럽을 거쳐 필리핀이나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의 주된 이유로 미일 양국은 북핵 문제를 거론하고 있으나 그 저변에 중국의 부상과 그것에 대처하기 위한 미일의 안보협력체제 구축이라는 의도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 규모에 있어서 세계 2위의 자리를 중국에 내주고 자신의 위상과 영향력 감퇴를 미국의 힘을 빌려 막아보려는 일본, 그리고 재정적자로 인한 경제력의 감퇴에 따른 방위부담을 일본과 분담하려는 미국, 이들 양국의 이익이 합치하는 지점에서 이러한 정책적 선택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미일 대 중국의 잠재적 대치 상황이 한국의 선택 폭을 매우 좁게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정세 변화는 집단적 자위권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는 심각한 문제이다. 국제질서의 변화가 극심한 현재의 세계에서 특별히 강대국 간의 각축이 치열한 동북아에서 한국이 국익을 지키고 생존을 모색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제관계는 정상외교를 필두로 민간 교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널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과정에 그것이 도덕적 명분이나 문화적 공유이든 안보적, 경제적 실리이든 공동의 이익을 가지는 파트너들을 다수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두텁게 또한 촘촘하게 구축한 관계망이 우리의 생존과 번영의 방패막이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