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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Q&A
야스쿠니 신사와 A급 전범 : A급 전범 분사도 해결책 아니다
  • 남상구 역사연구실 연구위원

작년 내내 역사퇴행적 발언으로 물의를 빚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작년 12월 26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국제적인 파란을 일으켰다. 금년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44차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포럼)에 출석한 아베 총리는 각국 언론사 인터뷰에서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소위 A급 전범을 찬양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참배가 A급 전범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했다.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이란 무엇이고, A급 전범들은 한국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이들을 분사해도 왜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가 문제 되는가?

Q : 야스쿠니신사에 합천황사된 A급 전범이란 누구를 가리키는지요 ?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개최해 침략전쟁을 계획ㆍ수행한 일본 정부와 육해군의 지도자를 심판했습니다. 극동국제재판소 조례 5조는 전쟁범죄를 △A항 '평화에 대한 범죄'(침략전쟁 계획ㆍ모의, 준비, 개시, 수행), △B항 '통상적인 전쟁범죄'(전쟁 법규나 관례 위반), △C항 인도(人道)'에 대한 범죄'(살인, 섬멸, 노예적 학대, 추방, 기타 비인도적 행위) 등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A, B, C는 범죄의 경중이 아니라 범죄의 성격에 따른 구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쿄재판은 '평화에 대한 범죄(A항)'에 중점을 두었습니다만(55개의 기소 이유 중 36개), 잔학행위에 대한 범죄 ['통상적인 전쟁범죄(B항)', '인도에 대한 범죄(C항)']도 동시에 물었습니다(<표1>참조). 도쿄재판에는 28명이 기소되어 병사(病死) 2명과 면소(免訴) 1명을 제외한 25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야스쿠니신사는 1978년 10월 도조 히데키(東条英機) 등 교수형을 당한 7명과 병사한 5명, 판결 전에 병사한 2명 등 총 14명을 합사(合祀)했습니다. 1)

Q : A급 전범들은 한국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급 전범이 도쿄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1928년 이후 침략전쟁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식민지에서의 강제 동원이나 잔학행위와 관련된 문제는 재판의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유죄판결을 받은 사람 중 조선 총독으로 창씨개명 등 황민화정책, 징병ㆍ징용 등 강제동원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 미나미 지로(南次郞),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国昭)와 조선군 사령관이었던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郎) 등 세 명은 한국 입장에서 볼 때도 중대한 범죄자였습니다. 그런데 수감중에 사망한 고이소와 교수형을 당한 이타가키 등 두 사람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습니다. (미나미는 1954년 가출옥했다가 1955년 사망했기 때문에 야스쿠니에 합사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도쿄재판 개최 당시부터 이들 3명의 전범재판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이들 3명의 전범을 한국이 관여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언론보도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컨대, 동아일보의 보도 "침략 원흉배를 단죄 도조 등 7명 교수형 도쿄전범재판 언도 // 고이소 구니아키ㆍ미나미 지로 등은 종신형 한국관계 3명도 포함(侵略元兇輩를 斷罪 東條 等 七名 絞首刑 東京戰犯裁判 言渡//小磯國昭·南次郞 等은 終身刑 韓國關係 三名도 包含)"(1948.11.14), "고이소, 미나미 등 전범 한국서 엄벌 요구(小磯, 南 等 戰犯 韓國서 嚴罰要求)"(1948.11.30), 자유신문의 사설 "미나미 지로, 고이소 구니아키(南次郞, 小磯國昭)의 처단"(1948.11.15) 등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Q : A급 전범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는 것이 왜 문제되는가요?

A급 전범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심판한 도쿄재판에서 침략전쟁을 주도한 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서 도쿄재판의 판결을 수락(제11조)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했습니다. A급 전범도 신으로 모시고 있는 곳에 총리나 각료가 참배하는 것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것이자 일본이 국제사회에 복귀한 전제 및 그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85년 5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나치 SS 친위대 대원도 매장된 독일 비트부르크 묘지를 참배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 지도자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 포함된 시설을 방문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용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야스쿠니신사에는 한반도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의병을 탄압하다 살해된 일본인 군인ㆍ헌병 등의 죽음이 "폭도를 진압하다 희생되었다"는 이유로 정당화되었습니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사망한 한국인 약 2만 1천명도 유족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위해 싸우다 희생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합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설에 일본 총리가 참배해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것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손해와 고통을 끼친 것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 한 것'(1995년의 무라야마 총리 담화)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Q :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A급 전범을 야스쿠니신사에서 분사(分祀, 따로 떼어냄)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분사가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총리가 1985년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를 공식참배한 것에 대해 중국은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들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 후 일본의 여러 정치가들에 의해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A급 전범 분사론'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금년 1월 4일에는 일본 민주당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외상이 A급 전범 분사론을 제시했습니다.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도 야스쿠니신사가 A급 전범의 위패나 유해를 모시고 있다는 잘못된 지식을 기초로 A급 전범 분사가 마치 야스쿠니신사 문제의 해결방안인 것처럼 잘못 언급하기도 합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위패나 유골은 없고 △본전에는 246만명의 합사자를 상징하는 거울과 검(劍)이, △영새부봉안전(霊璽簿奉安殿)에는 합사자 이름을 기록한 영새부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신도 교리상 분사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야스쿠니신사는 공식 견해를 발표하여 (2004.3.3), 교리상 A급 전범만을 완전히 분리하여 따로 모신다는 의미의 분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A급 전범의 분사는 어렵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설령 A급 전범을 분사한다고 해도 야스쿠니신사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시설이라는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나아가 A급 전범 분사로는 유족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합사된 한국인(약 21,000명)의 문제도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 판결 일람

 

1) 합사(合祀)란 일본 신도(神道)의 용어로, 하나의 신사에서 복수의 신을 모시는 것을 말함.