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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미 국제정치학자 이채진 교수에게 한반도의 국제정치를 묻다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적 격랑 속 한국의 전략적 외교 필요 국제무대에서 주목받는 전문성 갖춘 한국 학자들 나와야
  • 기록 및 진행 ┃ 설원태 재단 수석행정원, PhD

한반도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를 전문으로 하는 저명한 재미(在美) 국제정치학자 이채진 교수가 지난 11월 국립외교원에서 국제정치학을 강의하기 위해 단기 방문교수로 서울에 체류했다. 재단은 이 교수를 초청해 심층 좌담을 추진했다. 이채진교수는 재단의 배잔수 수석연구위원과 가진 좌담에서 역사적 관점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점검하고 미래를 전망해 보았다. _ 편집자 주

이채진(李埰畛) 미국 클레어몬트 맥케나 대학(Claremont McKenna College, 캘리포니아주 소재) 명예교수

이채진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다음 UCLA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교수는 미국외교정책과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의 전문가이다. 그는 지난 47년 동안 University of Washington, University of Kansas,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미국 육군참모대학 등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Kansas 대학에서는 문리과대학 부학장 및 동아시아연구소장, California State University (Long Beach)에서는 사회과학대학장, Claremont에서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장으로 대학행정을 담당했다. 주요 저서로는 A Troubled Peace : U.S. Policy and the Two Koreas, China and Korea: Dynamic Relations, U.S. Policy toward Japan and Korea, China's Korean Minority, Zhou Enlai, Japan Faces China, China and Japan 등이 있고, 동아시아에 관한 13권의 책을 편집했으며, 100여편의 학술논문을 출판했다. 이 교수는 미국사회과학협의회 한국분과 위원장직을 역임했다. 현재 이 교수는 Asian Survey, Asian Perspective, Journal of Pacific Asia, Asia Policy,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Studies, Journal of International and Area Studies, Review of Korean Studies, Journal of Peace and Unification에서 편집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배진수(裵珍洙) 재단 수석연구위원

서울대 졸업,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 국제정치학박사(국제협력·갈등 전공)

배진수 지구상의 국제정치를 살펴볼 때 동북아에서 현재 국제정치적 역학구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긴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의 국제정치사적 위치와 의미를 일괄해 주십시오.

이채진 국제정치상 한반도의 특수성, 즉 지리적 요건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불행 또는 기회를 맞을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은 국제사회의 영향을 받는 데다 한반도 내부 상황이 적절히 주변의 영향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냉전 구조가 잔존하고 있습니다. 지리적 요건에다 역사적 요건이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 보면,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급격히 변화했고, 미국의 상대적 지위가 떨어졌으며, 중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부상했습니다. 게다가 최근 20년 동안 일본이 상대적으로 쇠퇴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세력 균형이 깨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위치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배진수 교수님은 미국에서 오랜 기간 한반도 및 한반도 주변의 정세를 분석하셨습니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통시적으로 짚어 주시고, 오늘날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어떠한지 설명해 주십시오.

이채진 태평양 전쟁이 종식된 이래 미국은 한반도의 운명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나라였습니다. 과거 소련도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제 구소련(러시아)은 이미 약화된 반면 중국은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길게 보면, 미국 외교정책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대립해 왔습니다. 현실주의란 세계 질서에서 법적 합리성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적용되는 정책노선입니다. 현실주의자들은 미국이 스스로 힘을 길러서 세계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봅니다. 가까운 예를 들면, 닉슨과 레이건이 있습니다. 이상주의는 인간이 평화를 추구하고 합리적이며, 국가들도 서로 잘 협력할 수 있다고 믿으며 낙관론에 근거합니다. 카터나 클린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최근 오바마 정권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 정권은 실용주의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균형있게 조율하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원래 오바마는 타협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오바마는 정책상 강하게 나가기도 하고(현실주의) 온건하게 나가기도 합니다(이상주의).

배진수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공화당 또는 민주당 행정부 중 어느 정당이 집권하는가 여부에 따라 변화가 있습니까?

