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보고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역사교육
  • 안병우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갈등의 해법은 무엇인 가? 2013년 11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립외교원 창립 기념식에서 동북아의 평화협력과 번영을 위한 방안의 하나 로 동북아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을 제안하였다. 이튿날 일 본의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이 환영 의사를 표명하 였고, 곧 이어 도쿄에서 열린 한일의원연맹 총회에 참석한 두 나라 의원들도 공동교과서 편찬을 위해 노력하도록 두 나라 정부에 촉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적어도 한일 두 나라사이에는공동교과서편찬에대해큰틀에서동의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 역사교과서 제안을 접하고 드는 솔직한 생각은 "제안 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겠다"는 것이다. 고려하고 선결해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이다. 동북아 공동 역사교과서의 중심 은 아무래도 한중일 세 나라이다. 그런데 중국은 적극적인 반응을보이지않고있다.국가체제등여러가지이유로 필요성을강하게느끼지못할뿐아니라,세나라의역사 가심각한비대칭상태로전개되어온특성이있기때문에 공동의 역사교과서로 교육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의문은 한일 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 로 제기되지만, 중국의 경우 훨씬 심각하다. 때문에 중국 은 선뜻 나서기 어려운 입장이다.

역사교과서 집필 권고안 수립이 실현 가능성 더 높을 듯

필자는 공동의 역사교과서보다는 공동으로 역사교과서 집 필 권고안을 만드는 쪽이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집필 권고안은 각국에서 역사교과서를 집필할 때 하나의 기준이 된다. 동북아시아의 역사에서 어떤 사실을 기술할 것인지,어떤관점에서기술할것인지등에관한지침역할 을하는것이다.역사갈등은대부분동일한사실을이해 하는 관점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합의된 관점에 서 사실을 해석하고 기술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이를 통 해 공통의 역사인식을 갖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공동체형성의역사적기반을마련할수있을것이다.이 렇게 보면, 공동 교과서 발간과 그 목적이 기본적으로 다 르지않다.

물론 권고안 작성도 쉽지 않다. 권고안을 작성하기 위해서 는오랜기간동안역사대화를해야한다.역사대화의시 작은 국가 사이의 합의에 입각하여야 하므로 동북아 국 가들 사이의 외교관계가 두루 원만하지 않으면, 역사대화 를 시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에 새 정권이 들어선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정상회담도 하지 않 는 '비정상적'인 관계는 정상화되어야 한다. 점점 대립이 심 화되어가는 중국과 일본의 관계도 회복되어야 역사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 국경 넘는 역사인식 가져야 역사대화 가능

역사대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이 중요하다. 동북아시아 3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모두 1950 년대에태어난이른바전후세대이다.비록식민지지배의 유제가 남아 있었고, 냉전체제 혹은 민주주의가 시련을 겪 던 시기에 성장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인권과 민주주의가 신장되고 경제가 성장하였으며 3국의 관계가 정상화된 '성 취와 화해의 시기'를 살아왔다. 3국 지도자들이 이러한 역 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국가의 틀을 넘는 역사인식을 갖고 동북아의 평화를 지향하지 않으면 역사대화는 진전되기 어렵다.

각국 정부는 권고안을 작성하는데에, 장기적으로는 공동 의교과서를향해가는길에걸쳐있는난관을제거하는데 앞장서야한다.가장큰난관은말할것도없이역사교육 에대한각국정부의태도와방향성이다.근래동북아3국 은 보편적 가치보다는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역 사교육을 끌고 가고 있다. 예를 들면, 시모무라 문부과학 상은공동역사교과서발간제안을환영하는바로그자리 에서 교과서 검정기준의 개정 의사를 밝혔다. 검정기준에 "통설적인 견해가 없는 경우에는 특정 사항이나 견해만을 강조하지 말고, 균형 있게 서술한다."라는 조항과 "정부의 통일된견해나확정된판례가있을경우그에기반하여기 술한다."는 두 항목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조항은 당장 희생자 숫자가 확정되지 않은 난징 대학살사건이나 종군위안부 서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비록 1982년 이 래 일본 역사교과서 서술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근린제 국조항을 폐기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개정 임이 분명하다.

문부성이 검정 기준 개정을 통해 얻으려는 목표는 교과서 에 남아 있는 '자학사관'의 청산이다. 그러한 점은 12월 20 일 문부성 부상 니시카와 쿄코가 후쿠오카에서 '교육 재생 이야말로 국가 건설의 근간'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난징 대학살, 일본군'위안부' 등에 관해 사실과 다른 내용 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지적하고, 교과서 검정기준이 개 정되면 서서히 자학사관은 불식될 것이라고 한 데서 명확 히알수있다.다시말하면,19세기말이래로일본이자 행한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그 과 정에서 저지른 범죄를 부정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은 물론 한국과 중국의 양식 있는 학자와 시민단체들은 검정 기준 개정 시도를 사실상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받아들 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사정이 낫다고 하기 어렵다. 2008년 이후 로 교육부장관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지시, 역사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개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 을 둘러싸고 정부와 역사학계가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역 사교과서를 놓고 내부에서 '좌편향' 주장과 '친일 독재 찬 미' 주장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동북아시아 공동의 역사교 과서 발간을 추진할 동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공동역사교과서, 과거성찰 바탕위에 화해 및 평화 추구해야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만든다면, 그것은 과거에 대한 진지 한 성찰을 바탕으로 화해와 미래의 평화를 추구하는 방향 에서 집필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게 도 과거를 직시하고 성찰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 럽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교 과서를종종사례로들지만,그바탕에독일의진정한사 과와 반성이 서려있다는 점을 당연히 주목해야 한다. 그러 나 근래 동북아시아에서는 성찰보다 자긍심과 애국심을 강조하고 부추기는 방향으로 역사교육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을 견지하고서 공동의 역사교과서 발 간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라고 생각한다.

역사대화와 그를 통한 권고안 작성은 정부보다는 민간이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 차원에서도 한일역사공동 연구위원회, 중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운영한 경험이 있 고,임나일본부등일부쟁점사항에대하여의견의일치 를 보는 성과도 거두었다. 공동연구는 정부 차원에서 역사 인식을 검토하고 조율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의 하나이므 로재개하는것이좋다.그러나정부간대화는정권의성 향에 좌우될 소지가 크고, 참여자가 국가대표로서 부담을 지게 되는 반면 독립성과 자율성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여러 민간단체와 학자, 교사들이 오래 전부터 한일간에 역 사대화를해왔고,그결실로여러종류의책을공동으로 발간하였다. 드물게 한중일 3국이 공동의 교재를 편찬하기 도 하였다. 그리고 3국의 학자들이 지금도 역사대화를 계 속하며 권고안을 만들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 는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신뢰가 구축되어 있다. 정부는 한편으로 역사대화를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학자 등이 그들의 경험과 자산을 충분히 살려서 권고안을 만들도록 민간의 대화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