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에서는 최근 『역주일본서기(譯註日本書紀)』 (전3권)을 간행하였다. 역주에 착수한지 6년만의 일이다. 7명의 연구자가 매달 정기모임과 합숙, 토론을 거쳐 이루어낸 결과이다. 상세한 주석과 해제, 최신의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풍부한 참고자료를 실어 『일본서기』를 이해하는데 종합적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는 일본고대사 뿐아니라 한국고대사에서도 대단히 유용하고 특히 고대한일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이다. 그러나 이 문헌은 사료의 신뢰성 때문에 섣불리 접근하다가는 『일본서기』의 논리에 빠져들기도 하고, 편의주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용하면 논리의 모순에 부딪히기도 한다. 『일본서기』는 진실과 허구의 세계가 공존하고, 과장과 윤색, 선과 악이 뒤섞여 있는 양날의 칼과 같은 사서이다. 『일본서기』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편찬의 이념과 통시대를 간파할 수 있는 분석력이 없으면 객관적인 결론에 이르기 어렵다. 한일 양국간에는 『일본서기』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끊임없고, 국내 연구자들 간에도 다양한 의견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천황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한 『일본서기』
『일본서기』는 '日本'이라는 국호가 만들어지고 율령을 근간으로 하는 천황제 통일국가가 완성된 시점에서 편찬되었다. 일본의 건국신화로부터 초대 신무(神武)에서 7세기말 지통(持統)천황에 이르는 일본고대의 역사를 천황을 중심으로 편년체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서기』편찬을 개시한 천무천황은 고대일본 최대의 내전인 임신(壬申)의 난에서 승리한 후 중앙집권적 권력체제를 구축한 인물이다. '일본'이라는 국호와 '천황'호를 제정하고 천황 중심의 권력구조 기반을 구축하였다. 720년에 천무의 황자인 사인친왕(舍人親王)을 대표편자로 하는 『일본서기』가 완성되었다. 그는 황족으로서 만기를 총람한다는 태정관의 장관인 지태정관사(知太政官事)의 직에 있으면서 역사서의 편찬에도 깊히 관여하였다. 『일본서기』의 편찬이념에 천황통치의 유구성·정당성·정통성을 내세운 것과 역사서의 편찬을 구상한 것도 모두 천무의 뜻이 반영된 것이었다. 일본국의 유구성을 주장하기 위해 건국신화를 만들었고 황조신으로서 천상의 세계를 다스리는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설정하고 그의 후손인 신무에 의해 일본국이 건국되어 현실의 천황으로 이어진다는 황통보를 만들었다. 따라서 타씨족에 우월한 천황가의 유구성과 우월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혈통의 신성성을 강조함으로써 통치의 절대화를 꾀하였다.
『일본서기』의 편찬이념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한반도제국과의 관련성이다. 한반도제국과 관련하여 『일본서기』의 주요 편찬이념은 한반도제국에 대한 번국사관(蕃國史觀)이다. 중애기(仲哀紀)로부터 신공기(神功紀), 응신기(應神紀)에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설화를 비롯하여 백제와의 국교개시, 가야7국 평정설화 등 한반도제국의 복속과 조공의 기원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대의 한반도제국은 일본의 복속국, 조공국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천황이 다스리는 신국, 일본에 대해 서번(西蕃)으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약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신공황후 전승은 『일본서기』내에서도 중핵을 이루고 신라등 한반도제국의 복속담의 기원설화로서 이후의 대한관련 사건의 고정화된 관념으로서 현실적으로 기능하게 된다.
왜곡된 한국사관의 비판과 극복
『일본서기』에 뒤이어 편찬된 『속일본기』 등 5국사에는 신라와의 외교적 마찰, 긴장관계 속에서 신공황후 전승은 고대일본 지배층의 신라에 대한 우월의식을 나타내는 전설이 되었다. 근세에 들어서면 고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서 신공황후 전승(傳承)은 조선멸시관으로 나타나 정한론의 사상적·이념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근대의 한국침략·지배기에는 학문이 정치의 도구가 되어 관학파에 의한 한반도지배의 정당성을 구하는 현실적 목적으로 신공황후 전승을 이용했으며 교육의 현장에서도 교과서의 핵심적 내용으로 기술되었다. 왜곡된 역사가 시대를 이어서 전승·기억되어 일본인의 고정된 관념으로서 대한관을 형성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고 잘못된 역사의 해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계체기(繼體紀), 흠명기(欽明紀)에는 임나일본부 문제 등 6세기의 가야제국을 둘러싼 복잡한 백제, 신라, 왜 등 국제관계가 기술되어 있어 오랜 기간 논쟁이 되고 있다. 고대 한일관계사의 논쟁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 이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한일고대사 정립의 핵심이다. 사료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 복잡한 기술내용이 무수한 논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에 민족주의적인 접근, 개인적 연구분야의 차이에서 오는 시각과 관점으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타래처럼 얽힌 사료의 재구성과 가야사의 내재적인 문제, 한반도제국 상호간의 관계, 나아가 대왜(對倭) 관계라는 순차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서기』에는 수많은 씨족들의 활동이 나오고 있다. 일본이 통일국가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들 씨족들의 역할은 중요했으며, 이들 집안에서 내려오는 가전(家傳)이 『일본서기』편찬의 기초자료군을 이루고 있다. 일본고대의 한반도에서 활동한 씨족들은 대체로 조상의 활동을 미화하는 필법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서기』의 편찬사료 중에는 한반도계통의 사료군도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료가 『백제기(百濟記)』, 『백제신찬(百濟新撰)』, 『백제본기(百濟本記)』 이다. 이들 백제삼서는 한성시대, 웅진시대, 사비시대 등 시기별로 인용되어 있어 편찬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편찬의 주체나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 있으며, 원래 내용이 그대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일본서기』편찬단계에서 윤색된 흔적도 적지 않아 주의를 요하고 있다. 이외에도 고구려승 도현이 쓴 『일본세기(日本世記)』, 한반도 이주민계인 외교업무에 종사하는 길사(吉士) 집단이 남긴 기록류도 적지 않다.
일본서기』는 고대에 만들어진 고대의 역사서이고 당대의 일본지배층의 정치적 이념을 이해하는 데에는 대단히 유용한 사서이다. 하지만, 당시의 객관적 실태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료가 갖는 왜곡된 한국고대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철저한 사료비판이 필요하다. 이번 재단의 역주본 출간은 『일본서기』연구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금후 올바른 일본고대사, 고대 한일관계사, 나아가 동아시아의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기 위한 하나의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