이채진 일반적으로 민주당의 한반도 정책은 리버럴(liberal)한 반면 공화당의 정책은 보수적(conservative)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양당의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집권당(또는 대통령)이 바뀌어도 미국의 궁극적 국가이익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 국가이익을 실현하는가 하는 점에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또한 미 행정부는 한반도에 대한 정책을 변화시키려 하지만, 실제로는 변화가 별로 없습니다. 예컨대, 부시 행정부 말기는 클린턴 행정부와 비슷한 한반도 정책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ABC(Anything But Clinton)라고 해서 클린턴 류의 정책을 고의적으로 채택하지 않았지요. 결국 미국 행정부는 민주 공화와는 크게 상관없이 중도적인 정책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배진수 집권 2기에 들어간 오바마 정권의 대한반도 정책에 관해 설명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오바마의 한반도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시며, 향후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요?

이채진 교수

이채진 오바마 행정부의 제1기는 경제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대외정책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됐습니다. 대외정책상 우선순위에 있었던 것은 이라크 전후 처리 및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국제 테러리즘과 싸운다는 것, 특히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사살하는 것이었습니다. 3번째로는, 중동의 평화를 추구하며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면서 일본의 쇠퇴하는 힘을 북돋워 주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1기는 '전략적 인내심' 또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특징지울 수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1기 동안에는 한반도 정책에 이티셔티브나 청사진도 없었습니다. 고의로 모호한 정책을 취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보였습니다. 앞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악의 축'의 하나라고 했으나, 오바마는 이 같은 과격한 발언을 회피하면서 모호한 정책을 취했습니다. 이러면서 오바마 행정부 1기는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적 입장 취하기를 원했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이 '국제정치의 운전석'에 앉고 미국은 옆 또는 뒷자리에 앉으려 했습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작은 규모의 합의가 있었으나, 한반도 문제에서 별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연임에 성공한 오바마 행정부는 제2기에 들어와 우선 재선의 부담에서 자유스러워졌습니다. 1기 행정부의 첫 4년 동안 한반도에 큰 문제가 없었기에 재선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재선 부담'에서 벗어난 2기 오바마 행정부는 자유롭게 정책을 입안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하원의 공화당 다수 세력이 오바마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조만간 오바마 행정부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실적을 쌓으려 할 것입니다. 미국 행정부에서는 늘 임기 후반인 마지막 2년이 중요합니다. 연임하는 8년 임기의 미국 대통령들은 자신의 유산(legacy)를 남기려 합니다. 역사의 평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컨대, 레이건은 말기에 북한에 대한 정책에서 전통적 반공주의에서 유연하게 변화했습니다. 카터는 마지막 2년 동안 남북 정상회담을 주선하려 했으나 불발했습니다. 그는 김일성을 미국에 초청하려고도 했습니다. 클린턴은 2000년 북한·미국 정상회담을 추구했습니다. 클린턴은 직접 평양에 가려 하기도 했습니다. 부시는 2007∼08년 대북 정책을 상당히 변화시켰습니다. 오바마가 향후임기 마지막 2년 동안 어떻게 정책을 조정할지 알 수 없으니 깊은 관심을 갖고 주시해야 합니다.

배진수 그러면, 중국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일괄해 주십시오. 그리고 한국은 향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까요?

이채진 아시아에서 한중 관계는 큰 변화를 맞았습니다. 한국전쟁 동안 중국은 직접 참전해 한국과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중국은 북한만 지지·성원하는 하나의 조선정책을 택했고, 그 결과로 중국은 1961년 북한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다 중국은 1992년 대한민국을 인정해 적대관계를 해소했습니다. 92년 이후 양국은 상호 정당성을 인정하는 지각변동을 겪었습니다. 이후 중국은 과거 21년 동안(1992∼2013) 두 개의 코리아 정책을 썼습니다. 중국은 북한과 군사·외교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과도 관계를 효율성 있게 진행해 왔고, 남북한을 잘 '관리'해 왔습니다.
전략적 측면에서 본다면, 중국은 북한과 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하지만 충실하게 이를 이행할지 현재로서는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북한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으면 중국이 즉각 북한을 지원할지 의문이 많습니다. 학자에 따라 이 방위조약이 유효하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중국 의존도가 심각합니다. 한국은 대중 무역 상대국 1위입니다. 미국의 학자들은 한국의 심각한 중국 의존도가 외교적·군사적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중국에 대해 경제적 의존이 심하면 중국에 대한 신축적 정책을 취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경우 중국 의존이 더욱 심각합니다. 대외 무역 중 중국 의존도가 70∼80%에 달합니다. 이 수치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변경무역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어서 더 문제가 큽니다. 경제적으로 본다면, 북한은 이미 중국 경제권의 일부분입니다. 한국은 점차 북한의 대중 의존도를 완화시켜야 합니다. 왜냐 하면, 중국은 경제관계를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예를 들면, 수년 전 중일 사이에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국은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함으로써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바 있습니다. 일본 당국은 중국 선원을 체포했으나, 중국이 구금을 해제하라고 일본에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중국선원들을 처벌하겠다고 했으나 결국 중국의 압박에 굴복해 이들을 석방해 중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중국에 되돌아간 중국 선원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후 일본은 희토류 수입 다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배진수 역사적·장기적 관점에서 한일 관계를 일괄해 주십시오. 아울러 한국은 향후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까요?

이채진 장기적 관점에서 보아, 한일관계가 악화된 것은 유감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조건이 성숙된다면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한국의 장기적 국익에 도움될 것입니다. 어떤 계기가 마련된다면 양국관계를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해 주지 않는 듯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한국과 중국이 반일 연대를 형성하려 하거나 이런 인상을 주는 것조차 좋지 않습니다. 중국과 손잡고 일본에 압력을 가하려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현재로서는 좀 모호하게 대해야 합니다. 한국은 중국에 대해 1 대 1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 나라를 지렛대로 쓰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론매체의 관점에서 보아도, 한국 언론은 중국언론의 민족주의적 보도에 동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은 일본이 싫다고 해서 중국과 손잡는다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한국은 대일 관계를 냉철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배진수 수석연구위원

배진수 정치학자로서 미국에서 연구하시면서 한국의 정치학계나 국제정치학계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채진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거나 연구하는 등 우수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책이나 논문 등 많은 저작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들을 보면 본인은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한국학자들은 전문성을 보다 강조해야 합니다. 특히 대학의 유수 교수들은 전문성보다는 여러 분야에 발을 뻗치고 있어 문제입니다. 예컨대, 저는 한국의 몇몇 정치학자가 중국 전문가인데도 유럽 문제에 대해 논평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저는 한국의 학자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더욱 심화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한국학자들이 국제무대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홍구, 김경원, 한승주와 같은 수준의 저명한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특히 실력 있는 전문적인 소장파 학자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고, 국제무대에서 많이 활동해야 합니다. 최근 일부의 한국 학자들이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지만, 별로 새로운 얘기가 없습니다.

배진수 교수님은 미국에 50여 년간 거주하셨습니다. 이 긴 기간 동안 교수님이 파악하게 된 미국 사회의 장단점을 한국 상황과 비교하면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채진 어느 나라에나 장단점이 있습니다. 먼저 미국의 단점을 들면, 강대국인 만큼 미국 중심적 생각만을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한국을 상대할 때 강대국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지역적 책임은 물론 양국간 책임도 고려해 행동해야 합니다. 미국은한국을 상대로 양자 관계를 우선 중시해야 하고, 이후 동북아, 그 다음에는 세계적 관점에서 중요도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 양국간 엇박자가 날 경우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미국 언론은 별로 중요하게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미국 언론의 입장에서는 지구상 200여개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대통령이 나왔으니 이 뉴스를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겠지만, 이것은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는 장점도 많습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이민자의 사회입니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저의 경우 미국 생활을 시작한지 몇 년 안돼 조교수가 됐습니다. 이런 것은 미국 외의 지역에서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기회의 균등'은 아닐지라도 '기회가 상당히 많이 제공되는' 나라입니다. 한국이든 아프리카이든 출신국과는 상관 없이 실력이 있으면 미국 주류 사회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해외 이민도 많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일본이나 유럽과는 다른 점입니다. 미국에서는 불법 이민자도 간헐적으로 합법 이민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배진수 향후 인생설계나 연구계획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이채진 저는 앞으로도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계속 연구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제가 7년 전 출판했던 한미 관계에 관한 책인 Chae-Jin Lee, A Troubled Peace: U.S. Policy and the Two Koreas(2006) 를 조만간 증보할 겁니다. 아울러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봉사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